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몰아부치고 있는 거지

또다시 전자팔찌. 이번에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작년에 법안이 발의될 때는 '실소'했지만 지금은 묵직한 분노와 안타까움이 더하다. 그때의 혼란스러움과 그 혼란을 만들어내고 있는 자들에 대한 분노는 마냥 그대로인 듯하다.



당신 딸이 당했어도 전자팔찌를 반대할 꺼냐고.

전화를 건 분은 딱 그 아이만큼의 딸을 두었을 것 같은 여성이었다. 인권단체들이 전자팔찌에 반대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분통이 터져서 전화를 했다고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전화를 받은 나는 딸이 있을 것이라고 여겨질 만한 목소리는 아닌, '인권단체'의 '여성' 활동가였다. 전자팔찌를 반대하면 가해자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마는 곤혹스러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왜 또다시 '저들'이 만들어놓은 구도 속에서 난감해해야 하는 걸까. 피해자 인권과 가해자 인권이라는 대립 속에서 성폭력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묻혀버리고 만다. 성폭력을 근절하자며 어수선한 이때 왜 나는 안절부절못해야 하는 거냔 말이다. 그리고 왜 또다른 어떤 여성에게서 찬성이냐 반대냐 추궁을 당해야 하는 거냔 말야.

 

여전히 사람들은 '가해자' 인권을 이야기한다. 어떤 사건이 있었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었을 뿐이라는 담론 속에서 여전히 성폭력이 범죄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유난스런 가해자 몇 명을 잡아서 관리하면 성폭력이 사라질 것처럼.

'범죄'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무엇이 범죄인지는 때와 장소를 달리하며 새로워진다. 남의 것을 훔친다거나 다른 사람을 죽인다거나 여성을 강간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범죄'였으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범죄'로 규정되는지는 달랐다. 누구의 것을 누가 훔쳤는지, 누가 어떤 여성을 강간했는지에 따라 처벌을 하기도 했고 처벌을 하지 않기도 했다. 중세 장원의 영주가 결혼하는 여성과 하루밤을 보내는 것은 '관습'이었다더지.

범죄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듯하다. 빵이 넘쳐나서 버려지는데 그 빵을 가져다먹는 것이 왜 도둑질이냐고 되묻던 삐에르 신부(빈집점거운동의 상징 같은 분이라고 한다)의 말처럼 지금 범죄로 다루어지고 있는 행위들이 여전히 '범죄'인지를 성찰하게 하는 의미가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지금 '범죄'이지 않은 행위들이 사회적으로 사라져야 할 행위이지는 않은지 성찰하게 하는 것. 모든 이들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 일정 정도의 강제력을 발동해야 할 어떤 행위를 우리는 '범죄'로 만들어야 한다. 전범을 재판하듯이.

지금의 논쟁구도는 성폭력의 범죄성에 대해 새로운 성찰을 불러오지 않는다.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는 '나는 죽을 힘을 다해 저항했어요. 하지만 그 미친 놈은 나를 강간했어요. 그래서 나는 지금 너무 힘들어요.'라고 호소해야 한다. 그래야 '그 미친 놈'에 대한 '공분'이 만들어진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하도록 강요하는 사람들이 한편에서는 '그 미친 놈'을 때려죽이자고 한다. 그래서 '그 놈들'을 때려죽이고 싶은 나는 전자팔찌와 유전자정보, 화학적 거세 등을 찬성하지 않고서는 '공분'을 나눌 수가 없다.

누가 나를 이렇게 몰아부치고 있는 거지?

 

범죄에 대한 처벌은 각 사회나 공동체가 어떤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살펴보는 소재가 될 수도 있다. 이제 와 남의 물건을 훔쳤다고 손가락을 자르는 일은 더이상 없지 않겠는가.

범죄에 대한 처벌이란 불가피하게 인권에 대한 제한조치가 된다.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일정 정도 제약하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을 교도소에 '가두는!' 것은 인권침해가 아닌가. 그렇게 범죄자나 피의자 인권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

'어떤' 제한이라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에 대한 제한일 지는 우리가 결정할 몫이다.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유독 프라이버시와 직업선택의 자유 같은 것들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는가.

성폭력이라는 범죄에 대해서 신상공개가 적절한 처벌이라면, 직업선택을 제한하는 것이 적절한 처벌이라면, 혹은 감시가 적절한 처벌이라면 그것을 검토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나는 더이상 전자팔찌를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게 처음 법안이 발의될 때와 조금 달라진 내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전자팔찌를 반대한다.

가끔 들르는 빵집에 어느날 CCTV가 설치됐다. 계산대 옆 모니터에는 지갑에서 동전을 헤아리는 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순간 불쾌한 느낌이 들었고 알바생으로 보이는 그녀에게 한마디 던지고 나왔다. 사무실까지 가는 동안 문득 그녀는 일하는 내내 CCTV 에 갇혀있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건 또 얼마나 불편한 일일까. 도둑을 잡겠다고 걸어놓은 CCTV일 테지만 어느 순간 카메라를 의식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가 행동하는 대로 CCTV가 보는 상황은 아주 자연스럽게 CCTV가 보는 대로 행동하는 상황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게 CCTV, 감시의 기술이다. 권력의 시선에 길들여지는 것.

언제부터 몰래카메라가 유행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언제부터 연애인의 섹스장면이 몰카를 통해 유통됐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내 은밀한 행위들이 혹시 누군가에 의해 찍히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됐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런 '현실적인 상상'을 하게 되는 나는 모든 감시와 감시의 기술이 싫다.

적어도 분명한 것은 감시의 시선이 여성적일 리는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면서 훑어내리는 시선이 여성의 것일 수 있을까. 지금 여기에서?

나는 전자팔찌를 계속 반대할 것이다. 누군가 전자팔찌든, CCTV든 감시의 기술이 무성적인 것이고 때로는 여성에게 유리할 수도 있으며 권력의 위계를 만들지 않는다고 나를 설득하지 않는 한.

 

그래서 결국 또다시 전자팔찌에 대해 말하고 있는 내가 못내 짜증난다. 내가 원하는 건 몇몇 '그 미친 놈'을 잡아서 처벌하고 감시하는 게 아니었다구.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나에게 돌려달라구. 그래서 '그 놈들'을 없앨 수 있도록 말야.

길을 가다가 '도둑이야' 소리치면 모두들 쫓아가려고 하잖아. 그런 거. 길을 가다가 '나를 만졌어' 소리치면 모두들 쫓아가서 혼내주는, 그래서 말하지도 못하고 혼자 두려움과 분노와 억울함, 좌절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도록, 나 혼자 신고든 처벌이든 모든 것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도록,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거야.

술마시면서 여자가 술따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너희들이 도입한다는 팔찌 나부랭이, 하나도 안 고마우니 제발 가만히나 있으셔. 성폭력의 질서에 저항할 언니들과의 연대, 그 가장 소중한 힘을 너희들이 갉아먹고 있다구.

처벌이든 감시든, 우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해. 성희롱도, 성구매도, 데이트 강간이나 원하지 않는 신체적 접촉도 팔찌 채우고 거세해야 한다고 우리가 주장할 때 뭐라고 하나 두고 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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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4 14:56 2006/02/2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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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의 [난감한 현상] 에 관련된 글. &nbsp; &nbsp; 제1야당의 사무총장이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고 모든 당직을 사퇴하겠...

  2. 진수희 의원의 ['전자팔찌는 너무나 '인권적'이다]에 대한 반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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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ong 2006/02/24 15:1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정말 끔찍한 일이지요. 전자팔찌라.
    감시와 처벌에 대한 이야기와 조금 다른 맥락에서 문득 이런 상상도 해봐요. 으슥한 골목에서 한 남성을 마주쳤을 때, 그의 손목에 전자팔찌가 없다고 해도 여전히 두려울 거라는. 그리고, 그의 손목에 팔찌가 채워져있다면!!! 얼마나 공포스러울지. 헉.

  2. 미류 2006/02/24 15:2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웁 정말 그래요. 그래서 지금의 어수선함이 더욱 속상해요. 성폭력 근절을 위한 유일한 혹은 획기적인 방안인 것처럼 이런저런 제안들이 나오는 동안 성폭력에 대한 여성주의적 고민들은 더욱 자리를 잃고 있는 것 같은...

  3. 나루 2006/02/26 20:0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도 전자팔찌를 반대합니다
    언젠가 이에 관한 글을 저도 써야할 것 같군요

  4. 행인 2006/02/26 23:1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웅... 이게 참 어이가 없는 것이 저도 그런 내용으로 포스팅을 했지만서도 룸사롱이나 단란주점, 노래방 같은 곳에서 도우미 불러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돈으로 성을 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든요. 분명히 상대방이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고 있는데도 찝적거리는 짓을 하면서 그걸 추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단 말에요. 그러다가 어느날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참혹하게 죽으니까 온갖 소리를 다 하고 있단 말이죠. 그래서 누가 그랬던가봐요.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제 눈에 대들보는 못 본다고...

  5. 나탈 2006/02/26 23:3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님 말처럼 정말 매일 기사를 장식하는 이런 저런 대책속에서 여성주의적 고민들은 사장되고 있는것 같아요. 행인님이 지적한 것처럼 무고한 피해자와 아닌 사람을 나누고 있고, 극악한 가해자와 아닌 사람을 나누면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는 방식들. 정말 어이가 없었던 것은 성폭력가해자의 야간외출을 금지하자는 것이었는데 어린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일 수록 주간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성폭력은 밤에만 일어난다는 통념을 재생산하고 있는것 같아요. 철저한 '무고한 피해자/극악한 가해자' 구도속에서는 '효과적인'(다른 말로 손쉬운) 법률이 나올지 몰라도 성폭력을 용인하고 유지하는 구조는 어쩐지 점점더 강고해지는 느낌이에요.

  6. 미류 2006/02/27 17:3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나루, 그때도 같이 이야기 나눠요. ^^

    행인, 글 잘 읽었어요. 장사치 같다는 느낌, 저도 십분 공감해요. 글구 감시와 프라이버시 쪽 사안이 터지면 늘 행인 생각이 나는 걸 어쩌죠? ^^;;

    나탈, 최근의 제안 나부랭이들이 성폭력에 대한 남성들의 통념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정말 위험한 듯해요. 무언가 자유로워지는 느낌보다 옥죄어오는 느낌이 드는 것... 어여 힘을 길러야겠어요. 빠샤~ ^^

  7. 미류 2006/02/27 17:3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수잔 브라운밀러가 강간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는데 지금 상황에서 되새겨볼 만한 것 같아요.
    "그리스의 전사 아킬레스는 개미의 후예인 한 무리의 남자들, 미르미돈을 고용하여 전투에 나가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도록 했다. 충성스럽고 의심이 없는 미르미돈들은 효과적인 공포의 대리자로서 익명으로 활동하면서 주인에게 잘 봉사했다. 경찰기록부의 강간범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모든 남성들을 대신하여 미르미돈의 기능을 수행하는것이다. 정체를 은폐하는 신화로 덮인 그 사람들은 익명의 공포 수행자들이다. 그 사람들은 더러운 일, 현실적인 가해를 한 자들이지만, 그 사람들의 단순한 정신에서 나온 악이 주는 지속적인 이익은 언제나 다른 남성들, 즉 계급과 지위에서 그 사람들보다 우월한 자들에게 발생한다."

  8. 윤영 2006/03/01 16:4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