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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보이스의 위켄즈

게이코러스 지보이스의 정기공연을 꽤 찾아갔던 듯하다. (솔직히, 합창으로서 감동했던 건 공연마다 한두 곡 정도밖에 안 된다. 불안정한 음정이나 흔들리는 리듬 같은 것이 몰입을 막기도 했다.^^;;; 그래도) 정기공연 소식이 있으면 찾아갔던 건 지보이스만이 주는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합창이나 서로의 소리를 보듬으며 하나의 울림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한다. 그런데 지보이스는 서로의 삶을 보듬으려는 몸짓을 소리로 보여주었다.

지보이스 공연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 했던 곡이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콘그레츄레이션'. 지보이스가 노래를 부르며 서로의 자긍심을 응원할 때 나는 내 삶이 따뜻하게 축하를 받는 느낌이었다. 또 하나는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 한 보수기독교도가 김조광수-김승환 결혼식 무대에 난입해 끼얹은 똥물을 온몸으로 맞은 후 지보이스가 만든 노래다. 혐오가 점차 거세지는데 오히려 사랑으로 세상의 죄를 사하겠다는 고결함이 감동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혐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절박한 다짐을 듣는 것 같아 눈물이 흘렀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사랑했을 뿐이므로, 혐오의 불능을 선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노래는 올해 공연에서 들었던 개사곡 '아 대한민국'이다. 정태춘의 옛 노래에 시대의 옷을 새로 입힌 곡이 오프닝이었다. 다소 뻔한 레토릭이기도 하다며 노래를 듣다가 "웃으며 떠나 아직 돌아오지 못한 저 바다 아래의 잠 든 아이들"을 부르는 순간 나는 허를 찔린 듯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외로움에 직면해본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위로 같은 느낌이었달까. 자신의 삶을 껴안는 용기를 가져본 사람은 누구의 삶도 껴안을 수 있다는 걸 느꼈던 것도 같다.

지보이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위켄즈>를 봤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추운 겨울 위로가 되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지보이스의 한 단원은 영화를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했다.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이 영화는 보편적이지 않다.
<위켄즈>는 지보이스의 이야기다. 남성 동성애자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없고, 여성 동성애자나 여성 이성애자의 이야기라기에도 미끄러진다. 남성 이성애자의 이야기라기에는 더더욱 거리가 있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흘리는 눈물의 양은 이 순서에 비례할 것이다. 지보이스를 거쳐간 사람들이라면 영화 보는 내내 울 것 같고 남성 이성애자라면 영화 보는 내내 감정의 자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 점이 영화를 더욱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시간과 감정의 한계를 넘어 세상을 만날 수 있도록, 누군가 용기 내어 자신의 삶을 말하는 자리로 우리를 초대했다. 그가 앞서 겪은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들을 배우게 된다. 영화 티켓 값만 지불하면 가능하다는 건, 너무 후한 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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