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가족들에게 안부를 묻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안녕하시냐고 물어도 될지, 잘 지낸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넘겨도 될지, 편치 않다고 하면 더 물어봐도 될지, 익숙한 안부 인사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그래서일까, 내게 정의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안부 묻기의 마땅함이라 하겠다.
세월호 피해자들이 마치 자신에게 모든 걸 해명해야 된다는 듯 음해하고 공격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는 상황에서 안부 묻기의 조심스러움 때문에 고립되기도 하고 무례함 때문에 상처 입는 것도 피해자다. 가해자들은, 아마도, 거리낌없이 안부를 주고 받는다. 잘 지내는 게 부끄러워서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하지도 않고, 못 지낸다고 하면 점점 말 거는 사람이 줄어들까봐 멈칫거리지도 않는다. 그 이웃과 동료들은 혹시나 용서한 줄 알까봐 인사 건네기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임자 처벌’이 중요하다.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은 참사 당시 해경 지휘부 11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죄’ 등으로 기소했다. 나는 검찰의 기소를 법적으로 비평할 전문성은 없다. 그러나 공평하지 않다는 점만은 충분히 말할 수 있다. 2015년 세월호 선장은 대법관 전원일치로 살인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고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빠져나간 것이 살인과 마찬가지라고 판결했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 해경이 책임을 덜 져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판결문이 말하듯 적절한 시점에 퇴선명령이 내려졌다면 많은 사람이 탈출해서 생존할 수 있었다. 그 ‘적절한 시점’은 해경이 상황을 인지했거나 현장에 도착한 이후로도 충분했다. 오히려 해경은 선장과 선원들보다 더 무책임했다. 세월호는 기울기 시작한 이후 해경과 교신하면서 빠른 구조를 요청(9시 6분)했고 “지금 탈출을 시키면 구조가 바로 되겠습니까?”(22분)라고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나 해경은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았다. “선장이 결정하도록 하라.”(25분) 현장에 도착한 해경123정은 알았다. 사람들이 선박 안에 있고(36분), 배가 기울어 못 나오고 있고(45분), 잠시 후 침몰할 것이라는 사실을(49분). 그때에도 해경은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시키기 바람”(53분)이라고 지휘했다. 선장이 승객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면, 해경도 똑같다.
과실치사죄. 실수였을 뿐, 죽을 줄 몰랐고 죽일 의도도 없었을 때 적용되는 죄목이다. 나는 선장과 선원과 해경 중 누구에게도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그들 모두 자신이 무언가 하지 않으면 승객들이 죽을 수 있음을 알아야 했고 살릴 방법을 찾아내 행동에 옮겨야 했다고 믿는다. 이들이 응당 기대되는 역할을 해내지 못했을 때 ‘살인죄’로 처벌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선장과 선원이 처벌받은 만큼 해경도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찰이 손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당시 재난 컨트롤타워의 책임자들 역시 살인에 연루된 자들로서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공평한 책임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정의이기 때문이다.
법은 의도를 가지고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더욱 매섭다. 그런데 많은 경우 재난은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채, 그러나 마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벌어진다. 코로나19에서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재난에서 ‘그렇게 의도한’ 자들을 찾아내 처벌하는 방식은 미끄러지기 쉽다. 세월호 참사에서 어떤 의도를 추정하는 의혹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의도하지 않았다면 쉽게 면책되는 법의 구조 때문이다. 그러나 의도를 찾아내는 것이 정의를 세우는 유일한 길일 수는 없다. 의도가 없더라도 처벌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재난을 다룰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진실이 서서히 밝혀진들 정의를 이루지 못하면 진실은 완성될 수 없다.
검찰이 해경을 기소했을 때 그들은 이제 도망갈 구석이 없다고 체념할까? 아니면 정권이 바뀌면서 희생양이 됐다고 억울해할까? 참사 당시 수사외압 의혹이 있던 자나 막말을 일삼던 자들이 버젓이 총선에 후보로 출마하는 걸 보면 후자이지 않겠나 싶다.
세월호 참사, 모든 것이 때늦었지만 정의는 가장 더디 오고 있다. 6주기를 앞두고 우리가 가장 서둘러 맞아야 할 것은 정의가 아닐까? 우리가 마땅하게 안부를 물을 수 있을 때라야 참사는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안부 묻기의 마땅함
주간미류
2020/04/10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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