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피해자라고요?

"저도 피해자라고요. 국가나 똑바로 하세요. 전 국민일 뿐이에요." 

어제 <추적60분>이 최순실을 다루고 있길래 잠시 앉아서 봤다. 최순실이 정유라의 지도교수에게 "교수 같지도 않은 이런 뭐 같은 것"이라는 둥 하는 욕설을 퍼붓고 쫓아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다. 취재진은 그 후 바뀐 지도교수를 찾아갔다. 그 교수가 인터뷰를 거부하면서 항의한 말이 이것이다. "모두가 피해자예요." 

'피해자'라는 이름

그래, 당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할 수 있다. 교수로서 당신이 가졌던 자존심이 수없이 무너지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혹은 너무 두려웠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피해자라는 주장만으로 피해자가 되는 것도 아니며, 당신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재벌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권운동은 '피해자'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녀들은 언제나 피해자이자 생존자들이다. 피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구조를 고발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그런 결심이 있지 않고서는 자신의 피해를 호소하는 것부터 두려운 일이 된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호소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의 책임을 짊어져왔다. 누구보다도 힘겹게, 누구보다도 빛나는 용기로.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을 떠올려보라. 참사로 소중한 사람을 잃어야 했던 피해자들이다. 그/녀들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피해자임을 주장하지 않았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앞장섰다. 모두의 생명이 존중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참사를 겪기 전까지 먹고사는 일에 바빠 사회가 이 지경이 됐다며 누구보다도 뼈아프게 고백했다. 진실을 모욕하는 온갖 말들에도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이 길을 열어왔다. 

권력은 빈 것이 아니라 차오르고 있다 

지금을 누군가는 권력의 공백기라고 말한다. 제도적으로 구성된 권력은 분명 붕괴하고 있으며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성의 권력을 흔드는 권력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제도권력을 넘어선 힘이 사회에 이미 존재했기 때문에. 그 힘을 만들어온 것이 '피해자'들이다.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이 그랬듯, 백남기 농민과 한광호 열사를 지켜온 사람들, 차별과 혐오에 무너지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앞장서 그 힘을 만들어왔다. 

세상은 지금껏 우리를 모욕해왔다. 가난한 것은 너의 죄였고, 차별당하는 것은 너의 결점이었다. 죽은 것은 너의 잘못이었고, 아픈 것은 너의 부주의였다. 그렇게 온갖 모욕을 퍼부은 대가로 저들은 돈을 만지고 굴리고 숨기고 쌓아놓고 그렇게 불린 힘으로 더욱 잔인하게 교묘하게 우리의 삶을 짓밟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장 분명하게 아는 사람들이다. 가난하지만 나눌 것이 가장 많았고, 차별당하는 만큼 평등을 예감할 줄 알았고, 죽어간 만큼 생명의 소중함을 지킬 줄 알았다. '난 국민일 뿐'이며 '국가나 똑바로' 하라고 도망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여기에서 보이기 때문. 이미 '국민'을 자임해온 사람들의 '국가'는 있었으므로. 지금 여기에서 권력이 차오르고 있다. 


덧)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던 그 교수도 정말 '피해자'가 될지 그냥 숨어 지낼지 생각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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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3 10:47 2016/11/0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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