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에

일요일 저녁. 뭔가를 정리해야겠다 싶은 마음에 오후 느즈막히 시내로 나왔다. 이런 날, 오랜만이다. 좋다.

 



예정되었던 날짜에, 큰 무리없이 재판을 진행했고 어제 드디어 선고재판과 문화제까지 마무리되었다. 다섯 달쯤 달려왔던 날들을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앞으로 가야할 길을 그려보기는 더욱 쉽지 않다. 그래도 몇 가지 메모는 남겨두어야지 싶었으나 좀더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은 듯하다. 개요라도 잡고 나서 다시 써야겠다.

 

많이 배웠다. 한 명 한 명이 써준 기소장들을 읽으면서 -최근 올라온 기소장들은 잘 읽지 못했지만- '기획'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기소인'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한 명 한 명의 기소장을 받자는 제안을 하면서도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소이유를 쓸까 짐작할 수없었다. '기소'라는 법률용어가 주는 부담감도 있겠지만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바라는, 자신만의 이유를 글로 정리해보는 과정은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살람이 말했듯, 하루에 1분만이라도 매일같이 생각해야 하는 일이기에. 그래도 그렇게 모인 고민들이 운동을 풍부하게 만드는 힘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많이 배웠다.

다른 실행위원들 보면서도 많이 배웠다. 단언컨대, 대단한 사람들이다. 열정적이고 창조적이고 활력이 있다.

 

12월 들어서 다른 일들에는 거의 손을 놓았다. 그만큼 재판을 열심히 준비했는지, 전범 민중재판운동을 열심히 만들어갔는지는 다시금 돌아봐야 할 테고 일단 휴지 상태의 것들을 살려놓아야겠다. 그리고, 정말 책을 읽고 싶다.

 

솔직히, 이번주는 힘든 주였다. 지금까지 왜 이 정도밖에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자꾸 밀려드는 걸 어쩔 수 없었고 재판이 끝난 이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도 통 정리되지 않고. 일주일을 각오하고 덤벼들었어야 하는데 내 자리를 잘 못찾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지 못하는 느낌도 종종 들었다. 그래도 신나게 웃으면서 하려다보니 말이 많아졌던 것도 같고. 묵묵히 일하는 스타일은 못되나 보다 싶어 속상하기도 했고.

조금은, 소모적인, 그러니까 무언가 내보내기만 했던 느낌.

그래도, 잡히지 않을 뿐, 뭔가 소중한 것들이 내 안에 담긴 느낌까지, 일요일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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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2 19:46 2004/12/1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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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이 글은 미류님의 [일요일 저녁에] 에 관련된 글입니다. 하나의 밀알이 차곡차곡 모여 평화와 전쟁없는 지구가 오는 밑거름이 되기를.... 전범민중재판이 밀알음 모이는 작업이였다면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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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njang_gongjang 2004/12/12 23:3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재판 이후 실천투쟁을 기대해 봅니다.
    철군투쟁이든 무슨 투쟁이든 이제 명백한 투쟁을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내가 결정한 사안에 최소한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민중의 이름으로 심판이 된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수고 하십시요.

  2. 해미 2004/12/13 09:3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려. 수고도 많았고, 고민도 많아 질거구... 그래두 우리, 잘 할 수 있겠지?

  3. 미류 2004/12/13 10:3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문정현 신부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여기서 끝나면 연극 한 편을 본 것일 뿐이라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야겠죠. 오타맨, 고마워요. ^^ (앞으로의 투쟁에 대한 제안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 )
    해미, 우리는 잘할 수 있다, 내일은 더! 잘할 수 있다. 매일 중얼거리던 말... ^^;;

  4. 김강 2004/12/13 18:4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안녕하세요^^ 제가 아는 '미류'씨 맞지요?^^ 전범민중재판이 기말고사랑 겹쳐 마지막 날에만 참석했지만,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

  5. 미류 2004/12/13 19:1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 사랑방에서 알게 된 그 분인가요? 마지막 날에 얼핏 뵜는데 인사를 제대로 못 나눴죠? 감동을 나눌 수 있었다니 행복하네요.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날의 감동이 1,2,3차 재판에 비해서 가장 적었는데 ^^;; 앞으로도 종종 뵈요!

  6. juniyaho 2004/12/13 22:0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날 잘 들어가셨조? 전 뒷풀이에서 무리한건 아닌데.. 2틀 잠을 못자서.. 일욜 오후 3시 넘어 눈을 떳드랬지요..ㅠㅠ
    실행위 분들이 정말 힘 많이 드셨을거에요.. 고생많으셨어여... ^^

  7. 미류 2004/12/14 09:5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넵~ 잘 들어갔습니당. 명단 정리하느라 잠 못 잤나봐요.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앞으로도 자주 뵙게 되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