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xing the body

네이버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주간조선에 실린 'sex가 몸에 좋은 열 가지 이유'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이 기사는 섹스가 몸에 좋은 열 가지 이유를 늘어놓고 말미에 주의해야 할 점을 정리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주는 기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웃으며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일곱번째 이유를 설명하는 단락은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이렇게 투덜거린다.

 

--- 일곱째, 정신적으로 사람을 안정시키고 우울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섹스를 하고 나면 사람을 이완시키는 부교감 신경이 자극돼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고 숙면에도 도움이 된다. 또 아연, 칼슘, 칼륨, 과당, 단백질 등을 함유한 정액 자체가 우울증을 완화시킨다는 보고도 있다. 뉴욕 주립대 학생들의 연구에 따르면 콘돔 없이 섹스를 한 여성들은 콘돔을 사용한 채 섹스를 했거나 섹스를 하지 않은 여성에 비해 우울증 증세도 덜 겪고 자살시도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액의 각종 좋은 성분이 질을 통해 흡수됐기 때문일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

 

뉴욕 주립대 학생들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연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결론의 '반동성'에 화가 났다. 어쨌든 콘돔 없이 섹스를 하도록 여성들에게 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연구'를 하면 저런 결론이 나올 수 있는지 한참을 궁리해보았지만 도저히 연구설계가 안 나온다. 섹스가 일회성 행사라 한번의 섹스가 이후의 삶에 지속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정도 불가능하고 만약 섹스를 그야말로 일상적 행위라 가정한다면 여성들의 다양한 섹스를 콘돔의 사용 여부로 구분한 것도 억지스럽고 다른 일상, 예를 들어 식사나 흡연, 음주, 나이 등의 일반적 변수들은 어떻게 처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 이유가 정액의 각종 좋은 성분!이 질을 통해 흡수됐기 때문일 것이라 추정한 상상력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 만약 우울증이나 자살시도와 여성의 섹스의 관계가 궁금했다면 섹스의 구체적 형식보다는 섹스를 함에 있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얼마나 실현되었는가가 더욱 궁금한 주제였을 법도 한데. 일반적으로 콘돔을 사용하는 섹스가 여성의 자율성이 좀더 보장되는-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콘돔 사용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보통 콘돔은 여성에 의해 요구되기 때문에- 형식이라고 한다면 위 연구의 결과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에 역행할 수도 있다. 실컷 궁시렁대다가도 어쩌다가 이런 기사를 보게 되어 아까운 에너지를 쓰고 있나 싶어 짜증이 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기사는 몇 가지 생각해볼 꺼리를 던져준다. 어제 사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우선, 위 기사는 '의료화'의 전형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위와 같은 근거들이 섹스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뿌듯함을 주고 섹스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무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성과 생식을 통제하는 방식은 과거의 마녀사냥 등과 달리 의학 혹은 과학기술의 형식을 빌어 자신을 중립적으로 포장한다. 산아제한과 우생학, 성매매와 전염병 관리 등. 기사 하나를 보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이런 기사들과 이런 연구들은 출산을 장려/강제하는 사회의 경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sexing the body. 인간에게 sex를 부여하는 것은 그저 인간을 두 종류로 이분하는 방식은 아닐 수도 있다. 이미 'sex를 부여함' 안에 sex에 따른 '구별/차별'을 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연구팀은 '정액의 각종 좋은 성분이 질을 통해 흡수됐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남성과 여성의 두뇌의 차이, 호르몬의 차이 등을 비교분석하여 우열을 가려내려던 시도들은 이제 별로 눈길을 끌지 않지만 'sex를 부여함'은 끊임없이 우열을 가려내려는 욕구를 추동하게 할 수밖에 없지는 않을까. 적어도 'sex를 부여함'이 가부장제를 유지, 강화하는 중요한 무기라는 점은 분명한 듯한데 언제부터 sex를 부여하는 것이 '요구'되었던 것일까. sex를 구분하는 것이 문제라면 '성평등'이 아닌 어떤 구호가 필요할까. '차이'의 담론으로 sexing the body의 현실을 넘어설 수 있을까. ...

 

또하나. 위 단락에 드러난 이성애중심주의. 위의 추정대로라면 남성 동성애자 사이의 anal sex에서도 '정액의 각종 좋은 성분'이 항문을 통해 흡수될 것이기에 우울증과 자살시도가 줄어들 것인가. 하지만 아무도 이런 연구를 하려들지 않을 것이다. 동성애가 '충분히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면 '정액의 각종 좋은 성분' 따위의 표현은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위 연구는 여성을 남성에 의해 구원받는 구도로 섹스에 접근하는 한계 외에도 근본적으로 동성애를 배제하고 있는 연구라는 한계를 갖는다. 사실,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sexing the body가 동성애를 배제하는 한에서만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서없이 투덜거려보기도 오랜만. 시원하기도, 끕끕하기도...

 

네이버 기사>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53&article_id=0000002034&section_id=103&menu_id=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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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3 19:40 2004/08/0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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