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거리게

* 이 글은 망상妄想님의 [반전평화공동행동(준)의 사기행각]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뭘 배워보겠다고 미국에 다녀온 후배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걷는데 갑자기 반전집회 이야기를 꺼낸다. 뉴욕에서 가장 크게 열렸다는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끝이 보이지 않게 대열이 늘어서 있으나 아무도 그 모두를 집중시키려고 소리를 질러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적당한 크기의 무리들이 저들끼리 어울려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몸짓을 하거나 혹은 그냥 걷거나... 요 몇년 사이에 집회문화가 조금씩 바뀌기는 한다. 내가 학생으로서 집회에 참석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차이도 있겠지만 이전처럼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도 적어졌고 함께 구호를 외치는 분위기도 머쓱해졌다. 천편일률적인 팔뚝질이나 군가풍의, 게다가 성차별적인 가사들을 함뿍! 담고 있는 투쟁가들에 대한 문제제기들이 꾸준히 이어져온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문제제기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뭔가 변화하려는 기운들을 보였던 것 같다. 팔뚝질을 하며 투쟁가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만서도 집회문화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충분히 공감하던 바, 나는 반전집회의 설렁설렁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집회문화가 딱 거기서 정체되어 더이상 진전이 없는 듯한 것은 나만의 느낌인가. 행진을 하는데, 같이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아무도 노래를 부르지 않고 같이 구호를 외치지 않으면 아무도 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뭐, 그렇다고 침묵시위를 했던 것은 아니니 늘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혹은 무리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집회나 행진은 그 목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에 기본적인 의의가 있겠지만 모임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선전하고 선동하고 그/녀들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중요한 의의가 있을 것이다. 내가 학생일 때에는 후자의 의의를 참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집회에 '놀러' 나오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집회나 행진에 '놀러 나올 수 있는 때'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놀러' 나왔으면 좋겠다. (아직 '그렇지 못한 때'가 더 많은 듯하지만...) 여전히, 집회문화의 한계를 주최측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먼저 내가 부끄럽다. 좀더 즐겁게, 적극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싶지만 대개는 몸뚱이 하나 달랑 들고 가기 십상이고 가서도 쑥스러워 놀고 싶은 만큼 놀지 못한다. 누가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뭐하라 등떠밀지도 않는데 말이다. 풍물패 했었다. 몇 번 뛰어보지는 않았지만 판굿을 참 좋아한다. 그냥 적당히 자리 만들어 걷다가 뛰다가 돌다가 쉬다가 하면서 놀면 된다. 물론 판의 처음부터 끝까지 죽어라 쇠를 쳐야 하는 부쇠 같은 존재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놀면 된다. 다들 맞추어놓은 듯이 가락을 치는 것 같아도 사실 모두 제멋대로 친다. 장단만 얼추 맞추면서 출렁거리면 된다. 맞추려고 하지 않아도 그 판 안에서 제각각 신나게 놀다보면 어느새 진이 되어 물결처럼 출렁거리고 있다. 출렁거리다 보면 판의 안팎이 따로 없어져 주위 사람들도 모두들 출렁거린다. 아무것도 손대지 않고 그냥 어깨춤만 추어도 나는 그 소리를 함께 만들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얻게 된다. 그 느낌을 나는 참... 좋아한다. 어느새 출렁거리는... 그게, 호흡을 맞추는 거거든... 집회에 나갈 때마다 그런 생각 한다. 이 행진이 판굿처럼 출렁거렸으면 하는. *** '사기'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공감되지는 않지만 '사과'하라는 요구는 조금 당혹스럽고 분위기 파악 제대로 안되지만 집회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여 트랙백 걸었슴다.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4/09/30 13:19 2004/09/30 13:19
태그 :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aumilieu/trackback/79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