"진심으로 '젠더'가 뭔지 궁금"하시다는 Chicha Barre님께 제가 할 수 있는 설명을 드려봅니다. 젠더가 '사회적 성역할'이라는 설명은 틀린 것이라고만 할 수 없고 젠더를 이해하는 손쉬운 방식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트랜스젠더는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젠더/사회적 성역할'을 추구하는 사람이며 결국 '생물학적 성별'을 기준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은 것일까요?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생물학적 성별. 생물학에 따라 우리는 성별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생물학이 구분하는 성별이 있지요. 염색체, 호르몬, 성기 등의 차이가 그 기준이 됩니다. 이런 차이는 중요합니다. 생물학에서요. 인간에 대한 생물학이라 할 수 있는 의학에서는 더욱 그렇기도 합니다. 의학은 다분히 남성 중심적으로 발전해온 학문이라, 인간의 몸은 마치 남성의 몸인 것처럼 다뤄오기도 했습니다. 질병이나 치료에 대한 연구에서 성별 차이가 별로 고려되지 않았지요. 그런 점에서 의학이 제시하는 구분이 의학 내에서 더욱 의미있게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여성의 요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구분이 생물학과 의학을 넘어서는 영역에서도 근본적인 것처럼 취급될 때 발생하겠지요. 우리는 이미 일을 구하거나 학교를 다니거나 소득을 보장받을 때 그런 구분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지 않나요? 사회 곳곳에 그런 구분을 다시 세우는 것이 여성을 위한 일인가요?
둘째, 젠더는 특정 성별에 기대/강요되는 성역할을 총칭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성격은 어떤지, 학습능력이나 적성은 어떤지 등등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구석구석에서 우리는 젠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성애 중심의 섹슈얼리티도 젠더와 무관하지 않고요. 그런데 이런 '젠더'는 개개인에게 어떻게 기대되거나 강요될까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사회적 성역할의 목록은 명시적 규범의 형태로 제공되지는 않습니다. 특정 성별에 기대/강요되는 성역할로서 '젠더'가 미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양한 선호, 취향, 성격, 직업 등을 성별에 연결시킬 때 '젠더'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즉 젠더는 이분법적 성별 구도-모든 이분법이 그렇듯 남성 우월적 구도-를 실체로 만들어내는 구조적 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숏컷을 한 여성에게 '멋지다'고 말하는 것과 '남자같다'고 말하는 것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탈코르셋이 젠더에 대항하는 운동일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겠죠. 거꾸로 말해볼까요? 트랜스여성이 과도하게 화장을 하거나 꾸밈으로써 여성성을 강화한다는 일각의 주장(오해와 왜곡)은 화장이나 꾸밈을 다시 여성에 할당시키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셋째,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몸을 구분하는 생물학의 방식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의 몸이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구분되는지에 따라 출생등록부터 성별이 표시되고(그래서 간성의 경우 수술을 강요당하기도 하고) 사회적 관계도 성별과 무관하지 않게 형성되어갑니다. 내 몸에 지정된 성별과 내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은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올 수 있고 어느 한순간 말끔하게 결론이 나는 일도 아닙니다. 어딘가 맞지 않다는 느낌을 마주할 때 트랜스젠더가 부딪치는 것은 성별 이분법의 구도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구조로서의 젠더입니다. 갈등의 시작은 특정 성별에 강요되는 성역할이었을지 몰라도, 정체성을 숙고하게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식별되는 표지로서의 성별 자체를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하려는 노력 성별을 근본주의화하는 젠더에 균열을 내게 되고 (젠더를 오히려 강화한다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주장과 달리) 젠더를 허무는 페미니스트의 동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글로 의문이 모두 풀리시진 않겠죠. 제 설명이 부족하기도 할 테고, 몇 줄 글로 설명될 주제도 아니고요. 다만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우리 중 누구도 어떤 사람을 '(생물학적) 성별'로 환원시킬 권한은 없다는 겁니다. 그게 남성이든 여성이든 트랜스젠더든 인간을 성별로 축소시키는 건, 모욕일 뿐입니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서로를 인간으로 대하자고 약속해올 때 하지 말자고 약속했던 것이 그것이죠. (부족한 설명은 더 좋은 글과 책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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