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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천일, 천개의 바람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이 불렸던 노래다. 기억들, 웃음소리, 마지막 메시지, 좋아하던 색깔, 지키지 못한 약속, 알 수 없는 마지막 순간 같은 것들이 바람처럼 한꺼번에 떠올랐다가 다시 흩어지는 걸 두고 천 개의 바람이라 했으리라.

노래는 사진 앞에서 울지 말라 당부했지만 노래가 들리면 자꾸 눈물이 흘렀다. 어떻게 당신들을 기억해야 할지, 바람은 불어오는데, 무슨 말을 준비해야 할지, 바람은 불어오는데……. 바람이 얼마나 빼곡하고 두터우면 천 개의 바람일까. 천이라는 숫자는 참도 아득했는데 그런 천일이 흘렀다.

 

아득한 천일의 시간

천일의 시간을 되돌아봤다. 백일이 되던 날 안산에서 걸어온 세월호 유가족들은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했다.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수백만 명의 국민의 뜻을 경찰은 가로막았고 그날 쏟아지던 비를 못다 흘린 눈물인 듯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이백일이 될 무렵 국회가 내놓은 특별법은 특조위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없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멈출 수 없었다. 삼백일이 가까워질 때 유가족과 국민들은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도보행진을 했다. 세월호를 인양하라고,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그러나 1주기가 가까워올 때 정부는 보상금으로 유가족을 모욕하며 특별법을 더욱 무력화할 시행령을 내놓았다. 유가족들은 삭발을 했고 쏟아지는 물대포와 최루액을 맞으면서도 성역 없는 진상규명의 요구를 거두지 않았다.

사백일이 되었을 때 정부는 특조위를 무력화하는 시행령을 이미 강행 처리했고 오백일이 될 즈음 특조위가 겨우 활동을 시작했다. 육백일이 되었을 때 정부가 특조위의 진상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해수부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은 여당 추천 특조위원들의 사퇴 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었다. 2주기를 한달 앞두고 칠백일이 되었다. 정부는 특조위 활동기간이 곧 종료된다고 주장하며 진상규명을 정리하려 드는데 특조위를 지키기는 힘에 부쳤다. 세월호 참사의 기억은 이미 희미해진 듯, 광장에 모이던 사람들은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맞은 팔백일에 모인 사람들은 이대로 진상규명을 끝낼 수 없다고 특별법을 개정하라며 주먹을 쥐었지만 구백일이 되기 하루 전 특조위는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박근혜를 견딘 천일

세월호 참사 천일은 박근혜를 견딘 천일이기도 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라는 사실만이 아니다. 그를 권력의 정점에 세워놓은 낡은 체제는 공동체 구성원의 삶과 죽음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무관심으로 시작해 무책임으로 끝났다. 탄핵을 당하고도 뻔뻔하게 청와대로 기자들을 불러들였던 박근혜가 새삼 확인시켜준 것도 그것이었다. “작년인가요, 재작년인가요,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는데” 온 국민에게 각인된 세월호 참사의 날짜조차 기억하지 못했고, 마치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듯 언급했다. 유체이탈은 화법의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체제의 문제다.

세월호 참사는 그것을 선명하게 드러냈을 뿐이다. 2014년 4월 16일 구조 요청이 있은 후 마지막 탈출이 있기까지 90분의 시간이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정부의 주요 관료들은 하나같이 뉴스를 보고서야 사고를 인지했다고 했다. 수백 명이 타고 있던 여객선이 침몰한다는 소식을 접한 후로도 그들은 한결같이 구경꾼이었다. ‘배가 침몰한대? 사람이 죽었대? 영상 좀 보내줘’ 생명을 구조해야 할 골든타임에 정부가 보인 태도는 이게 전부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구경하기 좋은 영상을 요구했을 뿐 구조하기 위한 지시와 명령은 없었다.

현장에 출동한 해경 중 선내에 진입한 사람도 한 명 없었고 승객들에게 퇴선 지시를 한 사람도 한 명 없었다. 현장에 출동한 세력이 승객들을 퇴선시키는 등 적절한 구조활동을 하고 있는지 지시하거나 확인한 사람도 한 명 없었다. 박근혜는 오후 5시경 나타나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 하는 질문으로 사람들을 놀래켰을 뿐, 그 후로도 수일 동안 참사 대응을 위한 회의 한 번 주재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에 헛웃음이 날 뿐이다. 최선은커녕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참사 당일 작동하지 않았던 정부 시스템은 오히려 참사 이후에 본격적으로 작동했다. 그 결과는 수난이었다. 진상 규명 요구는 불온한 것이 됐고 애도는 범죄가 됐고 안전은 내팽개쳐졌다. 재난의 피해자들은 수난의 한가운데서 말 한 마디 꺼내기가 두려운 시간을 겪어야 했다. 박근혜 체제는 안 구한 걸 안 밝히려고 안간힘을 썼고 그것을 해내는 듯했다. 그리고 우리는 백남기 농민의 죽음까지 목격해야 했다. 박근혜 체제의 시스템은 사람을 죽게 내버려둘 뿐만 아니라 언제든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다.

 

우리가 만들어낸 다른 시간

천일을 맞는 마지막 백일은 조금 달랐다. 박근혜 정권의 온갖 치부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박근혜를 끌어내리자며 광장에 모였다. 경찰에 번번히 가로막혔던 자리를 훌쩍 넘어 행진을 했다. 국회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7시간’을 언급하면 진상규명 요구의 진의가 의심 당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7시간은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사유로 명시되었다. 그날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구하지 않음은 박근혜 체제의 무능도 실수도 아닌 본질이다. 어쩌면 왜 구하지 않았냐는 질문은 부적절하다. 박근혜 체제는 국민을 구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탄핵 사유에는 생명권 보장 의무 위반이 있다. 박근혜 변호인단은 반론을 제기하며 ‘직무에 관한 의식적인 방임 내지 포기 등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않은 경우’에만 직무 유기의 죄를 물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제시했다. 변호인단의 말대로 박근혜에게 직무 유기의 죄를 묻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자신의 직무라는 사실을 여전히 모르고 있으니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탄핵소추안은 헌법이 보장하는 생명권으로부터 탄핵 사유를 서술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이제야 헌법에 생명권이 기입되었다. 국민의 생명을 구하고 지키는 것이 자신의 책무인지도 모르는 자들에 의해 움직였던 국가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선언을 이룬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싸워온 천일의 시간이 헌정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박근혜의 퇴진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은 그저 권력자에 대한 심판이 아니다. 우리는 분명히 다른 시간으로 접어들었지만 지금이야말로 힘을 내 싸워야 할 때다.

 

천 개의 바람을 기억하며

우리 곁을 두텁게 채웠던 천 개의 바람은 거스를 수 없는 변화를 우리 눈앞에 보여주고 있다. 그 변화를 직시하는 것이 천일을 맞는 우리의 과제는 아닐까? 우리의 세계로 불어온 바람은 삶과 죽음을 어루만질 줄 아는 세상을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가 대통령인 채로 3주기를 맞을 수는 없다. 아니, 세월호 참사 3주기는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생명을 구할 줄 아는 세상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우리를 이끄는 천 개의 바람을 기억하며,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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