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사람들이랑 먹을 열무김치를 했다. 열무 여섯 단과 얼갈이 두 단. 쓱쓱 다듬고 씻어놓고, 밀가루풀에 고추가루, 젓갈, 빨간 고추 살짝 갈고 마늘 생강 같이 갈아넣고 양파랑 쪽파 썰어넣어 양념을 만들고 살살 버무려 김치통에 옮겨담았다. 그렇게 오후를 보내면서, 때로는 뿌듯하고 문득문득 지루하고 가끔은 설레는 느낌을 지나쳐가면서, 엄마 생각이 났다.
스무 해 같이 사는 동안, 분명 매일같이 김치를 먹어왔는데, 내가 같이 한 기억이라고는, 소금통 꺼내서 한 숟갈 정도만 보슬보슬 뿌려주라, 냉장고에서 젓갈 좀 꺼내봐라, 바깥에 엎어놓은 김치통 가져와달라, 이런 것밖에는. 음. 얼마 안 되는 김치 하면서도 반나절이 훌쩍 갔는데 하루를 준비하고 하루를 김장 담그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보낸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음.
뜨개질해서 만들어줬던 스웨터나 재봉틀로 슥슥 박아서 만들어줬던 잠옷들, 김치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을,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걸 받으면서 살아갈 일이 또 있을까. 그렇게 많은 걸 주면서 살아갈 일은 또 있을까. 지금 내가 다짐할 수 있는 건, 엄마한테 받은 만큼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거. 그게 흔히들 말하는 "부모님 은혜"를 갚는 건지, 어쩐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만큼 엄마를 더욱 사랑하게 되리라는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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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느 2007/07/03 13:5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이 글 보니 부모님 생각나네. 요즘 난 참 가칠했는데.. 뭘 어재야 하는지 잘 모르겠군..나중엔 정말 후회할 것 같아..
나루 2007/07/03 14:1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더 사랑하게 되다가 또 거기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그러면서 늙어가는 거...
미류 2007/07/03 16:2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쥬느, 나도 까칠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만큼을 표현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헤헤.
나루, 음, 음, 시간이 흐르면서 또 많은 생각들이 오고가겠지?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