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과 정치운동

최근 나와 친한 활동가들이 서로 등 돌리게 되는 일이 있었다. 나로서는 건조할 수 없는 얘기지만 건조하게 요약해보자면, 청소년인권운동의 전망을 그리며 단체를 함께 준비하던 활동가가 정당의 대변인 자리를 제안받고 활동을 병행하다가 떠났다. 남은 활동가들이 발표한 성명을 두고 이러저러한 말이 오간다. 활동하다가 정당 가는 게 문제냐, 정당 가려면 단체에 허락 맡아야 하나, 단체는 그만큼 개인을 책임졌나 등등. 틀린 말들도 아니고 남은 이들이 모를 말도 아니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안팎으로 과하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는다. 원인은 여럿인데 활동가의 입장에서는 누군가 자리를 옮겨서 결과적으로 좋았던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정치적'이라는 말이 비난의 수사로 통용되고 청소년 참정권 교육이 정치적 중립을 해친다며 논란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보면 한국사회 전반에 드리운 경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이 더 긴밀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리두기보다 관계맺기가 필요한데 문제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 뒤섞여있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비례용 연합정당 제안도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수대표제가 조성한 양당구도의 혜택을 벅차게 누려온 정당이다. 보수정당이 제1당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소수정당의 몫과 가능성을 잠식한 덕분에 지금의 자리까지 갈 수 있었다. 비례대표제가 조금이나마 강화된 지금 가장 성장해야 할 것은 소수정당들이다. 그런데 실리도 명분도 더불어민주당에 갈 제안의 적극적 주창자가 녹색당의 전 공동운영위원장이라는 건 참담하다. 그는 비례민주주의연대의 공동대표이기도 했는데, 사회운동과 정치운동 양쪽에서 큰 역할과 비중을 맡다 보니 어느 한쪽에도 고유한 책임을 지지 못하게 된 상황이 이 비극의 결말이다. 
사회운동을 하다가 자리를 옮길 때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현장에서 한계를 느꼈다. 국회에 가서 직접 풀겠다." 활동하면서 정치가 한심해 열불이 터지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훌륭한 활동가 한두 명이 국회에 간들 상황이 달라질까? 오히려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조건이라 원래의 자리에서 할 수 있었던 것보다 해낼 수 있는 일이 적어지기 쉽다. 게다가 자리를 옮긴 후 얼마 안 돼 정당에서 상당한 역할이나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 나는 그 사람의 능력보다 그 정당의 무능력이 먼저 보인다. 정치운동의 자기재생산 구조가 허약하다는 증거도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리를 옮기면 그 사람을 통해 축적되었던 사회운동의 역량이 그만큼 사라진다. 손실이 아니려면,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의 관계가 안정적이어야 할 텐데 현실은 아직 그렇지 않다.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은 겹치는 구석도 있지만 나름 고유한 목표와 방법을 가지는 다른 운동이다. 사회운동을 하면서 부딪친 한계는 우선 사회운동의 전망을 세우고 전략을 점검하면서 풀어야지 자리를 옮긴다고 풀리는 게 아니다. 물론 나는 세상을 바꾸는 데 사회운동만큼 정치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운동을 하겠다는 이들도 더 많아지길 바라고 더 지속가능하길 바란다. 다만 어느쪽이든 각 운동이 자기재생산이 가능하도록 애쓰는 일에 조금 더 힘을 쏟으면 좋겠다. 
쓸데없이 멀리 돌아왔다. 내게 소중한 친구들이 낸 성명과 이어진 입장글을 읽은, 그리고 읽게 될 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다. 떠난 이가 원망스러운 사람에게, 사람이 떠날 수도 있다고 알려준들 무슨 소용인가. 그보다 떠난 이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청소년인권운동의 자리를 지키며 서로가 서로의 전망이 될 수 있도록 책임 지고 싶었던 마음을 먼저 읽어주면 좋겠다. 지금도 누군가는 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자리에서 사회운동의 고유한 힘을 지키고 키우려 애쓰고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반대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이에게 무책임하다고 말한들 무슨 소용일까. 이왕 떠났으니, 사회운동을 하며 그에게 쌓인 역량으로 더 많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 좋겠다. 나는 남은 이들의 곁을 함께 지킬 것이나,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이 어떤 관계를 맺으면 좋을지 고민이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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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4 18:52 2020/03/0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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