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멀리 떨어져

처음 봤다. 그네들의 얼굴을.

텔레비젼 자료화면에 언뜻 비치는 고개숙인 모습이 아닌,

폭격 속에서 이리저리 흩어지는 발자국으로 만나는 그네들이 아닌,

머리를 겨눈 총구에서 총성이 울리기도 전에 공포가 머리를 관통했을 것만 같은 흑백사진,

화염을 뒤로 하고 맨발의 아이들이 거리를 달려나오는, 그런 사진이 아닌



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방공호를 만들고

시장으로, 논으로 몰려다니고

가면극을 보며 낄낄대고 웃는 그네들을.

전쟁을 살아내는 삶을.

 

67년에 프랑스의 '젊은' 감독들이 공동제작했다는

'베트남에서 멀리 떨어져'는 전쟁, 평화, 그리고 혁명에 대한

어지러운 고민들을 담고 있다.

질문이 너무 많거나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보다는

대답하려 들수록 뿌옇게 흐려져 어지러운.

 

베트남에 대해서 모르는 건 아니잖아.

책도, 영화도, 처음은 아니잖아.

그리고 많은 말들을 해오지 않았니.

전쟁, 평화, 그리고 혁명을 이야기할 때마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는 것들이 많다.

한국전쟁과 비슷한 맥락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도

전혀 다른 상황으로 마무리된 것은 왜일까.

전세계에 반전운동의 빚을 남긴 베트남과

참전미군들에게 빚을 자처하는 한국.

호치민을 부를 때마다 민중의 역사를 기억하는 베트남과

60년이 지나서야 사회주의 운동가들 몇 명을 '찔끔' 독립운동가로 인정하는 한국.

왜일까만 묻느라 어떻게 할까를 묻지 못한 때문은 아닌가...

 

영화는 반전운동에 대해서도 끝없는 질문을 던진다.

베트남에서 멀리 떨어져 반전운동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수많은 전쟁 중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고다르는 세계 곳곳을 베트남으로 만들자고 선동하지만

그의 카메라가 쉽게 제자리를 찾을 듯해보이지는 않았다.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멀고 가까운가.

 

영화를 보고나니

이라크...

이라크를 이야기했던 기억들이 스쳤다.

얼마 지나 살람이 위험하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우리가 말하든 말하지 않든 전쟁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것.

어제 다녀온 원폭 피해자 증언대회에서는

한국에도 여전히 전쟁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베트남에도 그렇게 전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겠구나... 하는 뒤늦은 생각.

그리고 베트남으로 '해외봉사활동'을 한다며 떠난 한 친구 생각도 났다.

활동 내용에 불만이 많았는데, 그렇게 베트남으로 간다고 가까워지는 것도 아닌 것.

 

전쟁. 끝나기 전에는

어디에 있든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

멀게 만드는 것은 망각과 무심함일 뿐.

하지만 기억한다고 관심을 기울인다고 가까워지는 것도 아닌 듯.

전쟁, 평화, 그리고 혁명.

어지러운 고민보다는 단호한 행동...

 

'영화와 혁명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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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5 13:18 2005/08/0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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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다르, 크리스 마르케, 요리스 이벤스, 아네스 바르다... 이들이 공동 제작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만으로도 적잖은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부러웠다. 유명 감독들의 나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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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다소녀 2005/08/08 11:2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시간 내서 보러 갈까 해요.
    추천 좀 해 주세요. ^^

  2. alt6mm 2005/08/08 11:4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끝없는 질문들... 고다르의 질문들과 독백들은 관념으로 보이기도 해요.
    '영화의 혁명'이 곧 '노동자 계급투쟁'이라는 그의 선언은 동의하기 어렵지만... 지금 안온해 보이는 일상을 사는 이 거리가 바로 베트남이란 그의 선언은 동의할 수밖에 없는 강령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어지러운 고민보다는 단호한 행동! ^^

  3. 미류 2005/08/09 16:4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바다소녀, 저도 별로 못 봤는데 ^^;; 베트남에서 멀리 떨어져는 추천하고 싶은데 이제 프로그램에 없더라구요. ㅡ.ㅡ;

    alt6mm, 모든 거리가 베트남! 지금은...? ^^;

  4. alt6mm 2005/08/10 13:3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지금은?
    글쎄요. 지금도요.
    물론 6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지금 이곳이 베트남'이라고 말하는 것과 2005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지금 이곳이 베트남'이라고 말하는 것의 의미는 다르겠지만요...
    이라크로 떠날 생각을 하지 말고, 지금 이곳의 전쟁의 그림자/ 구조들에 더 치열해야 한다는 소박한 의미 정도라도...(작년 10월경 전 이라크로 카메라를 들고 가야한다는 생각에 온통 사로잡혀 있었거든요. ^^)

  5. 쇼조게바 2013/01/20 00:1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우왕... 영화와 혁명이라는 수업 참고 영화에 이 영화가 있어서 찾아봤는데 미류의 글이 뙇..!! 반드시 보고 수업 들어야겠어욤!!

    • 미류 2013/01/22 00:27 고유주소 고치기

      보고 나서 어땠는지도 들려줘요~ 오래돼서 난 영화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능~ ㅡ,ㅡ;; 그래도 '전쟁'과 '평화'와 '혁명'에 남다른 고민이 있을 것 같은 그대의 생각이 궁금궁금!! ^-^

    • 쇼조게바 2013/01/22 11:18 고유주소 고치기

      다운로드가 백만년은 걸리네욘... -_- 그래도 받고 말겠어...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