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서가 왜 반말이냐고

 

가끔 사무실로 상담을 원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오늘 받은 전화는, 국가기관의 공문서가 왜 반말이냐는 전화. "합니다"라고 맺지 않고 "한다"라고 맺는 건 국민을 무시하는 게 아니냐는 항의였다. 
 
처음에는, 나이 어린 사람이 반말하는 건 인권침해 아니냐고 물었다. 자신은 칠십 먹은 노인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나이 어린 사람은 늘 존대말, 나이 많은 사람은 늘 반말을 하는 것이 오히려 차별이라고 생각해서 충분히 공감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아마 나이가 핵심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모욕적이거나 부당한 말을 들은 것이 아닐까 짐작하면서. 그런데 그게 대화가 아니라 어떤 정부기관의 공문서에 대한 얘기였다. 그래서 조금 더 난감해졌다. 그게, 공문서들은 보통... 
 
선뜻 공감이 되지 않는데, 전화기 너머에선 계속 공문서의 문체가 불쾌하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나는 뭘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어서 빨리 전화를 끊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어떻게든 조심스럽게 전화를 끊어보려고 말을 건넸는데, 저쪽에선 끊을 기색이 보이지 않고, 그러다가 그의 입에서 얼핏 "각하합니다 라고 해야지 각하한다가 뭐야!"라는 말이 스쳤고, 나는, 뭔가 진정을 했는데 그 결과가 불만스러운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끊으려고만 할 게 아니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국가가 국민을 무시해도 되는 거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라며 전화를 끊으셨다. 차분해진 그의 목소리에서 어떤 반가움 비슷한 고마움이 느껴졌다. 
 
나는 나름 예의 바르게 전화를 받았지만, 이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아마도 우리가 별로 도울 일이 없을 텐데, 하는 생각들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진 그 순간, 그도 그것을 느낀 것만 같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아마도 내가 마음을 고쳐먹은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전화기 너머의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비로소 만났다고 느낀 것이 아닐까. 그가 원했던 것은 도움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었던 게 아닐까. 
 
전화선을 타고, 그 마음이 전해졌나 짐작해보는 게,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말과 말 사이를 채운 무언가를 잠시 곱씹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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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2 17:13 2013/03/2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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