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만 달라질 뿐

* 이 글은 보라돌님의 [노인학대 그리고 무상의료] 에 관련된 글입니다.

 

무릎이 아프다며 한 남자가 응급실로 들어왔다. 입구에서부터 술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더니 다가가서 진찰을 하려니 내가 취할 정도였다. 바지를 걷어올려 보았더니 점액낭염이 의심된다. 정형외과 레지던트를 호출하고 몇 가지 추가 검사를 마친 후 치료를 시작했다. 흡인을 하고 항생제 정맥주사를 시작했다. 탄력붕대로 단단히 감아주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환자는 자신을 퇴원시켜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른다. 우중충하고 죽음의 냄새만 진동하는 '행려응급실'에, 그렇지, 오래 있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항생제 정맥주사를 며칠 더 맞아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나가겠다고 한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경구용 항생제를 처방하고 탄력붕대로 다시 한번 무릎을 감아준 채 퇴원시켰다. 늘 병상이 모자라는 곳인 데다가, 항생제 투여를 반드시 정맥주사로 해야하는 적응증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프다고, 아프다고, 여전히 술냄새를 풍기며 요란스럽게 들어왔다. 목소리만 듣고도 그 환자구나 싶었다. 그러게, 말을 듣지 그랬냐는 생각을 하면서 환자를 진찰하기 위해 나갔다. 그런데 같은 주소(chief complaint)로 온 것이 아니었다. 화상 때문에 응급실로 온 것이다.

자초지정은 이러하다. 약을 받아들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갈 곳이 없다. 그리고 병원에서 자기가 '노숙자'라고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나빴다. 치료도 제대로 안해준 것 같다. (아마도, 거의 내내 술은 마셨을 듯하다.) 그래서 한나라당사 앞에 가서 농성을 했다. 당사 앞에 앉아 소리지르면서 항의를 했다. 그러다가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녁에 잠시 깨었는데 너무 추웠다. 벌벌 떨다가 무릎에 뭐가 감겨있길래 그걸 풀어서 불을 피웠다. 그리고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다. 불이 옷에 옮겨붙고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고 불은 크게 번지기 전에 껐으나 그래도 다리 부위로 화상을 입었다. 는 것이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이게 소설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고, 아, 소설도 아닌 게, ... 그나마 아저씨가 여전히 술에 취한 목소리로 횡설수설, 중얼중얼, 퇴원하던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피식 웃음이라도 나왔지, 그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때 응급실 사람들의 반응이 딱 그거였다. '기껏 치료해주고 약까지 들려보냈는데 기가 차다. 저런 인간들 공짜로 치료해주면 안된다니까'

 

난삽하게 덧글을 달아놓고 나니 막상 트랙백하려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난감하다. 보라돌의 답에 답하는 형식이면 무난하겠지?  (그리고 보라돌에게 이야기하듯이 써도 되겠죠? 이래저래 난감하군... ㅡ.ㅡ)

 

병원에서 의료보호환자들이 퇴원을 잘 하지 않음으로써 보험 환자들이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 보험환자들뿐만 아니라 보호환자들 역시 동일한 이유로 입원이 제한되잖아.  보호 Vs 보험, 이라는 대립을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는 것이 일단 드는 생각이구.

 

그 병원의 '행려응급실'에 한 달을 근무한 적 있는 나 역시 병상이 꽉 차서 입원이 안 되는 상황의 답답함, 속상함을 모르는 것은 아냐.  심지어, 복막염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입원실이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받지 못하게 되어서 어떻게든 transfer라도 해보려고 여기저기 병원에 수소문해본 적도 있구. 네가 말하는 미시적 관점이라는 것은, 아마 병상회전이 느려서 입원치료가 절실한 사람들이 그/녀들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겠지. 그 상황이 해결되는 방법은 누군가 퇴원을 하는 것밖에 없구. 맞아. 입원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빨리빨리 퇴원해야지. 그리고 정말, 차일피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퇴원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밉기도 하고 그/녀들 때문에 입원을 원하는 환자와 입원시키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의사 사이에 말다툼이 생기면 그 짜증이란 이루 말할 수 없지.

 

하지만 왜 우리는 그 상황을 두고 퇴원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에 문제의 원인을 두는 걸까. 그건 이미 거시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해. 그 집단의 집단적 정체성 혹은 심리구조에서 원인을 찾는 거잖아. 그런데 내가 덧글에서 말해듯이 그 '도덕적 해이'의 실체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욕망, 따뜻한 데서 자고 세 끼 밥 챙겨먹고 아프지 않고 살고 싶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거야.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도덕적 해이'라고 명명했을 뿐이지, 그/녀들에게 "왜 당신들은 연대의식이 없는 거야? 당신들 때문에 입원치료를 못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기 생각만 하는 거야? 공짜라고 그렇게 막 해도 되는 거야?"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거지. 집이 없어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돈이 넘쳐나 사용하지도 않는 집을 수 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왜 당신들은 연대의식이 없는 거야? 당신들 때문에 집이 없어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기 생각만 하는 거야? 돈 있다고 그렇게 막 해도 되는 거야?" 이렇게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나는 그런 의미에서 '도덕적 해이'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문제의 본질을 은폐할 뿐인 용어라고 생각해.

그래서 네가 미시적 관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거라면 굳이 '도덕적 해이'라는 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도 같구, 행여 '도덕적 해이'가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좀더 이야기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위에 적어놓은 이야기도 일종의 '도덕적 해이'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닌 의료서비스를 남용하는 거. 게다가,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거 등. 퇴원을 잘 안하는 문제와는 조금 다르지만 결국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나는 그 때 그 아저씨 보면서 저 아저씨에게 좁고 누추한 방이라도, 따뜻하게 잘 곳만 있었다면 그렇게 다시 오는 일은 없었을 꺼라는 생각을 했거든. 물론, 그 아저씨, 말도 정말 안 듣고 ㅡ.ㅡ 다른 환자들한테 방해되게 내내 소리지르고 행패부리고 그래서 짜증도 무진장 많이 났지만 아저씨가 어떤 계기로든, 갑자기 '도덕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꺼야. 겨울만 되면 '행려응급실'은 환자들이 넘쳐나잖아. 집이 없으면, 주소(chief complaint)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언젠가 '행려응급실'로 와야 하는 상황은 변함이 없는 거지.

 

(자꾸 이렇게 말하니까 좀 잘못된 것도 같은데, 모든 '보호'환자들, '행려' 환자들이 퇴원 안하려고 하고 의사 말 안 듣고 자기 관리 안하고 그러는 거는 절대 아니라는 점도 말할 필요는 있을 듯하다. )

 

중요한 건, '도덕적 해이'와 같은 분석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지. 미시적인 문제와 거시적인 문제는 구분되어 있지 않아. 어떤 문제이든, 미시적인 측면과 거시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지 않니? 그리고 그 연관성이나 총체성을 적절히 분석, 조망할 수 있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해법들이 나오는 것이겠지.

 

사실, 병원에 있다보면 그게 참 쉽지 않은 일일 꺼야. 나도 그랬던 것 같아. 그래도 제도/문화적인 측면을 살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그 둘의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밝혀서 해결을 모색하는 것까지는, 정말 쉽지 않더라. 하지만 분노와 연민을 적절한 곳으로 향하게 하는 것까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힘내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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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5 12:01 2004/12/1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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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류 2004/12/15 12:0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막상 처음에 얘기했던 primary care의 책임 문제랑, 무상의료는 얘기도 못 꺼냈당. 다음에 기회되면... 시간 무지하게 빨리 가는군.

  2. 달군 2004/12/16 19:2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문단좀 나눠주세요..-_-
    후다닥==3

  3. 미류 2004/12/17 20:0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두 문단 나눌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