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비정규노동 철폐를 위한 2013 전망과 과제' 토론회가 있었다. 예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앉아 있기 조금 무안하기도 했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중요하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모든 발제자와 토론자가 동의. 다만 그 맥락이나 의미들은 조금씩 달랐는데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 토론회여서 흥미로웠다. 발제와 토론 들으며 몇 가지 생각. 

 

'연대'가 유행인 듯 여기저기에서 많이 이야기된다. 연대의 의미가 확장되고 필요성이 더 분명해지고 의지와 열정이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 좋은 현상, 배우고 따라가야할 일. 그런데 연대를 말하는 이들이 무엇을 기대하며 연대를 말하는지 모호하다. 연대가 무조건 좋다는 것만으로는, 좋은 연대가 가능해지지 않는다. 전술로서의 연대가 아니라 전략으로서 연대를 모색한다면,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이전에 무엇을 위해 연대하려는지가 분명해져야 하지 않을까. 그저 사람들이 많이, 다양하게 모이길 바라는 거라면, 그건 언제나 바라왔으나, 언제고 의도한 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니. 

나는 연대가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주체화-조직화)의 계기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만나면서 스스로 조직화하는 계기. 연대는 우리가 각자의 자리로부터 빠져나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까지의 시간, 관건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때는 빠져나왔던 그대로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연대는 하나의 요구, 통일된 내용을 통해서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다름'을 통해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내가 나로부터 이탈할 수 있도록 나를 자극하는 것들이 펼쳐지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 안에서 함께 함을 통해 달라질 수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 자기조직화일 것. 

그런데 도대체 누가 자기조직화를? 노동자들의 투쟁은 집단성을 실현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싸움은 더 많아질 것이다. 이와 비교하면 소수자적 정체성이 투쟁의 배경이나 계기가 되는 싸움들은 집단적 힘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인권운동에서 더욱 유념해야 하는 부분일 것.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섣불리 말하기 전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보편성을 만들어내기. 이것은 '일점돌파'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일점'의 보편적 의미가 확인될 때 그것이 여러 싸움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

그런데 이것은 '노동자'를 조직하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미 너무나 많은 노동자들이 자본에 의해 개별화되고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던져져야 한다고 생각. 기존의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갖지 못했다는 통일성을 중심으로 설명되었고, 생산의 주체는 세상의 주인으로 건너띄었다. '노동자'를 구성하는 수많은 다름들을 거쳐 다시 '노동자'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과정이, 토론회에서도 누누이 강조되었던 전략조직화 사업에서도 핵심이 되어야 할 것. (이런 점에서, 발제문의 '아듀 1987'에 적극 동의하고, 조금 더 밀어붙이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략조직화 사업에 대한 의견도 많이 나왔는데, 나는 문제가 '돈과 사람'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이 말하듯, 돈과 사람에 대한 민주노총의 의지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많아진다고 잘 되는 것은 아니고, 언제든 필요한 만큼보다는 부족할 것이라는 점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하다. 나는 일종의 인프라를 만드는 활동을 염두에 두며 예산이 조직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 인프라는, 어떤 구조라기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노동자'는 누구인지 설명하기 위한, 그래서 주체화와 조직화를 위한 기초를 다지는 것. 현장의 전략 조직화 사업들과 계급 건설을 연결하는 것. 

 

발제와 토론을 들으며 했던 생각. 아직은 짧은 생각들이지만, 더 많은 경험들을 덧붙이면서 이어가고 싶은 고민. 

전망을 토론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듯하다. 어떤 순간에도, 그것은 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전망'이라 이름 붙는 것 아닐까 싶기도. 모든 것이 투명하게 예상된다면 그것은 이미 전망이 되지 못할 것. 그래서 전망 논의는, 먼저 보이기 시작한 것들의 자리를 잡아가며 빈 자리를 확인하고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채워넣어야 할지 가늠해 가는 논의가 될 수밖에 없는 듯. 빈 자리들에, 생각보다는 행동들을 채워나가야겠지. 다시, 여기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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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6 11:51 2013/02/2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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