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미류님의 [그때 그러기 전] 에 관련된 글.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쪼갰다. 아, 진보네한테 이뿜 받을라구 무진장 애쓰는구먼. ㅋ

(하지만 이런 공간이 이어질 수 있도록 애쓴, 그리고 앞으로도 애쓸 진보네와 자원활동가들에게 감사를... 이 공간의 매력 중 하나는 관리자가 참 이뿌다는 거다. ^^;;)



불로그를 시작한 것은 작년 8월 1일. 아마 진보불로그를 알게 된 건 그 며칠 전. 진보불로그 생일이 7월 27일이라니, 나도 은근히 초창기 불로거인 셈(이라고 생각하니 꽤나 뜻밖이군.). 처음 진보불로그를 만났을 때의 느낌은 '오우, 바로 이거~' 비슷한 느낌이었다.

 

홈페이지처럼 게시판마다 글을 올리지 않아도 되고 그냥 주욱 펼쳐진 일기장처럼 써내리면 되는 곳. 예전에 했던 풍물패 홈페이지가 그랬는데, 96?97?년쯤이었나, 그때 게시판이 아닌 뭔가 희한한 그것(잡기장)이 무척이나 탐났던 기억이 난다. 참, 종이같은 느낌이다, 그랬더랬지. 게다가 혼자만 볼 수 있는 글도 쓸 수 있고. 먼저 둥지를 튼 사람들의 글들도 한결같이 편안했다. 다만, 컴퓨터와 별로 친해질 의향도 없고 인터넷에 익숙하지도 않은 내가 도대체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지 난감해하며 망설이기만 했다.

 

그때 진보네의 친절함은 어찌나 고마웠던지. 매뉴얼을 보며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쓰~윽 해치웠다. 그리고 처음 남긴 글이 '담배재를 떨어뜨리지 않고'. 솟구치다가도 가라앉고 밍숭맹숭하다가도 욕심이 나는 걸 보면, 엉성하게 이어져가면서도 긴장을 놓치지 않고 잘 걷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진보불로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이건 너무 웃긴 얘긴가? 후회라니... ㅡ.ㅡ)

 

굳이 길게 늘어놓은 전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의 중요한, 지금도 여전히, 목적은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가 그런 공간이다. 그런 만큼 비공개 글들이 가~득(?) 쌓여있다. 살짝 열어놓은 것이 '걷다-0'에서 시작되어 매달 이어지는 '걷다' 글들인데 요즘 이걸 어떻게 할까 살짝 고민중이다. '걷다'를 쓰기 시작하면서 비공개 글들이 줄어들고 있는데 그게 꼭 좋은 건 아니기 때문. 나에게는 좀더 찬찬히, 그리고 속속들이 나를 헤아려볼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시간! 이 필요하기 때문. 쨌든.

 

그렇게 일기장으로 쓰기 시작한 공간에서 갑작스레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취한 시간을 위한 말들'이 블로그 첫화면에 걸렸다. 깜~딱 놀랐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때는 불로거도 몇 안 되고 하루에 올라오는 글들도 부담없이 훑어볼 수 있을 정도로 한가로운 공간이었으니 우연히라도 올라갈 만 했는데 그때는 참 싱숭생숭했다. 몰래 숨어있다가 술래에게 붙잡힌 것처럼 깜짝 놀라기도 했고 나만의 공간이 될 수는 없다는 걸 분명히 깨닫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읽어주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던 나를 대면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색하게나마 사람들을 만나는 설레임에 흥분했던 시간들.

 

특히 불로그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인 트랙백의 재미도 솔솔 느끼기 시작했던 듯. 아마 첫 시작은 '정신병이라는 오명'이었던 듯. 몇 번 트랙백을 주고받다가-이건 거의 일대일 토론이었다- 애매하게 끝났는데 아주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과 한 마디 한 마디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글들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조금 어렵기는 했다. 아마 트랙백이라는 것이 있어서 쓸 수 있었던, 혹은 더욱 의미있었던 글은 '성매매를 둘러싼 권력관계를 삶의 현장에서 드러내기' 였을 것이다. 혼자서 끙끙대다가 끝났을 수도 있는 고민을 진보불로그라는 공간 덕분에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고 어렵지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술자리 약속을 뒤로 하고 정신없이 써내려갔던 글이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소통이 쉬워질 수 있기를 바라며 글자색도 넣고 엄청난 수의 글에 트랙백을 걸고 링크를 걸었다. 지금 돌아봐도 기특하다. 트랙팩이 그때도 있었더라면 그렇게 오바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미로에서 헤어나기-미로를 설계하기'는 아마도 그 글의 후과였던 것도 같다. 누군가에게 내 설익은 고민들을 내보인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불로그를 만들고 '일단 중얼거리다가' '읽다/보다/읽어보'기도 하다가 '어쩌면, 기획', 그래서 언제 사라질 지 모르는 분류를 만들었다. 한시적으로 쓴 것들이 많고 앞으로도 그럴 듯하다. 다만, PLWHA는 꽤 오래 갈 듯하다. 아직 한국사회에서 HIV 감염인, 혹은 AIDS에 대해서 이야기할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좀더 열심히 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

 

참, 전범민중재판 준비하면서 오프모임을 시도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익명의 관계를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온라인으로 만난 사람들을 '다른' 방식으로 만난다는 건 무척 생소한 경험이었는데 심지어 주최하려고 했다니~ @.@ 일일호프 선전할라구 눈이 멀었던 게지 ㅡ.ㅡ;; 그래도 그렇게 시작한 오프모임에 조금씩 '다른' 방식이 익숙해지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모임을 나가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그날 와준 알엠과 머프 덕분이다. 여전히 오프모임은 참~ 쑥스럽지만. ^^;;

 

나만의 공간을 위해 만들었고 여전히 그런 공간을 꿈꾸지만 그 1년 동안 만난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나는 '나만의 공간'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기회를 얻은 듯하다. 링크를 걸어놓는 대신 RSS를 통해-역시, 친절한 진보네 덕분~ ^^*- 많은 이들의 고민을 듣고 배운다. 혼자 훔쳐보는 것 같아 미안할 때도 있지만 누군가 보아주기를 기다리는 글들일 꺼라는 짐작으로 꿋꿋이 읽어내린다. 시간에 쫓길 때는 한 줄 한 줄 되새겨볼 틈도 없이 주욱 읽어내리지만 대개는 많은 고민들을 얻어 챙긴다. 덧글도 남기고 트랙백도 걸고 그러면서 나눌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조금 힘들다. 혼자 주절거리는 글조차 선뜻 손이 가지를 않는다.

 

이 공간이 너무 친숙해져서 애써 손을 가져가지 않아도 일기를 쓰듯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르고 너무 익숙해져서 더이상 이곳에서는 나를 대면할 수 없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하고 숙제를 받고 시작한 글이지만 조금 생각해봐야겠다.

 

개인적으로는, '빵빵~' 이나 '가족, 이야기 둘...' 같은 글들이 좋다. 너무 개인적이지도 않고 너무 뻑뻑하지도 않은. 요즘은 꽤나(^^;;) 뻑뻑하고 밋밋한 글들만 올리고 있기는 한데(사실, 나란 인간이 좀 뻑뻑하고 밋밋한가보다 싶기도 하다. ㅡ.ㅡ) 조금씩 또 뭔가 달라지겠지...

 

앞으로 또 어떤 시간들을 진보불로그와 함께 나누게 될 지 사뭇 기대된다.

 

그리고 글을 쓰다보니 그동안 만난-혼자 기웃거린 사람들까지- 사람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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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6 15:46 2005/07/2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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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뻐꾸기 2005/07/26 16:2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진보네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거 맞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가 그렇지요? (이렇게 말하면 실례겠지만) 진보네 진짜 귀여워요. ㅋㅋㅋ

  2. 산오리 2005/07/27 08:4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앗! 뻐꾸기다.... 잘 지내시죠? ㅎㅎ

  3. 미류 2005/07/28 08:2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뻐꾸기, 그쵸? ㅎㅎㅎ

    산오리, ㅎㅎ 저도 뻐꾸기를 오랜만에 보고 정말 반가웠답니다. 좋죠? ^^;;

  4. 진보네 2005/07/28 17:5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뻐꾸기/ ㅋ 그런거에요???
    뻐꾸기도 미류도 너무너무 이뻐요 ㅋㅋㅋ

  5. 바다소녀 2005/08/03 12:4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살짝 내놓은 '걷다.'를 읽는 재미가 있죠. ^^

  6. 미류 2005/08/03 17:3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밀리고 나면 읽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
    요즘 계속 쓸까 말까 고민 중이예요. 근데 '걷다'를 안 쓴다고 스스로를 더 차분히 돌아볼 수 있을 지 자신이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