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

 

엄마아빠와 함께 오름에 다녀왔다. 체오름이라고 '체' 같이 생겨서 체오름인가보다. 언젠가 한 시인이 오름을 두고 '봉긋한 젖무덤'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어 한참 고개를 끄덕였었는데 오름마다 생김생김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아는 지금도, 나는 그 표현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마 그저 생김만을 두고 붙인 표현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집 콩밭인지 알 수 없는 곳을 가로질러 한참을 걷는데 능선에 낯익은 것이 분명한데도 도저히 무엇인지 기억나지가 않는 풀들이 늘어서있다. 결국 엄마한테 물어보았더니 억새란다. 콰당...

고등학교 국어책인가, '아 으악새 슬피우니~'에 나오는 으악새가 새가 아니라 억새를 말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맞나? 고등학교 국어책에 그런 게 왜 나왔을까? 맞는데... --;) 나는 그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참 인상적이어서 잊혀지지가 않는데 그래서인지 억새는 슬픈 풀인 것만 같았다. 눈물을 모두 쏟아내고 바삭 마른 몸으로 그저 담담하게 서있는 풀. 아무 기대도, 원망도, 남길 말도 없는 풀. 하얗게 새어버렸으면서도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바람에 몸을 싣는 풀.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고복수라는 사실을 네멋대로 해라에 빠져있던 중 알게 되어 더욱 잊혀지지 않는-아무런 연관관계가 없지만- 풀이었다.)

억새라는 말을 듣고 나서도 내 앞에 보이는 풀들이,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없었던 것만 같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능선에 늘어선 억새는 보풀이 송송 일어 푸석하게 마른 억새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들은 발그스름한 색을 피우며, '괜찮아'가 아니라 '건드리지 마'라며 탄탄한 선을 뽑아내고 있었다. 그 색은 한때 유행했던 '메탈' 어쩌고 시리즈 중의 하나 정도가 될 듯한 붉은, 또는 와인색이었고 그 선은 한치의 빈자리도 허하지 않는 꽉찬 선이었다. 한없이 쭈그러들면서도 그만큼의 공간을 품은 노인의 몸이 아니라 부풀어오를 듯 터져나올 듯하면서도 선으로만 드러나는, 선이었다. 그렇다고 차갑거나 쌀쌀맞은 느낌은 아니었는데, 뭐 퍼렇게 시린 가을하늘을 두고 차가우려면 얼마나 차가울 수 있었겠는가마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한참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

이제, 억새를 보면 더 슬플 것 같다. 억새가 항상 슬프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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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30 15:25 2004/09/3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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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류 2004/10/04 11:5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쉬워, 네이버에서 이미지를 검색함. 그 중 비슷한 것을 찾음. 아직 하얗게 새어버리지는 않은 모습. 이럴 때는 디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꿀떡~ 입맛만 다시기로 함. 억새를 보면 더 슬플 것 같다는 말은, 지금은 오버인 듯 느껴지지만 글을 쓸 때와 억새를 보던 그 때 내 느낌을 지워버릴 수는 없을 듯하여 그냥 두기로 함. 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