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작년 봄이었다. “우리도 같이 노래 부르면서 춤 춰요~” 노래를 부르며 기운을 더 내보자고 유가족들에게 제안했다. 뜨아한 듯 쳐다보는 눈빛에 이내 머쓱해졌다. “입으로 따라 해도 솔직히 아직 노래 부를 마음은 안 나요.” 유가족의 시간을 짐작할 만하면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어둠이 빛을 뒤덮고, 거짓이 참을 짓밟고, 진실은 아스라이 침몰하는 것만 같을 때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 얼마나 큰 용기를 요구하는지, 매번 한 발짝 뒤늦게 깨닫곤 했다.
요즘 광장에서 이 노래가 자주 널리 불린다. 때로는 뭉클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때로는 힘이 나서 몸이 들썩거린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앞장서 노래를 부른다. 대통령의 지지율을 4%로 떨어뜨리며 부조리한 정권을 끌어내리자고 거침없이 외치는 광장에서,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된다. 이제 광장은 저마다 살아온 삶의 차이를 순식간에 지운 듯하지만, 나는 우리가 하나라고 섣불리 믿지 않는다. 누군가 지나와야 했던 깊은 외로움의 시간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광장이 떠들썩할수록 누군가의 외로움이 짙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광장을 지켜온 외로움들
청와대의 약품 구입 목록이 공개되자 발기부전제와 항정신성의약품들을 두고 너도나도 한 마디씩 내놓았다. 그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소화제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주범인 옥시레킷벤키저가 만든 개비스콘 40정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이 번져가던 당시 청와대가 나서서 옥시 제품을 구매했다는 사실에 그/녀들은 “어안이 벙벙하고 기가 막히다”고 했다. 이유 모른 채 소중한 사람이 죽어갔던, 이유를 알고도 잘못했다는 이 없던, 국정조사를 한다더니 변죽만 울린 채 끝났던 긴긴 시간은, 광장에서도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19일 집회에서 발언을 했던 갑을오토텍지회 지회장은 “백만의 촛불도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차갑습니다만 하던 대로 인사 드리겠”다며 발언을 시작했다. 모든 차이를 걷어낸 듯 ‘성숙한 시민’이 추앙받는 광장에는 여전히 차가운 눈빛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괜한 두려움이 아니다. 광화문광장에서 2년 넘도록 농성을 해온 세월호 유가족들이 마주쳤던 눈빛,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용역 폭력과 괴롭힘을 고발할 때 내쳤던 눈빛, 반도체 노동자들이 백혈병을 앓고 뇌종양을 앓으며 삼성을 향해 절규할 때 멀뚱거리던 눈빛,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삼성은 국민연금에 큰 손실을 입히며 경영권 승계의 길을 닦았고 롯데와 SK는 면세사업 특혜를 얻었다. 수백억 원의 돈을 최순실은 받아먹고 재벌은 집어먹었다. 대통령과 재벌의 힘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재벌의 갑질에는 분노해도 노동자 탄압에는 눈 감았던 사회에는 등장인물이 더욱 많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며 노동개악을 밀어붙인 정부, 재벌들에게는 언제나 솜방망이였던 검찰, 번번이 기업 편을 들었던 사법부가 있다. 이들은 기업을 살려서 나랏님을 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광장을 고립시켰던 권력의 구조
인권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고 이 세계의 질서를 비틀며 겨우 지켜온 자리가 ‘광장’이라면, 누군가는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길을 열며 우리를 광장으로 이끌었다. 광장에서 마주치는 이들의 구구한 사연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보거나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있음을 알아차린다면 우리가 조금 더 일찍 광장으로 나오지 못했던 이유도 보이지 않을까?
전경련이 출연금을 낸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 외에 기억해야 할 재단이 하나 더 있다. 벧엘복지재단. 전경련-어버이연합-청와대로 이어졌던 게이트에 잠시 모습을 비췄던 국정원의 그림자는 이번에도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이 최순실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동시에 통제해왔다는 의혹이다.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소리 없이 헌신한다는 국정원은 ‘박근혜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겨울 박근혜는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 그렇게 성냈나 보다. 이들이 ‘북한’을 들이대면 사람들은 잠잠해졌고 ‘종북’이라고 조준하면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종북’ 낙인만 앞서 싸웠던 이들을 짓누른 것은 아니다. 그/녀들은 경찰의 물리력 앞에서 용기를 시험당했다. 지금은 앞다투어 광장을 치하하는 언론들이 작년 민중총궐기 때는 발벗고 나서 광장을 왜곡했다. 언론의 공세 덕에 경찰은 물대포로 사람을 죽여도 당당할 수 있었다. 경찰은 오히려 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줄줄이 소환하고 한상균을 잡아갔으며, 검찰은 줄줄이 기소하고 중형을 구형했다. 사법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고 다시 경찰은 안심하며 집회 금지 통고를 남발했다.
최근 법원은 경찰의 집회 금지 관행에 제동을 걸고 있지만 ‘광장’의 집회와 행진을 ‘신고범위’에 가두는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검경과 사법부가 손발을 맞추며 자유를 제압할 때 누군가의 목소리는 이기주의라 왜곡되었고 누군가의 몸부림은 폭력으로 매도되었다. 이제 국가폭력의 구조를 직시하고 넘어서며 ‘광장’의 고립을 해제시켜야 한다. 박근혜 체제가 여전히 ‘공권력’에 기대어 버티고 있다면 우리는 차라리 주권자의 이름으로 물리력을 조직해야 한다. 그때 ‘광장’은 평화로워질 것이다.
광장에서의 분할과 배제
광장이 고립을 벗어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지난 26일 범국민행동에 앞서 ‘페미니스트 시국선언’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같은 날 예정되었던 DJ DOC의 공연 취소를 두고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돌아보면 강남역 살인사건 발생 이후 ‘우연히 살아남았다’며 여성혐오 현실을 고발했던 페미니스트들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여성혐오는 부인되거나, 인정되더라도 대항 전략은 제한되었다. DJ DOC의 노랫말이 여성혐오냐 아니냐, 여성혐오라 하더라도 공연 취소가 바람직하냐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안종범과 차은택을 통해 끌려나오고 있는 김기춘은 박근혜의 7시간을 “여성대통령에 결례라 생각”하며 물어보지 못했다고 변명하고 있다. ‘대통령에 결례’라면 면하지 못했을 비난의 화살은 ‘여성대통령’이라 잠시 멈칫거린다. 지배권력이 ‘여성’을 존중한 적이나 있었던가. 그들은 박근혜 퇴진 국면 속에서 ‘여성’을 방패 삼고 있다. 그들의 방패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광장은 여성혐오를 넘어서야 한다.
혐오는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표현되는 것의 맥락을 만드는 힘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권력의 문제다. ‘미쓰 박’이 혐오표현이라 금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표현이 놓인 맥락이 지배권력이 ‘여성’을 방패로 삼는 것과 정확히 같기 때문이다. 공연 취소를 둘러싼 논란 자체가 그 증거다. 광장이 가뿐히 여성혐오를 넘어섰다면 공연은 차라리 취소될 이유가 없었다. 박근혜 찍은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하는 밀양 할매가 이 년 저 년 하며 욕하는 표현을 문제 삼을 수 없는 이유와 같다.
표현을 두고 혐오냐 아니냐 따지기 시작할 때 혐오는 이미 피라미드를 타고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가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올해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일본 쓰구이야마유리엔 사건과 미국의 올랜도 사건이 그랬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한국에서 눈물을 흘렸던 이들은 이미 ‘말’뿐인 것에서 자신을 배제하는 거대한 구조를 직감하며 살아왔다. 누군가 혐오의 말들을 듣고 싶지 않다고 할 때 우리는 혐오로 지탱되는 권력에 맞서자는 제안을 들어야 한다. 그때서야 우리는 혐오에 맞서는 더욱 많은 방법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바꿔야 할 세계
박근혜보다 강한 것은 박근혜를 대통령씩이나 만들었던 이 체제다. 정관계 원로들이 박근혜 하야를 주장하고 친박 원로들이 퇴진을 권유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가 버틸수록 체제의 부역자들의 치부가 하나둘 까발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광장과 다른 이유로, 이들에게도 박근혜는 더 늦기 전에 물러나야 할 인물이다. 이 사태의 결말에 체제의 부역자들에게도 불똥이 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광장은 불똥이 튀어야 할 방향을 정확히 지시해야 한다. 박근혜가 고맙게도 박정희의 무덤에 침을 뱉었을 때, 광장은 박정희 체제의 청산 이상을 이뤄야 한다.
아마도 가장 적은 손실을 입는 것은 재벌이고, 가장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국정원과 검찰일 것이다. 자본은 이미 다단계 하청구조와 비정규직을 통해 손실을 떠넘겨왔다. 공안기구는 단일권력의 지휘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보다는 저마다 법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집합권력을 이루는 방식으로 변화해왔다. 동아시아의 권력구도를 재편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이 발빠르게 움직일 때 한국 정부는 스스로를 관철시킬 아무런 전략도 가지지 못한 채 대결 구도를 조장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을 들먹이며 강행한 사드 배치에도 최순실 연루 의혹이 제기될 정도니 어쩌면 상상 이하의 수준일 지도 모른다.
관치경제로 배를 불려온 산업자본이 재벌이라는 형태로 권력을 유지할 때, 우리는 재벌 해체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탐욕을 끊어내기 위한 요구를 외쳐야 한다.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외침은 누군가의 죽음에 뒤따르는 통한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노동을, 우리의 일상을 이윤보다 생명과 존엄이 우선이라는 원칙 아래 다시 구성해야 한다.
정부를 비판하다가 술집에서 끌려갈 수도 있고,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구속을 감수해야 했던 시대가 자기검열과 자포자기로 모습을 바꿔 이어지고 있다. 최순실 이후 얼토당토 않은 특혜들이 폭로될 때마다 기가 차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주 새로운 사실들도 아니다.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나서지 말라는 핀잔들 속에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닌가.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불이익이나 모욕은 자신에게 이유가 있을 거라며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했다. 이제 광장에서 돌아간 일상도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조금 더 인권할까요?
세월호 참사 이후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우리 손으로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지금이 인권할 때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인권은 손에 잡히지 않는 한가로운 소리고 싸움이 마무리되면 그때 다시 들여다볼 만한 것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지금이라도 인권할 때”라고 답하며 인권으로 이어진 목소리들을 모아온 결과 4.16인권선언이 2주기에 선포될 수 있었다. 낭독을 함께 했던 세월호 유가족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끼리만 하던 얘기를 권리로 선언하니 느낌이 달라요.” 세월호 참사 이후의 다른 사회는 인권의 나침반을 얻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인권은 고작 ‘느낌’일 뿐인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짐작하는 ‘눈치’일 뿐이고 괜히 든든한 ‘쪽지’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 광장을 지키며 길을 열어온 사람들의 삶과 만나는 방법이 인권이라면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기도 하다. 지금 광장이 인권을 원한다고 말하면 거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로움들이 지켜온 광장이 고립과 분할을 넘어 체제를 겨냥한다면 인권은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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