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씻기와 타인의 흔적

메르스 환자에 붙는 번호와 '자가격리'에서 생각을 길어올린 이문재의 글을 읽었다. 손씻기에서 타인의 흔적을 지우려는 강박을 읽어내는 그의 지적에 끄덕거리면서. 그러나 공공의료기관의 부족이나 국가 대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바로 넘어가버릴 때 그의 성찰은 방향을 잃는 듯하다. 손씻기나 격리는 대처를 충분히 한다고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강의를 마치고 질의응답을 하던 중 한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메르스 얘기였다. 밤새 열이 나서 한잠도 못자고 병원을 갔더니 왜 여기로 왔냐며 보건소로 보냈다. 보건소에 갔더니 저쪽으로 가라며 안내한 곳에는 아무도 없이 천막만 덩그라니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진료를 받았는데 열은 없었다. 열이 나는 것처럼 아팠을 뿐이었던 것.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동네 미용실에 갔다. 그런데 미용실에서는 아픈데 왜 왔느냐며 꺼렸다. 그녀는 뭔가 억울함을 한껏 담아 이야기를 했지만 무엇이 억울하거나 부당한지 짚어서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모두가 메르스를 두려워하며 서로를 경계하는 분위기에 압도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픈데 병원에서 거절당하는 경험, 몸에 무언가 이상이 있는 것 같아 정확한 설명을 듣고 싶지만 들을 수 없는/말해주지 않는 상황, 자신이 관계로부터 사회로부터 거부되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러나 자신조차도 거부당하는 실체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뒤섞여있는 상태. 우리에게 낯선 경험들만은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낯익은 경험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아플 때 온 마음으로 걱정해주던 사람들, 나의 몸을 설명해주며 안심시켜주거나 어떻게 하면 되는지 일러주던 의료인, 아파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할 때 시간을 내어 찾아와주던 사람들,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갈 수 있는 여유 같은 것들. 

손씻기는 타인의 흔적을 지우는 행위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타인을 만나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전염성질환의 확산을 막는 모든 노력은 다시 우리가 타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나고 모이기 위한 노력이다. 손씻기나 격리 자체는 의학적 타당성을 따져야 할 문제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타당한 어떤 행위가 어떤 사회적 맥락에 놓이게 되는지, 거기에는 인문학적 성찰과 정치적 비판이 필요하다. 누군가 아플 때 그/녀를 걱정하기에 앞서서 나를 걱정하게 되는 상황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손을 씻거나 자가격리하는 우리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의 맥락을 구성해내지 못하는, 무너진 사회와 사라진 정치다.

공중보건정책과 인권은 늘 긴장과 갈등이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권리의 대립 또는 제한을 인권의 문제로 설정할 때 갈등을 해소하기란 쉽지 않다. 전염성질환의 확산을 막기 위한 모든 조치의 목표는, 이미 감염된 누군가가 늦지 않게 진단을 받고 다시 건강하게 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갈등을 재구성해야 한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상호의존성을 확인시켜준" 전염병에 접근하는 관점은 이래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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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5 09:39 2015/06/1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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