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2시 서울시 행정대집행 인권매뉴얼(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린다. 오늘 발표될 매뉴얼(안)을 보고 한숨만 나온다.

 

한숨이 나오는 이유.

 

서울시는 '행정대집행'에 대한 인권매뉴얼을 만든다면서, 부적절하게 '강제퇴거'를 끌어들여, 오히려 주거시설 등에 대한 강제퇴거가 행정대집행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못박아버리는 결정적 실수(?)를 하고 있다.

행정대집행은 개인이 집행해야 할 무언가가 집행되지 않아 행정이 대신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1954년 제정되어, 대집행에 대한 불복 절차를 '소원'이 아니라 '행정심판'으로 바꾼(다른 법의 개정 때문에) 정도 말고 개정이 없을 정도로 묵은 '행정대집행법'이 절차를 다룬다.

현실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불법건축물의 철거'다. 개발사업이 주로 판자촌의 무허가 건축물을 대상으로 이루어질 때, 행정대집행은 사실상 '강제퇴거'의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건축물의 철거와 사람을 퇴거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즉, 행정대집행을 통해 강제퇴거가 이루어졌던 것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주거시설에서 사람을 끌어내는 데에 행정대집행은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행정청이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 아니라, 점차 불법건축물이 줄어들어 개발사업이 대부분 '합법건축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법이 보호하는 재산권의 대상인 건축물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오히려 주거시설에서의 강제퇴거가 아니라, 꾸준히 문제되고 있는 노점에 대한 철거, 최근 여기저기서 겪고 있는 농성장 강제철거, 대추리나 두물머리와 같이 토지에 대한 대집행(을 빌미로 한 탄압)이 행정대집행과 관련된 주요 인권침해 문제다.

그런데 서울시는 행정대집행 인권매뉴얼(안)이라고 하면서 강제퇴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마도 서울시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2월초 언론보도를 보면 서울시는 '강제철거 시 인권보호를 위해 참고해야 할 매뉴얼'을 만든다고 한 듯하다. 실제로 오늘 공청회가 주거시설이나 상가에 대한 강제퇴거와 관련된 인권매뉴얼(안) 공청회라고 알고 있는 이들도 있다.

지금의 행정대집행 인권매뉴얼(안)은 강제퇴거와 관련된 인권매뉴얼을 만들어보려던 서울시의 포부를 거스르며, 오히려 금지되어야 할 강제퇴거를 인권매뉴얼의 이름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를 어쩌나... 서울시가 이 사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탄천운동장의 넝마공동체 시설물 철거가 있다. 서울시가 뭔가 잘해보려고 애쓴다는 것까지는 인정하겠다. 진정 사건으로 들어온 것을 바탕으로 매뉴얼 마련까지 시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넝마공동체가 살던 천막은 주거시설이므로 행정대집행을 통한 강제퇴거는 안 된다!!!고 선언해야 하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어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행정대집행법이 있으므로 서울시가 시도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오케이. 하지만 그렇다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낫다.

게다가 행정대집행 인권매뉴얼(안)의 또다른 큰 문제는, 행정대집행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안이나 절차, 제도에 대해 인권매뉴얼을 만들 때에는, 그 대상이 만들어내거나 만들 우려가 있는 인권침해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분명해진다. '매뉴얼'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당연히 있지만, 적어도 그 인권매뉴얼을 통해서 뭐가 문제고 뭐가 바뀌어야 할지는 드러나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정작 행정대집행이 문제되는 현장, 노점이나 농성장 등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는 매뉴얼인 것이다.

뭔가 성과를 내고 싶은 조급함 때문인지, 인권침해를 조금이라도 막아보려는 열정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이번 매뉴얼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사실 조금 화가 나기도 한다. 행정대집행 인권매뉴얼이 이렇게 만들어진 데에는 강제철거=행정대집행=강제퇴거라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의 영향이 있을 텐데, 이것은 사실 서울시의 한계라기보다는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강제퇴거의 문제에 접근해온 방식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화가 나는 건, 아무리 그렇더라도 공무원이 이렇게 일해도 되나 싶은 것, 그리고 아마도 공무원이 참고했을 여러 자료들이 그런 고정관념을 반복재생산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또... 그 자료들은 아주 먼 시간, 먼 곳으로부터 온 게 아니라는 점, 이다. 강제퇴거금지법을 제정하자고 얘기할 때, 아니다 강제퇴거는 행정대집행법이나 경비업법 개정으로 막아보자, 고 했던 이들. 그이들은 지금 서울시 행정대집행 인권매뉴얼이 이렇게 나온 걸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화는 곧 접었다. 더 많이 더 자주 더 깊이 얘기하는 수밖에. 모든 사람은 쫓겨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철거민들은 50년 전부터 외쳐왔지만, 그걸 '강제퇴거'라고 분명히 밝히며 대안을 모색한 것은 어쩌면 5년도 안 되니까. 나야말로 조급증을 버려야 할지도. 그래도 한숨은 사라지지 않는군. 뭐 눈물보단 낫다.

 

- 주거시설 등에 대한 행정대집행으로 강제 퇴거가 가능하다는 인식 자체가 큰 문제. 
 
- "주거시설 등"은 '거주하기 위하여 점유하고 있는 일체의 공간적인 생활영역으로 가옥은 물론, 임시생활을 위한 천막, 컨테이너 등 일체의 시설을 포함'한다고 정의하고 있음. '주거시설 등'의 범위를 폭넓게 설정한 것은 의미 있다고 볼 수 있음. 행정대집행이 주로 무허가건축물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중 주거용으로 점유되고 있는 것이 달리 다루어져야 한다는 이해는 바람직함. 
 
- 그러나 제3조(사전고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행정대집행이 강제 퇴거를 포함한다고 보는 접근 자체가 문제적. 강제퇴거금지법의 취지 중 하나도 강제로 퇴거가 집행되어야 할 경우 반드시 사법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것임. 이것이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기본적인 입장이기도 함. 그런데 행정대집행은 행정절차일 뿐임. 건축물의 철거를 행정대집행으로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거주민의 퇴거를 행정대집행으로 하도록 해서는 안 됨. 이는 제7조(퇴거절차)에서도 문제가 됨. 거주민에 대한 퇴거 절차를 행정청이 할 수 있는가, 해도 되는가를 문제 삼아야 함. 또한 퇴거와 철거 절차는 구분되어야 함. 제12조(생존권 등 보장) 역시 행정대집행을 통해 거주민들의 퇴거를 강제적으로 집행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서술되어 있음. (사소하게는 제11조 역시 행정대집행과 강제퇴거를 동일시하고 있음. 더 사소하게는 인권이 침해될 수 있는 시기와 시점이 따로 있나 싶기도 하지만... ^^;;;)
 
* 사법절차가 필요한 이유는 사법절차가 강제퇴거를 막아줄 수 있을 것이라고 당장 기대하기 때문이 아님. 적어도 행정청이 행정적 기준을 가지고 자의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는 것임. 또한 이미 대부분의 강제퇴거는 사법절차(명도소송 등)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어, 법-재산권 시스템을 놓고 싸울 필요가 있음.
 
- 위와 같이 이번 매뉴얼은 행정대집행과 강제퇴거에 대한 인식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음. 그래서 현실에서 실제로 이 인권매뉴얼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지도 의문시됨. 이를테면 발제안에서 제시하는 강남구 탄천운동장 넝마공동체 인권침해 사건 역시, '주거시설 등'에 포함되는데도 불구하고 행정대집행을 통해 퇴거를 강제로 집행한 것 자체가 문제인 것임. 또한 행정대집행이 꾸준히 문제 되고 있는 노점의 경우 '주거시설 등'에 포함되기 어려워 인권매뉴얼의 의미가 소실될 수 있음. 또한 최근 콜트콜텍의 불법건축물(공장 안에 천막으로 설치한 식당)에 대한 행정대집행, 오늘 대한문 분향소에 대한 행정대집행과 같은 경우 '주거시설 등'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인지(혹은 우리는 그렇게 볼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폭넓게 문제시되는 행정대집행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내용이 마련되어야 할지 다시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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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3 12:13 2013/03/13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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