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동강나는 이주노동자

화요일이었다. 오른쪽 발목 아래가 퉁퉁 부은 이주노동자가 병원을 찾아왔다. 처음에 그는 단속반원들이 전기충격봉 같은 것으로 발목을 쳐서 전기화상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발목의 외상이 전기화상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발이 부은 정도를 보았을 때 골절과 같은 손상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동네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판단이 들어 큰 병원으로 가보셔야겠다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병원을 찾아가 마음놓고 진료를 받기 어렵다는 것 역시 충분히 짐작되는 일이었다. 함께 동행했던 분도 갈 만한 병원을 알아봐달라고 하셔서 생각나는 대로 전화를 했다. 마침 연락이 된 병원에서 와보라고 해서 병원을 소개해드렸다.

 

저녁 늦게, 전화드렸던 선생님께 연락해봤더니 골절이 맞단다. calcaneus fracture(우리말로 무엇인지 생각 안 난다 ㅡ.ㅡ;)라고, 주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가 생기는 골절이다. 처음 이주노동자가 왔을 때 떨어지거나 넘어져서 다친 적은 없다고 들은 듯한데 탈출하는 동안 어딘가에서 뛰어내린 적이 있을 듯하다. 인간의 몸도 물리학의 법칙으로부터 배제된 공간이 아닌지라 대부분의 골절에는 특징적인 양상이 있다. 물론, 물리학의 법칙 자체가 완벽한 것은 아니므로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높은 곳에서 무리하게 뛰어내렸거나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다른 힘이 작용해 불안정한 착지를 하다가 골절이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문제의 핵심은 아닐 것이다. 직접 맞아서 생긴 것이든, 간접적인 방식으로 골절을 조장한 것이든, 그가-또한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언제든 공권력에 의해 다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다쳐서 발이 퉁퉁 붓고 걷지도 못할 지경이면서도 마음놓고 병원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내가 있던 병원은 나름대로 이주노동자들이 자주 찾는 병원이다. 그런데도 다친 지 하루가 지나서야 찾아왔다. 아마 처음에는 그렇게 심하게 붓지 않았을 테고 경황이 없어 통증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 그 정도면 다급하게 병원을 찾는 것이 자연스럽다. 내가 속상했던 것은 아프다거나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느낌마저도 억누르고 있는 단속정책의 실상이었다.

 

아직 등록되지 않은 상태뿐인 것을, 무슨 범죄자를 긴급체포하듯 무리하게 단속하는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단속의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두 동강난 것은 발뒤꿈치뼈만이 아니다. 단속 자체가 이주노동자를 두 동강낸다. 노동현장에서는 '기계보다 훌륭한 인간'이 되어 혹사당하지만 그 밖의 공간에서는 아플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인간의 모습을 띤 기계'가 되는 것이다.

 

그게 이틀 전이다. 사실, 너무 화가 나서 블로그에 진작 쓰려다가 병원도 마음놓고 가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함부로 쓰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묻어두었다. 늦게라도 사건을 공론화할 의지를 밝혔다니 부디 수술 잘 받고 쾌유하기를 바란다. 아누아르 위원장의 표적연행이나 이번 사건이 단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또한 바란다.

아플 때는 앓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병원도 다닐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저 사람인 것이다.

부디 건강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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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9 16:23 2005/05/1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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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미류님의 [두 동강나는 이주노동자] 에 관련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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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바리 2005/05/19 16:5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주 단순한 진리, "아플 때는 앓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병원도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그것이, 왜 이리 힘든 현실일까요. 젠장...

  2. 트루로드 2005/05/19 19:2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뛰어내려서 다친게 아니고, 단속반원이 무언가 신무기(?)를 던졌대요. 그게 뭔지는 밝혀지지 않았고요. 정말, 출입국의 인간사냥은 끝간데를 모르겠군요.

  3. 해미 2005/05/19 21:0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날 한 이야기가 이 이야기었구나. 글 찮아두 참세상 기사보구 아무래두 그날한 얘기인것 같아 맘에 걸렸었는데...

  4. 미류 2005/05/20 11:1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노바리, 정말 맘상하는 일들이 많아요. ㅡ.ㅡ; (어제 인터뷰는 잘 하셨나요? ^^;)

    트루로드, 보도자료는 읽었어요. 굳이 이야기하면, 저는 어떤 물체에 맞아서 그런 골절이 생길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X-ray를 직접 본 건아니지만 낙상의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어요. 다만, 그게 '신무기'에 의한 골절이든, 그렇지 않든 출입국 하는 짓이 끝간데를 모른다는 건 분명하죠.

    해미, 어, 맞아.

  5. 노바리 2005/05/20 14:2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님, 제가 영어 블로그를 열었어요. 한글 읽지 못하는 이주노동자 중에 영어로 의사소통 가능한 분들이 꽤 있거든요. 또 영어 쓰는 전세계 불특정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욕심도... ^^; 해서 말인데, 미류님의 이 글 영어로 번역해서 거기에 올려도 될지요?
    글구 어제 인터뷰는... 흐. 그냥 수다판이 되고 말았어요. 그분보다는 좀더 상황이 한부모가정 쪽을 인터뷰해야 할 것 같아요.

  6. 노바리 2005/05/20 14:2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참, 영어 블로그 주소. http://bittersweetlife.net/vedder
    예요.

  7. 미류 2005/05/20 20:3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번역해서 올리신다면 저야 영광입지요~ ^^;;

  8. 노바리 2005/05/20 21:3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제 영어가 좀 후져요. ㅎㅎ 어쨌건 그래도, 올렸답니다. 함 확인하시고, 혹시 이 부분은 고쳐야 할 것같다 싶으신 부분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

  9. 마님 2005/05/21 00:2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님. 그 다친 분과 함께 병원에 다니셨던 분이 아마도 제가 아는 이주노동자분이신 것 같더군요. 저도 그분한테 전화로 소식듣고 깜짝 놀랐어요, 정말.

  10. 미류 2005/05/21 00:5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노바리, 제 영어는 많이 후져요. ㅡ.ㅡ;; 읽어봤는데 제 글보다 더 좋은 것 같네요. ㅎㅎ

    마님, 그랬군요. 한국인 한 분과 이주노동자 몇 분이 더 오셨더랬어요. 같이 오신 분들도 많이 속상해하셨어요.

  11. labrev 2005/05/21 13:4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감사합니다.
    계속 관심있게 홍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화요일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가해자가 누구인지, 아마 법무부의 직원이것 등 등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미류입니다. labrev님, 병원이 공개되면 안될 것 같아서 님의 덧글을 옮겼습니다. 제가 수정할 수도 없고 전체를 삭제할 수도 없어서 님의 덧글을 복사해 옮기고 처음 남기셨던 덧글은 삭제합니다.
    그리고 또 관련사실을 알게 되면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12. 이주노조 2005/05/21 16:3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님, 우선 감사합니다. 그런데 병원 이름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답글에 있는 것도 고칠 수 있다면 좋겠네요.출입국측이 계속 로크만씨를 찾으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다쳤느냐는 지금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로크만씨가 낙상이 아닌 폭행에 의해 다쳤음을 확신하고 계시고 저희 역시 그 판단에 따라 대응하고 있습니다. 참고바랍니다.

  13. 미류 2005/05/21 17:3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이주노조님, 수정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 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할텐데 출입국관리소가 눈에 불을 켜고 있겠죠?
    그리고 참고하라는 부분이 어떤 말씀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조차도 어떻게 다쳤느냐를 매우 중요한 문제로 삼는 것이 오히려 투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듭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로크만씨와 이주노조의 입장을 존중합니다. 제 글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실 때 구체적으로 지적해주시면 다시 고민해보겠습니다.
    건투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