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느라 여기저기 뒤적거리다가 만난 시 두 편.
공사장 끝에
이시영
"지금 부숴버릴까"
"안돼, 오늘밤은 자게 하고 내일 아침에......"
"안돼, 오늘밤은 오늘밤은이 벌써 며칠째야 ? 소장이 알면 ......"
"그래도 안돼......"
두런두런 인부들 목소리 꿈결처럼 섞이어 들려오는
루핑집 안 단칸 벽에 기대어 그 여자
작은 발이 삐져나온 어린것들을
불빛인 듯 덮어주고는
가만히 일어나 앉아
칠흙처럼 깜깜한 밖을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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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도 사람은 살지 않는다
―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7
이문재
그래도 키 낮은 골목에는 사람이 아직
살겠거니 했다, 북한산 그늘이 깊은 수유리
목을 빼면 셋방 가구 등속이 보이는 골목들
고개 숙이며 드나드는 사람들 속에는 아직
사람 같은 그 무엇인가 깃들여 뜨겁거나
때로 덜컹댈 것이었지만, 살 부벼댈 오래 된
마음들 있겠거니 했다, 해서 등꽃 파랗게 피면
삶은 아직 삶아진 것이 아니라고
감나무에서 감 덜 익은 것 떨어지면, 그게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솎아냄이라고
올 사람 없지만 현관에 불 밝히곤 했다
공휴일 저녁, 잔광이 훤하게 수유리를
덮고, 쉰 두부도 파는 아저씨 요령 소리
골목에 자욱해서, 반바지 입고 골목길
도는데, 아, 늙은 아버지 손등 힘줄 같은
골목길에 사람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열려 있는 모든, 키 작은 창문에서는
주말연속극만 왕왕거리며 넘쳐나왔다, 키 낮은
골목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현관 불을
꺼버렸다, 마감뉴스 시그널이 들려온다
골목에도 벌써부터 저런 것들만
살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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