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의 정의가 뭔지 알아요? 제가 한 번 말해볼게요.
자, 집 밖에서 하루 자면? 외박.
이삼일 나가서 안 들어오면? 가출.
한두달 안 들어오면? 실종.
노숙은 실종 다음이야. 숨기며 살지만 내놓고 사는, 가장 바닥에 있는 거야. 더 갈 데가 없는.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철회와 공공역사 홈리스지원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회의에 다녀오는 길에 농성장에 들렀다.
농성장에 있는 노숙인 한 분이 내린 노숙의 정의다.
찾는 사람도 찾아갈 사람도 없는, 그 사람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찾아드는 곳, 그 곳이 서울역이다.
가장 높은 크레인과 가장 낮은 서울역에서, 더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농성장에서는 홈리스행동 활동가와, 농성장에 모인 노숙인 분들과 회의가 있었다.
공대위 회의 내용을 나눴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고 있었다.
저녁마다 작은 토론회를 해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어제 저녁에도 열 명 남짓 모여 열띤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저녁 8시에 이야기마당을 열어서 노숙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시민들에게도 열어서, 노숙인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이름을 짓는데, 한 노숙인이 '계란들의 대화'를 제안했다.
우리는 지금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계란들의 대화.
사람들이 솔깃했다.
그래, 계란을 바위를 치는 누구나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
계란은 부활절에 나눠주니까 부활의 의미도 있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올 것 같아.
그때 한 노숙인이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안했다.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이야. 산 사람.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하는 거야.
이름을 뭐라 붙이든, 당연히 사람들의 대화일 텐데,
거기에 '산'을 붙여 살아있음을 밝히고 사람임을 확인하기까지 하고 싶은 그 마음 앞에,
나는 어쩔 줄 모르겠더라.
헛헛한 목소리와 절박한 눈빛...
회의가 이어졌는데 사람들은 계란들의 대화에 더 쏠리는 분위기였다.
나도 사실 '계란들의 대화'가 조금 더 끌리기는 했다. 어줍짢게 흥행을 고려하더라도...
부제를 달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서울역 주민모임'을 제안했다.
서울역에서 수 년, 수 개월을 살아온 노숙인들이 서울역의 주민 아닌가.
가장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서울역은 그/녀들의 동네이고 집이고 시장이고 학교다.
사람들이 호응해줘서 그렇게 결정이 났다.
서울역 주민모임 <계란들의 대화>
매일 저녁 8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져가기를!
노숙의 정의가 말 그대로 '이슬 맞고 자는' 것이기만 할 그날까지,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떠날 수 있을 그날까지.
코레일은 강제퇴거 방침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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