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옮긴 글)

골프가 인기다. 옛날부터 골프가 이렇게 뜰 조짐은 있었다. 대한민국 깍두기들은 오래전부터 미끌미끌하고 때깔도 화려한 골프 브랜드를 애용해왔다. 물론, 그들은 그냥 멋으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니, 그 헐렁한 옷들이 주먹을 휘두를 때 어깨와 허리에 옷이 걸리적거리지 않게 돕는다. 얼마 전 정부는 허가 대기 상태인 골프장 230개를 한꺼번에 허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건설 경기를 부양하고, 지자체의 수입을 늘려주고, 골프를 대중화 시키려는 의도라 한다.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었다. 양 치고 다니다가 언덕에 구멍 하나 뚫어놓고 공 집어 넣기 놀이를 하다가 발전된 것이라 한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시원한 스윙을 즐기는 운동인지라, 가히 건전하다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운동량이 많지 않아 노인과 여성도 즐길 수 있고, 그러면서도 비거리를 늘리는 맛이 있어 남성들이 힘 자랑할 수도 있으며, 퍼팅 때는 고도의 집중과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니 미세한 조정력과 정신력도 필요로 하는 종합운동이다. 그만큼 즐길 구석이 다양한데다가 축구처럼 똑같은 네모 반듯한 땅을 뛰어 다니는 게 아니라 매번 다른 곳에서 다양하게 설계된 코스를 맛볼 수 있으니 그 즐거움이란. 그래서 예전엔 정치가나 사장님들이나 즐기던 골프가 요샌 훨씬 대중화된 느낌이다. 가장 많은 의사들이 즐기는 운동이 골프일 것이고, 또 의사들은 골프로 망가진 허리 덕에 돈도 많이 번다.        

그러나 골프는, 야트막한 언덕에 잔디가 자연스레 자라는 스코틀랜드에서나 할 운동이다. 골프장을 나같이 시각이 삐딱한 사람들은 '녹색 사막' 혹은 ‘녹색 공장’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골프장을 만드는 과정을 보자. 풀과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 산을 완전히 불도저로 밀어버린다. 우리 산들은 경사가 급해서 폭탄도 터트리고 하면서 많이 깎아내야 한다. 우리나라 토양은 골프장용 외국산 잔디가 자라기에 적당하지 못하므로 표토를 40-60센티미터 정도 긁어낸다. 잔디를 깐다. 다른 잡풀들이 자라나지 못하게 농약을 뿌린다. 한 해 골프장에 뿌려지는 제초제는-제초제라는 물건이 목구멍으로 단 한 방울이라도 넘어가면 사람을 골로 보낸다는 것을 의사와 시골 사람들은 다 안다.-같은 면적의 논에 뿌려지는 양의 40배에 달한다. 그 농약이 어디로 가랴. 다 지하수와 상수도를 타고 강으로 논으로 사람 입으로 들어간다. 심지어 많은 캐디들이 농약 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잔디는 제가 있을 자리가 아닌데 억지로 심겨진 거라 말라 죽어버리고 싶어하니 물을 엄청나게 주어야한다. 그 지역의 지하수가 바닥나는 것은 시간문제. 골프장 측은 가장 큰 지하수원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농사짓고 밥해먹는 사람들.

이윤기는 어느 글에서 자신이 연어를 안 먹는 이유를 언급하면서 식격(食格)이란 말을 했다. 캐나다를 갔다가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 알을 낳고 죽어 떠내려가는 걸 봤단다. 가슴을 저미는 무언가가 있어 이후론 그렇게 좋아하던 연어를 끊었다. 그러면서 말하길 먹는데도 나름의 개인적 기준과 윤리가 있어야하지 않겠냐고, 입에 들어간다고 다 먹으면, 몸에 좋다고 다 주워먹으면 쓰겠냐고 했던 것 같다. 골프가 좋으면 티비로 보고, 연습장에서 스윙 연습 하시라. 그래도 필드에 나가고 싶으면 비행기 타고 외국 나가서 하시라. 그럴 돈이 없다면 산책, 조깅, 마라톤, 농구, 야구, 축구, 탁구, 당구, 고스톱 등등 놀건 많고 많다. 재밌는 건 재밌는 거지만 우리나라에서 골프를 치는 일은 죄악에 가깝다. 먹고 사는 일도 아니고 바람쐬고 노는 일을 위해 죄를 짓는 것은 그리 보기 좋지 않다. 노는데도 격이 있어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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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4 14:15 2004/10/0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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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류 2004/10/04 14:1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내가 좋아하는 친구의 글이다. 한 의료인단체의 소식지에 기고(?)한 글을 옮겼다. 아쉬운 대로 '우리나라에서 골프를 치는 일은 죄악에 가깝다.'는 말이 나도 정말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럴 돈이 없다면... 고스톱 등등 놀건 많고 많다.'는 문장도 귀엽다. 고스톱이라... 푸훗.

  2. hi 2004/10/04 14:5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스코틀랜드에서 골프가 발생했다는 것도 역사적으로 슬픈 배경이 있죠. 원래 나무가 많았던 동네라던데... 먹고 살기 위해, 또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숲은 베어지고 초지가 형성되고 양들이 방목되었죠. 양들이 한 번 훑고 지나간 초지는 자연스러운 골프장(?)이 된 거구요. 대한민국에서 골프장을 만들려면 산봉우리 두어개를 날려야 합니다. 산을 깎아 그 자리에 골프장 만들고, 퍼낸 흙으로 바다를 메워 그 자리에다 또 골프장 만들고... 난리가 아닙니다...

  3. 미류 2004/10/04 16:2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아... 글쿤요. 그게 인클로져 시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는 6월에 여행을 다니다가 영암 근처의 한 목장을 우연히 가보게 되었답니다. 목장이었다가 골프장 만든다고 팔린 땅이라고 하더군요. 새벽안개가 산자락을 따라 미끄러지고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안개 속으로 부시시 손을 내미는, 그런 풍광이 처음이었는데 한참 넋놓고 보다가 걷다가 돌아왔는데 골프장 만든다면서 다 밀어버릴 껄 생각하니까 화가 무진장 났었답니당.

  4. 미류 2004/10/04 17:1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사실, 글 보낸 후에 답멜 기다리고 있었는데... ^^;

  5. 달쀼앙 2004/10/05 15:3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잘 읽었습니다. 요즘 골프붐을 보면서 좀 찝찝하긴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