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목요일. 더 늦기 전에 쌍용자동차 희망텐트촌에 다녀온 이야기를 남겨야겠다며 창을 열었다. 물론 이 포스팅의 목적은 읽는 사람을 선동하는 것이다. 당신도 다녀오라고, 모두모두 다녀오라고, 다녀올 것만 아니라 가고 또 오자고. 그런데 어떻게 쓰면 '선동'이 될지 모르겠다. 이게 '선동'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희망텐트촌을 떠나기 전에야 사진들을 몇 장 찍었다. 하루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휑한 시간의 사진들. 다녀오자마자 포스팅을 하려고 했다. 그때 했다면, 아마 이 포스팅은 샤방샤방한 이모티콘을 마구 날리는 것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같이 가자고 보채는 글이 되었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 다시 쓰려고 하니, 마음이 그렇게 들뜨지는 않는다. 그저 하루를 같이 한 것으로 뭔가 했다기에는 쌍용차 노동자들이 안고 있을 삶과 죽음의 무게를 느껴보지도 못하고 온 게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이 비죽이 비져나온다. 2009년 8월 6일, 그 몸들의 '살아있음'에 고마워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여전히 달력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서로 고마운, 하지만 살아있음 외에 모든 걸 빼앗겨버린 현실은 그대로다. 

 

하지만 그 무거움에 짓눌린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산다는 건, 애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다가도 뭐가 싸고 맛있는 안주일지 고민하게 되는, 그런 거니까. 희망텐트촌에서 보고 들은 건 죽음이 아니라 삶이고, 그건 피조개와 생굴을 먹지 못하는 이에게 입이 싸다고 타박을 주기도 하고, 쭈꾸미를 먹고 싶어하는 동료를 위해 부엌에서 혼자 양념을 넣고 볶아주기도 하면서 이어지는 일상이니까. 기타를 치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어지듯, 누군가를 느끼며 자연스럽게 물드는 어떤 것이니까. 

 

그래서 그냥 그 하루를 적어보려고 한다. 아주 건조하게,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게. 

 

새해 첫날 아침,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일어나 청소를 했다. 대청소는 아니다. 주말이라 그냥 집을 한 번 청소기로 밀었다.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혹시 들고 가서 같이 나눌 만한 음식이 있을까 했는데 역시나 없었다. 밖에서 잠을 자야 하니까 옷을 챙겼다. '운동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겨울 등산복을 입지 않았다. 껴입을 옷을 하나씩 더 가방에 쑤셔넣고 집을 나섰다. 

 

신도림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탔다. 환승통로에서 누비몸빼바지를 5천 원에 팔고 있었다. 눈길이 갔지만 그냥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평택을 가는 전철은 20분쯤 후에나 도착한단다. 다시 내려갔다. 잠잘 때 껴입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바지를 하나 샀다. 땡땡이 무늬와, 붉은색 불꽃 무늬를 놓고 고심 고심하다가 땡땡이를 골랐다. 뿌듯했다. 시간이 남아 승강장에서 토스트를 하나 사먹었다.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냐고 물어보면 안 먹었다 하기 뻘쭘할 것 같아서 먹었다. 오뎅 국물도 같이 먹으라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 

 

전철이 왔다. 가산디지털단지역을 지날 때쯤 자리가 나서 앉았다. 들고간 책을 꺼내 읽었다. 격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9-10월호. 마침 '희망버스가 던진 질문'이라는 특집이 있었다. 연대, 연대, 연대, 를 곱씹다가 어디에선가부터 눈발이 날렸다. 평택에 가까워질수록 펑펑 내렸다. 평택 역에 내리니 서울과 전혀 다른 날씨였다. 화장실로 가서 신도림역 누비몸빼바지를 바로 입었다. 이걸 보고 쌍차 노동자 분들이 뭐라 할까 궁금해하면서 실실 웃음이 나왔다. 

 

7번이나 7-1번을 타면 된다는 걸 알았지만 버스정류장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택시를 잡았다. 6천 원쯤 나온 것 같다. 쌍용차 정문을 향해 좌회전을 하니, 불을 피워놓고 뭔가를 한참 구워먹는 몇 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어디쯤 내려야 하나 생각하다 살짝 지나쳐 택시에서 내렸다. 불을 피워놓은 쪽으로 살살 걸어가니, "여기 오신 거죠?"라고 한 분이 묻는다. 그렇게 티 나나?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먼저 말 걸어줘서 고마웠다. "여기 앉아서 같이 드세요." 다행이다. 가서 긴긴 시간 뭘 하면 좋을지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일단 먹으면 됐다. 석쇠 위에는 석화가 잔뜩 올려져 있었다. 막걸리를 한 잔 받았다. 다행이다. 낮술까지 있으니, 낯 가리는 나도 같이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어디 소속이세요?" 허, 이거 진짜 나는 무슨 단체에서 온 사람으로밖에 안 보이나? 섭섭하기도 했지만, 대답했다. 앉아있던 사람들은 하던 얘기를 계속 했다. 새해 첫날이라 많은 노동자들이 집으로 갔고, 간부가 아닌 분은 한 분 정도, 다 해서 5~6명의 사람이 있었다. 장 보러 갔던 분이 가리비를 사들고 왔다. 

 

한참 먹고 있는데 차 한 대가 근처에서 멈춘다. 차에서 한 가족이 내린다. 한 노동자가 엉거주춤 일어서더니, 희망텐트촌에 온 것이 확실하다는 판단이 드는 순간, 달려가서 맞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세 아이가 1년 동안 저금통에 모은 돈을 들고 왔다고 한다. 작년에는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전했다고 한다. 매년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어딘가를 다녀온다고 한다. 반가운 표정이 다르다. 큭. 그 마음이 이해된다. 한참 후 라면 두 박스를 들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라면만 전하고 휘리릭 길을 떠났다. 몇 시간 앉아있는 나에게도 그 반가움이 예사롭지 않다. 기대하지 않았던, 혹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어떤 곳으로부터 전해져오는 공감, 내가 그리고 우리가 외딴 섬에 홀로 외로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되는 짧은 순간, 그건 시간을 넘어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친구가 되는 어떤 순간이다. 

 

석쇠를 한 번 갈고, 숯을 더 넣고, 돼지 목살을 굽기 시작한다. 고등어, 조기, 다시 석화, 모두 전날 있었던 송년파티의 연장이다. 사실 77일의 투쟁, 77인의 꿈, 희망텐트촌 하루연대입주, 를 신청할 때 12월 31일에 하고 싶다고 했다. 그날 하고 싶다는 다른 사람이 있고, 송년파티라 사람도 많을 것 같다고, 1월 1일은 아직 신청한 사람이 없다고, 밀렸다. 북적북적 노래도 하고 술도 마시고 떠들기도 하는 날에 가지 못한 게 못내 아쉽기도 했지만, 사실 조용히 있다가 오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거니까. 그래서 작은 구이 파티는 즐거웠다. 오붓하게 둘러앉아, 가끔 바람이 걷어내는 비닐지붕을 붙들어매면서, 사는 이야기 듣고, 듣고, 듣고. 말을 건네는 걸 잘 못하는 성격이라 계속 이야기를 듣는 게 참 편했다. 그래도 약간은 더부살이처럼 끼어 앉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내가 없으면 더 재밌는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걸, 혹은 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걸, 못 그러는 건 아닌지 슬쩍 미안한 마음도 든다. 전날 밤을 지새고 새벽까지 이어진 자리, 잠깐 쉬고 다시 시작한 자리에 있는 그 사람들 저마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가 있을 텐데. 

 

다음날 아침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하는 한 분이 먼저 자리를 뜨고, 해도 서서히 지려고 할 때, 내가 외쳤다. "라면 먹을 사람!" 아무리 고단백 식이라지만, 끼니꺼리는 하나 해야지 하는 생각에, 사실 그보다는 아무 것도 안하고 웬종일 얻어먹기만 하는 게 민망해서 그랬다. 하하, 아무도 거부하지 않았다. 부엌으로 들어가 부스럭거리는데 라면을 끓일 만한 냄비가 보이지 않는다. 그 중 큼직한 걸 골라 물을 끓이려는데, 한 분이 들어와 핀잔을 준다. "그걸로 몇 개나 끓이려고?!" 그러면서 큰 양푼 하나를 집어준다. 물을 팔팔 끓이고 라면 8개에 도전했다. 면발을 쫄깃하게 익히려면 물이 팔팔 끓는 게 핵심인데, 잘 안 끓는다. 와서 처음 하는 건데 잘하고 싶어서, 참고 참고 참다가 면을 넣었다. 골고루 익으라고 적당히 저어줬다. 그때 문득 저 구석에 대파가 보인다. 아, 저걸 넣을까 말까 넣을까 말까, 면은 대충 익어가고 있는데, 넣을까 말까. 결심하고 잽싸게 대파를 씻어 다듬고 송송 썰어 라면에 뿌려넣고 불을 껐다. 아, 이미 라면이 익어버렸다. 완전히 익기 전에 불을 꺼야 먹을 때 딱 좋은데. 하지만 양푼에 담긴 포쓰가 나름 있다. 더 불기 전에 밖으로 들고 나갔다. 일단 시각적으로 먹히는 게 있었지만, 사실 나 같아도 그거 보고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저걸 언제 다 먹어? 흑. 반가워하려는 사람들의 표정 사이에 살짝 스치는 부담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도 막 먹어줘서 너무 고마웠다. 엉엉. 

 

깜깜해진 자리를 정리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 '안'은 쌍용차지부 사무실이다. 구이는 끝났지만 먹는 미션이 끝나지는 않았다. 쭈꾸미와 갑오징어를 볶는다. 먹는다. 석화를 찐다. 먹는다. 아빠랑 집에 가려고 와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어, 그이들이 먹을 수 있는 치킨을 시킨다. 사이사이에 부엌에 쌓여있는 설거지를 한다. 어제부터 해도해도 끝나지 않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겠구나 싶어 나도 열심히 거든다. 가끔은, 지쳐서 안하고 둔 설거지인지, 워낙 설거지를 안하고 살아서(남성노동자에 대한, 용인될 수 있는 편견이라고 생각함) 미뤄 둔 설거지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쓰러져 자고 있던 한 분이 일어나 기타를 만지작거린다. 줄을 맞추고 있다. 그쪽으로 관심이 솔솔 간다. 3미터도 안 되는 거리인데, 거기까지 가는 게 쉽지 않다. 내가 정말 수줍음이 많다. 윽. 결국 기타 앞으로 쪼르르, 마치 도와주러 온 것처럼, "저한테 튜너 있는데 이걸로 맞춰보실래요?", 회심의 미소를 보낸다. 그러나, 직접 맞춘 다음 확인하겠다며 튕긴다. 한참 맞추다가 기타를 내민다. 내가 언젠가 쓰려고 다운받아둔 튜너를 드디어 써볼 기회! 역시나, 맞지 않는다. 역시나인 이유는, 기타는 사실 줄들 사이에서만 맞으면 가지고 노는데 충분하고, 그래서 보통 절대음에 맞춰서 조율하지 않고 쓰던 기타들은 원래 키보다 꽤나 낮아져있기 마련인 때문이다. 튜너에 맞춰서 다시 음을 잡는다. 괜히 높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미 꺼낸 말이라 다시 삼킬 수도 없고, 마치 이게 '맞는' 것처럼 그냥 계속 했다. 

 

그이가 먼저 노래를 시작했다. J에게. 아니다, 그건 두번째 노래였나? 먼저 부른 노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그 다음에 내가 노래를 불렀다. 솔개. 우리는 말 안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술을 마시던 이들이 후렴구를 같이 따라 부른다. 조용히 앉아 있더니 가서 저렇게 노래를 부른다며 놀라는 사람도 있다. 역시 내가 너무 조용히 앉아 있었군. 윽. 노래로 약간 분위기가 뜨는 것 같아서 좋았다. 갑자기 쓸모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역시 라면으로는 부족했나 하는 생각도. 하지만 이미 꽤나 늦은 시간이었고, 집으로 돌아갈 사람들은 일어서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나고 있었고, 나도 이 정도면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지막으로 '행복의 나라로'를 부르는데, 같이 부르려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다들 자기 자리로. 이 정도면 새해 첫날의 마무리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삶의 마지노선인 개그콘서트를 보고 싶어, DMB를 만지작거리는데 잘 안 잡힌다. 원래 나에게 미션 카드를 전해주기로 했던 분이, 아빠를 보내지 않으려는 딸을 겨우 떼어놓고 왔다며 도착했고, 그이와 얘기를 나누기 위해 늦은 시간 서울에서 내려온 한 사람이 새롭게 자리를 같이 했다. 속깊은 이성 친구들이 나누는 속 깊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사실은 들어도 되나 말아야 하나 조금 고민도 하면서, 밤이 이슥해졌다. 어떻게 싸워야 하나. 복잡한 지형과 어려운 조건과 막막한 미래, 이런 것들을 내가 얼마나 나눌 수 있을까 잘 모르겠더라. 그래도 결국 그게 다 얼키고설킨 마음 타래들을 풀어나가는 일이겠거니 싶기도 하고, 그래서 결국 유일한 가능성은 모두가 저 자신의 간절함을 진솔하게 열어 보이는 데서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밤이 깊었다. 

 

날이 추우니 안에서 자라는 권유를 뒤로 하고 텐트로 갔다. 하루 자고 가는데 안에서 자는 게 '가오'가 떨어지기도 하고, 다시 또 누군가에게 같이 가자고 할 때 밤의 텐트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줘야 할 것 같아서. 침낭을 챙기고, 침낭은 닿는 면이 차갑기 때문에 그 안에 덮고 잘 모포를 하나 챙기고, 약간의 불안을 떨치며 씩씩한 척 나갔다. 텐트 안에는 이미 침낭이 두 개 있었다. 바닥이 중요하다. 두 개를 바닥에 펴고, 그 위에 침낭을 펼치고, 그 안을 모포로 싼 후 뒤집어썼다. 하루종일 술 먹었는데 왜 곯아떨어지지 않는 거냐. 자야 해, 자야 해, 자야 해, 그런데 내일 미션은 어떻게 하지? 어, 내일 정문 앞에서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를까? 와, 그거 좀 있어 보이는데? 괜찮다~ 하지만 일단 자야 해 자야 해 자야 해. 

 

두어 번 깼다. 못 견디게 춥지는 않았다. 숨구멍을 잘 남기고, 최대한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하면 체온이 지켜준다. 두번째 깨었을 때인가는, 문득 이 시츄에이션은 여자가 길에서 혼자 자는 시츄에이션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쳐 갑자기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뭐, 일단 자야 해 자야 해 자야 해. 다시 깼을 때, 아직 밖이 밝지는 않았지만, 아침이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7시가 조금 안 된 시간. 7시 전에 나가면 왠지 '안'에 들어가 다시 잘 것 같고, 그러면 텐트에서 자겠다는 호기는 꼬리를 내린 것이 될 것 같아, 7시까지 버텼다. 심지어 텐트에서 머리만 내놓고 담배도 한 대 피웠다. 7시, 침낭을 개키고, 가지고 나온 걸 챙겨서 들어갔다. 안은 아직 밤이다. 세수를 해야지, 모자를 쓰고 있었더니 머리 모양도 맘에 안 든다. 머리도 감아야지. 찬물로는 못 감겠어서, 싱크대에서 온수 틀어 머리 감았다. 이거 몰래 감은 건데, 용서해주시겠지. 떠나기 전에 미션을 수행하고 인증샷도 남겨야 한다. 그래서 잠든 한 사람을 깨웠다. 사진 찍어주세요. 

 

혹시 기타에 어깨끈도 있어요? 없단다. 어, 이거 해야 하는데... 두리번거리다가 노끈을 발견. 설마 노래 부르다가 끊어지기야 하겠냐며 노끈으로 묶어 기타를 들고 나간다. 목이 잠겼지만, 오늘은 출근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출투도 안한단다. 1인시위를 볼 사람도 없으니 그냥 혼자 논다 생각하지 뭐. 사진을 찍어주기로 한 이는 '뭐 하는 애니?' 이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 같다. 에이, 좀 기대되는 척 해주면 안되나? 잠이 덜 깨셨나? 힝. 

 

공장 담벼락에 붙이라던 미션지를 기타에 붙이고, 장난감 병정처럼 경비용역들이 서 있는 정문 앞으로 간다. 자리를 잡는다. "거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에이, 잠깐 있다 갈 거예요." "거기는 회사 땅입니다. 저희가 좀 난처..." "그냥 노래 하나 부르고 갈게요. 별 일 없을 거예요." 정문 앞에서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른다. 행복의 나라로. 사진 찍으러 나온 이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조금 더 있으니, 재밌어하는 것도 같다. 나도 기분이 좋다. 누가 안 들어도, 누군가는 듣겠지.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해고자도 공장으로 갑시다. 아마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면, 용역들도 좋은 직장 갑시다, 이런 가사를 붙였을지도 모르겠다. 노래를 부르고 코끼리코 열아홉 바퀴 미션을 한다. 밤에 오르지 않았던 술 기운이 오르는지, 열 바퀴도 가기 전에 쓰러질 것만 같다. 안돼, 끝까지, 겨우 열아홉 바퀴를 돌고, 자리에 서야 하는데, 어, 나 설 수 있는데, 어어 어, 아이쿠. 철퍼덕 주저앉진 않았지만 거의 일어서지 못하고 헤매다가 겨우 일어나 외쳤다. 해고는 살인이다, 해고는 살인이다, 해고는 살인이다, 함께 살자!

 

와! 미션 수행! 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고 슬 나설 채비를 하는데, 부엌에서 한 분이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다. 아침을 먹지 않은지 오래됐지만 사실 슬 군침이 돌기도 하고, 그러면서 "저 이제 갈게요." 인사를 한다. "아침 먹고 가야죠!" 아, 네, 냉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맛있나 모르겠다며 찌개를 내주는 분은, 말은 툭툭 던지는 것 같지만 정이 많고 은근 수줍은 듯한 표정을 짓기도 하는 분이다. 맛있다고 손뼉치며(이건 말이 그렇다는 거) 먹었다. 아침 일찍 나와 어제의 흔적들을 깨끗이 정리하는 사람들,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불을 피우는 사람들, 부시시 잠을 깨는 사람들, 그렇게 하루가 다시 시작됐다. 투닥투닥거리기도 하고, 괜히 핀잔을 주기도 하고, 밤 사이 별 일 없었나 걱정하기도 하고, 그렇게 여느 하루와 다르지 않은 하루. 

 

아주 짧은 나의 하루는 그렇게 갔다. 하루를 같이 보낸 사람들과 아주 친해졌다는 것도 거짓말일 테고, 그렇지만 내 딴에는 조금 친해진 것 같다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시간들.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있는데, 여기에다 콩알콩알 쓰기는 뭣해서 참고 있다. 그렇게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면 아마 이 글은 배로 길어졌을 것이다. 이 안에 삶과 죽음이 어떻게 가로지르고 있었냐고? 나는 모르겠다. 여전히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별로 다를 것 없는 일상, 하지만 저마다 다른 일상을 어떻게 만나면 좋을지도 잘은 모르겠다. 그저, 각자 서 있는 다른 자리를 조금 더 헤아리고, 하지만 그리 다르지도 않다는 걸 이해하고, 그래서 같은 자리에 있지 않아도 함께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혹은 위로를 나누는 것, 그건 다 만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게 끝이더라도, 온몸으로 만나기. 

 

*** 쌍용차 정문 앞에서 행복의 나라로  동영상 ***

 

*** & 때를 놓친 사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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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나서야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쳐... 정말 맛없게 보이지만 저기 가득 차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때는, 전혀 달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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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일간의 투쟁, 77인의 꿈, 하루입주자들에게 주어지는 미션 중 하나. 가장 쉬운 미션이라고 할 수 있다. 열두 번째 퍼즐이 내가 붙인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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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서, 한참도 지난 아침에 찍은 텐트. 이런 곳에서 자면 된다. 사진엔 그렇게 한기가 돌지 않아, 별로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지는군. 두 사람이 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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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하루종일 탔던 불씨가 다 사라지고, 주위는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고, 부러진 석쇠만이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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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림역 누비몸빼바지. 하루를 지내고도, 바지를 찍어달라는 말을 차마 못하고 셀카로. 으, 정말 전 이렇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예요. 그런데도 같이 있기에 그리 뻘쭘하지는 않았어요. 희망텐트촌을 지키는 노동자 분들이 참 반갑게 맞아주시고 이것저것 챙겨주신답니다. 그리고 사실 약간은 더 귀엽고 장난기도 있는데, 글을 쓰다 보니 또 쓸데 없이 무거워졌다는 느낌도 드는군요. 이렇게나 글이 길어지고 보니 여기까지 읽는 사람도 거의 없겠군요. 역시 '선동'은 무리였어. 으앙. 

 

하지만 이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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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5 14:15 2012/01/0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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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번쯤은 2012/01/06 12:2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 너무 효과적이고 강력한 선동....
    꼭, 가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