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눈에 밟히는 장면. 9일 밤, 당선이 확실시된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광화문 세종로공원에 들어서던 모습이다.
문재인의 당선은 사실 그리 설레는 사건이 아니다. 이번 대선 결과는 촛불이 만들어낸 변화이기보다 차라리 촛불이 시작되던 당시 한국사회의 지형을 반영한 것이다. 이미 박근혜 정권을 견딜 수 없는 지경이었으므로 역사의 힘이 그를 밀어낸 것이다. 지금의 대선 결과가 보여주는 만큼 밀어낸 것. 그런 점에서 촛불이 시작되던 당시의 과제가 고스란히 운동의 과제로 남아있다는 걸 되새기는 것이 중요한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해서는 기대되는 바가 있다. 다른 과제들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위에 있다면 세월호 참사는 지금 역시도 여전히 대한민국에 새로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문재인 정권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의 과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야당'이 정권을 잡았던 어떤 때에도 불처벌의 역사를 종식하지 못했다. 이승만 하야 직후의 과거 청산은 그야말로 시늉조차도 못 내는 수준이었고, 87년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에도 진전은 있었으나 한계가 분명했다. '과거사' 진상규명에 일부 진전은 있었지만 그것을 현재의 역사를 새로 쓰는 힘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5.18민중항쟁은 한국의 과거사 진상규명에서 여러모로 가장 진전을 이루었지만 전두환의 사면이 김대중의 결단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저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는 것은 아니다. 5.18민중항쟁의 진상규명이 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첨예한 '정치적' 쟁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사'를 정치적 현재로 만들어낸 힘은 유가족을 비롯한 운동의 힘이었다. 그러나 '야당'은 그것을 자신의 역사로 등치시키며 '여당'을 비판하는 무기로 삼았고 '야당'이 '여당'이 되고 나서는 민중항쟁의 역사를 국가질서로 순치시키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5.18기념식은 국가 공식행사가 되었지만 그곳에 항쟁의 흔적은 없다. 이렇게 순치된 항쟁의 역사는 정권이 바뀌자마자 흔들리기 시작하고 심지어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도 5.18민중항쟁의 진실은 경합 중이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바는 바로 이 지점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박근혜 정권에 의해 한발짝도 나가기 어려웠던 것은 분명하다. 세월호 참사 자체도 박근혜 정권이라서 벌어진 일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 진상규명을 비롯해 미수습자 수습, 추모안전공원의 설립, 공식적 기억의 확립 등 많은 점에서 달라질 것이라 기대한다. 이것은 참사를 마주한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임무였다. '다른' 정권이라 가능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정권이든 응당 해야 할 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특정한 정치세력이 자신의 성과나 타 세력의 한계로 설명하려들기 시작할 때 진실은 흩어져버린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정치세력들 간에 정권을 주고받는 듯한 '정권교체'라는 표현도 참 별루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앞선 정권을 심판하는 과제가 아니다. 말 그대로 새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과제이자 참사를 낳은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진단하고 재구성해야 하는 과제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은 앞선 정권에서 '야당'이었지만 이제는 수권정당이고 문재인은 정당을 떠나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나는 문재인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승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한 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유가족과 세월호 참사의 모든 피해자들,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고스란히 운동의 과제일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문재인 당선자에게 보냈던 격려는 문재인에 대한 지지나 축하만은 아닐 것이다. 문재인의 당선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고통 속에서 일궈온 새로운 사회가 어디쯤 이르렀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그런 점에서 9일 밤의 환한 웃음은 문재인보다 3년여를 함께 어깨 겯고 걸어온 우리 모두를 향한 웃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세월호 참사가 한국사회에 남긴 숙제를 정말 잘 풀고 싶다. 끝까지, 끝이라고 생각되는 때에도 남는 숙제까지,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9일 밤의 장면을,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가자는 유가족들의 제안으로 기억하려고 한다. 기대에 들뜨지도 말고, 우려에 짓눌리지도 말고, 뚜벅뚜벅 끝까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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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3 19:39 2017/05/1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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