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몸들의 '살아있음'

엄마랑 싸웠다. 쓰레기 같은 동아일보 그만보라고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어제 저녁이었다. 보름 넘도록 연락을 드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 가득하다가,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혹시 평택에 있냐고 물으실 때까지도 걱정하지 말라고 잘 대답했는데,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 몇몇 때문에 더 많은 다른 노동자들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고 한마디 하시길래, 다른 때면 조근조근 얘기할 수도 있었을 것을, 쓰레기 신문 그만보라고 화를 내다가 전화를 끊었다.

 

어쩔 수 없었다. 어제 나는 옥상에서 떨어져 허리가 부러진 노동자를 만나고, 경찰의 집단구타로 팔이 부러지고 온몸이 멍 투성이인 노동자를 만나고, 그리고 잔인한 국가와 그보다 더욱 잔인한 자본을 만났기 때문이다.

 

극심한 통증으로 말을 하기 힘들어하는 분에게 당시 상황이 어땠냐고 물어봐야 하는 모진 짓을 해야 했고, 그 옆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그의 아내를 바라봐야 했다. "이렇게 얘기해봤자 결국 사람들은 우리를 탓하더라. 이렇게 다치고서도 잘못했다는 얘기를 들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도 이 엄청난 폭력이 안 알려진 것이 아닌데, 더 얘기할 힘이 없다"는 그녀에게 손수건 한 장 건네는 것도 쭈뼛거려지고 당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흘 동안 하루 30분씩도 잠을 못자다 보니 입원하고서도 잠이 들지 않는다고, 자려고 눈을 감고 누우면 안에 있는 동지들이 떠올라 누워있을 수도 없다며 몰래 담배를 한 대 피운 노동자가, 병실로 올라가 침대에 누우려다가 갑작스런 호흡곤란으로 발작적인 기침을 해대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봐야 했다. 그의 가슴에 선명하게 남은 고무총탄 자국을 봤고 그보다 선명할 고통을 웃음으로 가리는 그의 아내를 봐야 했다.

 

그 맞은편에 누워 간혹 통증으로 일그러지기도 하지만 잔잔한 얼굴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노동자에게 어떻게 다치셨냐고 물어봐야 했다. 뒤에서 갑자기 달려온 경찰이 걷어차 넘어진 후 손목을 내리친 방패로 팔이 부러지고 허리와 다리와 얼굴에 하염없는 상처가 가득한, 젊은 청년을 만나야 했다. 선한 눈매를 가진 그 노동자가,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면서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 하나 싶어 속상하기만 했다.

 

그 하루의 저녁에 엄마한테 화를 안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그만큼 이미 지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부인하지 않겠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현실에서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이 오히려 지탄받아야 하는 상황을 바꿀 자신이 없었다.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경찰과 또다른 노동자들과, 그 뒤에서 고문을 지시하는 정부와 자본에 맞서 함께 '핍박받는 몸'이 될 수가 없었다.

 

무사히 '살아서' 나온 그 몸들에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주위의 온갖 '못된 말'들에서 여전히 비껴서있는 내 자리를 다시 확인하면서, 하지만 다만 마음으로라도 그이들의 자리에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그 하루의 다음날 저녁을 보낸다. 그 몸들의 '살아있음' 자체가 기억해야 할 승리이자, 다음 싸움의 거름으로 살아나야 할 패배라는 점을 잊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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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6 21:45 2009/08/06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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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비 2009/08/06 22:3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는, 있어야 할 곳에 꼭 있는 것 같아서, 늘 고맙고, 많이 배워요...자신의 몸도 잘 챙기기를!

    • 미류 2009/08/07 14:30 고유주소 고치기

      아니예요. 저도 늘 함께 서있는 용기가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이번에 평택도 몇 번 가보지를 못했네요... 감비도 몸 잘 챙겨요!

  2. 콩!!! 2009/08/07 10:1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전쟁을 겪어내야했던 개인으로서 그이들의 몸과 마음에 어떤 흔적이 남을지, 전쟁에 쏟았던 관심과 노력만큼 그 흔적에 대해서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힘을 보태는 일들이 필요할 텐데... 미류도 몸과 마음의 수고가 컸겠어요. 어쩌면 비껴서 있는 그 자리가 중요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 미류 2009/08/07 14:32 고유주소 고치기

      응, 그 흔적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 들어요. 마음에 깊게 박혔을 군살들을 그이들의 몫으로만 돌리지 않아야겠죠...

  3. 요꼬 2009/08/07 13:3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다들 제생활은 언제될지는모르지만 마음의 상처를 덜 입게 정신치료나 뭐 그런것좀 해주면안되나 나도 해고복직을 하다보니 가끔그런생각이 들던데...마음의상처를깨끗히씻을수만있따면

  4. 미류 2009/08/07 14:3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네. 살아나온 몸들에 마음도 살아날 때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봐야겠어요...

  5. 처절한기타맨 2009/08/13 15:3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기운 잘 챙기삼...상처를 나누는 몫들은 또 다른 무엇이겟죠. 어딘가 퍼나르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괜찮을까나요?

  6. 미류 2009/08/13 20:3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고마워요. 처절한기타맨 님도 기운 잘 챙기세요~ (지난번 평택 정문 앞에서 뵌 것 같은데 아마 맞겠죠? ^^;)
    퍼나르시는 건 물론 괜찮고요... ^^

  7. 불쏘시게 2012/09/18 14:5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쌍용차 노동운동의 본질은 태풍의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에야 알게됐다.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니다 공지영님의 [의자놀이]를 접하고서... 먹먹한 시대를 지나온 80년대 캠퍼스 세대로서 21세기 현 상황이라는 것이, 이명뱍 정권하에서 광주사태 같은 쌍용노조의 인간사냥이 벌어졌다는 것이 도저히 미끼지 않는다. 정작 쌍용노조의 문제가 해결이 안된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진정 이 사회에 봄은 올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