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편견으로 차별 없앨 순 없어요"

인권위 '인권 포스터'에 차별 가득


"차이를 차별할 순 없어요"라는 문구가 씌어진 하얀 종이 위에는 각양각색의 얼굴들이 그려져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맞아 인권위 1층 로비에서 전시하고 있는 16점의 포스터 중 하나로 최근 인권단체와 학교로 배포된 작품이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생각이나 문화도 함께 변화시켜야 한다"며 "차별 예방과 인권향상을 위해 포스터를 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외모, 성소수자, 학력, 성차별, 나이 등 우리 사회의 차별문제를 주제로 포스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차별 예방을 목적으로 포스터를 만들었다던 인권위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포스터에 들어간 말과 그림에는 오히려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잘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럼 뭐합니까 숏다리라고 여자들이 별로 안 좋아해요"는 '숏다리'가 잘 생긴 외모를 가리고 있다는 것으로 읽혀 '숏다리'라는 외모 차별을 인정하는 셈이 되었다. "전 대머리지만 눈썹은 많아요" 역시 대머리라는 '단점'이 있지만 숱 많은 눈썹으로 머리카락을 대신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제가 그렇게 촌스럽게 생겼나요?"라고 묻는 여성의 얼굴에는 주근깨를 가득 그려놓았다. 주근깨 박힌 얼굴은 촌스러운 것이지만 그렇다고 '촌스럽다고 놀리지는 말자'라는 것. '차별'이 인권침해적이라는 메시지를 드러내려던 것이 오히려 사회에서 통용되는 '외모차별'을 인정해버린 모양새가 되었다.

포스터의 인권침해는 비혼여성이나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어처구니가 없다. 혼자 사는 여성을 표독스럽게 그려놓는다거나, 남성 동성애자를 머리를 기르고, 입술 화장을 한 모습으로 그려 놓아 이들이 대중문화 속에서 '전형적으로 묘사'되는 것을 조금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차별'을 주제로 포스터를 만들겠다던 인권위가 스스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하고 있는 꼴이다.

심지어는 인권과 관련이 없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금색의 머리를 한 여성을 그려놓고 "금발로 염색했어요. 왜냐면 미국은 금발을 좋아하거든요"라거나 "펑크족이 한국말로 양아치라구요?"라는 말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이렇게 제작된 포스터는 앞으로 학교 수업용이나 지하철 등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배포될 예정이다. 하지만 인권위가 소수자의 인권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인권침해적인 요소들로 가득한 포스터를 배포하는 일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배포된 포스터에 대한 회수와 아직 배포되지 않은 15점에 대해서는 '인권의 시선'으로 반드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김영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4/12/14 13:20 2004/12/14 13:20
태그 :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aumilieu/trackback/136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달군 2004/12/14 13:2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 그렇구나. 이상한 느낌이 들어도 '인권위'라는 이름에 가려서 깊이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렇군요..

  2. 미류 2004/12/14 13:5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인권위'라는 이름이 들어가면 더 걱정될 때가 많기도 한데... ^^;; 근데 저는 아직도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기는 해요.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문제의 소지가 많은데 전체적으로 보면 완전히 엉뚱하잖아요. 그래서... 좋게 해석해주면 이러저러한 차별이 얼마나 우스운 짓이냐, 라고 가볍게 까주는 건 아닐까 하는... 근데 아무래도 너무 좋게 해석해주는 것 같긴 해요. ㅡ.ㅡ 그래도, 이러저러한 차별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잘못된 거예요, 차별하지 마세요, 라는 접근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들고...

  3. jineeya 2004/12/14 19:3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하하, '가볍게 까주는 건 아닐까' 미류님의 자세가 도닦은 이의 경지인 것 같아요.^^
    어떻든 보는 이로 하여금 헷갈리게, 또는 오히려 기분 나쁘게 만든다는 건 이미 '포스터'로써의 기능 상실 아닌가 싶어요.

  4. siwa 2004/12/14 22:1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도 사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나쁘다고 확언할 수 없는 모호함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하나하나 씌여진 발언들을 보면 정말 기본적으로 인권의 관점이 결여되어 있어서, 이를 '가볍게 까준다'고 보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랑방에서는 분노하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닌데 급기야 이 포스터가 정녕 인권포스터인지 판단해보라고 사무실에 붙여놨어여. 정말 인권위 이름 아래 가려지는 행태가 참 많은듯.

  5. 플뢰르 2004/12/15 00:4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인권위에서 만든 '여섯개의 시선'도 보면서 참 웃겼는데요..ㅋ

  6. 미류 2004/12/15 10:5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jineeya, 도닦은 이의 경지라니, 저는 아직 도 쓸지도 못했어요~ ^^;; 근데 '포스터'로써의 기능 상실은 분명한 것 같아요.
    시와, 나두 이제 정리했어. 모호함이 불쾌한 모호함이라면 그걸 굳이 좋게 해석해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그리고 어쩌면 내가 '모호함'을 느꼈던 건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였기 때문은 아닐지 하는 반성도 되구...

  7. 미류 2004/12/15 11:0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플뢰르, 여섯 개의 시선 얘기 더 듣고 싶어요. 저는 지금은 기억나는 게 별로 없고 임순례 감독이 만들었던 거랑, 장애인 얘기 했던 거랑 두 단편이 기억나는데, 그때는 웃기다는 생각 못했거든요. 궁금해요. 플뢰르가 느꼈던 건 어떤 건지... ^^;;

  8. 현근 2004/12/15 12:2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잘기억은 나지 않는데 여섯개의 시선에서....하나 무슨 이야긴지 알수 없는게 있긴 했습니다..
    뭐더라....엄마가 아이보고 저사람이랑 놀면 안된다고 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간간히 던져주는 아이템으로 도저히 알수가 없더군요....화면 구성이 참 재밋긴 했는데..쩝..

  9. 미류 2004/12/15 12:3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뭐였는지 기억이 조금 나요. 그 감독이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감독이어서 조금 놀랐던 기억까지. 저도 그 이야기 잘 모르겠더라구요. 영화해설 같은 데서는 가해자 신상공개에 대한 조심스런 문제제기라고도 하던데... 글쎄, 차라리 아동의 인권침해를 고발한 것이라면 모를까 ㅡ.ㅡ

  10. rmlist 2004/12/15 13:4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도 플뢰르 생각이 궁금해요. 왜냐하면....<여섯개의 시선>을 보면서 그냥 넘어갔는데 플뢰르가 짚어주면 좋을 것같아서. ^^ 참고로 여섯개의 시선 중의 장애인 에피소드 관련 글은 제가 공동체에 올려놓았는데. http://go.jinbo.net/inmylife

  11. 플뢰르 2004/12/15 17:0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님 의견과 비슷해요. 피해자의 인권도 존중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해자의 인권얘기를 버젓이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웃겼고.. 차라리 엄마 마음대로 일상이 좌지우지되는 아동의 이야기를 했으면 더 좋았을껄.. 하는 거요. 나중에 더 자세히 쓰고싶어용..

  12. 미류 2004/12/15 17:5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플뢰르, 나중에 자세히 쓰면 가서 읽을께요. ^^ 천천히 쓰세요. 5편의 다른 영화도 어떻게 봤는지 써줘요~옹. 마지막에 얼굴값, 그것도 애매하게 불편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