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11.5.
희정이 페북에서 박근혜가 '여성정치인'이라는 점을 언젠가 짚어봐야 하고, 박근혜의 실패는 '남성정치'의 실패라고 했다. 지적하는 부분에 대체로 동의하는데, 박근혜라는 개인의 실패는 그 어디쯤에 있을지 조금 더 섬세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의 말이나 행동이 젠더를 통해 맥락화되기는 했지만 그것 자체가 젠더로 환원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어쩌면 말끝마다 붙는 '년'의 정치적 효과에 대한 고민과도 닿아있겠다.
# '대한민국 넷페미사' 강좌(2016.10.8.)가 있어 찾아가 들었다. 강남역 사건 이후로도, 이전에도, '새롭게' 등장한 것으로 보이는 어떤 여성들을 짐작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솔직히 열심히 기웃거리지도 않았다. 인터넷의 세계는 너무나 광활하여 내게는 범접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했다.
멀리서 구경만 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우연히 강좌를 알게 됐다. 왠지 날로 먹을 수 있는 강좌일 것 같은 라인업이었다. ^^;;; 역시나 날로 먹은 느낌의, 오랜만에 아주아주 알찬 시간이었고,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 권김현영과 손희정의 강연도 알찼고, '디지털 성범죄' 추방운동에 관한 프리젠테이션도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저자 이민경과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의 이야기까지, 차차 정리해보고 싶은 질문들도 얻었으니, 무료 강좌에서 너무 많은 걸 얻은 듯.
다른 무엇보다, '새롭게' 등장한 것으로 보이는, 나와는 전혀 다른 곳에 있을 것만 같은 여성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함께 이 시대를 살아내고 있었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 큰 수확이다. (나의 착각? ㅡ,ㅡ;;;) 그와 동시에, 온라인에서 출발하는 어떤 관계들은 여전히 내가 짐작하기 어려운 세계를 구성하고 있음도 깨달았다.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만도 역시 큰 수확.
현장에는 아직 서점에 풀리지 않은 새 책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가 있길래 사서 읽었다. 책을 읽다가 '여권통문'을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이라고 한다. 내용을 옮겨볼까 했으나, 여성의 지위를 장애인과 비교하며 내세우는 시선이 심히 불편하여 옮기지는 않으련다. 오래전 소안도에서 만난, '여권신장가'를 대신 공유하며 계보를 또 이어본다. 계보를 잇는 것은 중요하다.
사실 책을 산 건, 요즘 내가 품고 있는 질문 하나와 닿아있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무엇이 여성의 역사로 구성되는가. 언제나 어디에서나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의 삶이 '여성'의 역사가 되지는 않는 듯하다. '여성' 문제로 간주되는 억압에 맞서 싸운 여성들의 이야기나, '여성'으로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의 이야기가 '여성'의 역사를 채운다. 그러나 어떤 문제를 '여성' 문제로 간주하는 것 자체가 억압을 유지하는 방식이라면, 어떤 여성들은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을 설명할 언어를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역사 쓰기의 방식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손희정은 강의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페미니즘이 아니지만~" 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여성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 중요한 건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아니지 않겠냐고. 손희정은 그 이야기에 담긴 해방의 욕망을 더 소중하게 읽어내야 한다는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앞선 강의에서 권김현영은 '해방'을 "내가 누구인지 내가 정의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저마다의 삶의 자리에서 해방을 열망한 여성들, 그녀들이 '여성해방'을 꿈꾸지는 않았더라도, 그녀들의 삶에 어떻게 계보를 댈 수 있을까.
둘 모두 이 세계는 망했다고 단언했는데, 나 역시 완전히 동의. 어쩌면 내가 궁금해했던 '새롭게' 등장한 여성들은, 망한 세계에서 먼저 망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먼저 해방을 꿈꾸게 된 사람들. 그렇다면 더욱 고민이다. 어디에 어떻게 계보를 대면서 해방의 열망을 현실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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