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겨울 만약 나는?

2009/08/31 00:44
  

 2007년 겨울은 잊을 수가 없다. 군대에서 조금은 억울하게 불미스런 일을 겪고 오히려 군 생활이 더 편해진 때인 걸로 기억한다.(그 때 친했던 간부들의 배려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뜨거운 커피와 담배를 함께 피며 친한 선, 후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것도 행복했었고 전역에 대한 기대감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몸서리 처질 정도로 설레었다. 덕택에 11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우리에게 느껴지는 추위를 좋아하게 되었다.(딱 그 정도만)


 내게는 행복했던 그 시기 밖에서는 정치의 계절이었던 거 같다. 대한민국의 모든 눈이 대통령 선거로 쏠리던 때였으니 말이다. 나 역시도 대선을 관심 있게 바라보던 눈 중 하나였다. 군 입대 전에도 당적을 가지고 있었고 내 생애 첫 투표권을 가진 대선 이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휴가 운 없던 내가 7월부터 12월 말까지 세 번의 휴가에 시험으로 인한 두 번의 외출을 하다 보니 사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던 것도 한 몫 한 듯하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가끔 2007년 대선 공간에 있었던 일들을 적은 글들을 보고는 한다. 그 글을 읽으면서 ‘좋은 판 놓쳤다’란 아쉬움이 생긴다. 얼마나 재미있는 싸움이었을까? 그러면서 따라오는 생각. “만약 이 정치의 계절 내가 민간인이었다면?”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이건 가정해 봐도 괜찮을 듯하다. 육군병장이 블로거가 됐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지 않겠는가?


 우선 당적을 가졌던 민주노동당 경선에 민간인이었다면? 자서전 쓰듯 정직하게 밝히자면 민주노동당의 스타들을 보고 입당한 경우라 경선 당시 최고스타인 노회찬 후보를 지지했을 것이고 (물론 내 주위 사람들도 노회찬 대표를 지지했으니) 노후보가 안되더라도 심상정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되었다면 박수쳤을 것이다. 또한 그 둘 중 한 명이 후보가 되었다면 본선에서 그를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아고라나 내 블로그에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태왕사신기 1부가 재방송 되던 토요일 오후 갑자기 뉴스속보가 뜨더니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 권영길 후보가 당선된 순간 나는 이해할 수 없어 담배를 피러 나갔다. 초짜 오브 초짜인 내가 봐도 권영길 후보는 악수였기 때문이었다. 쪽박이 눈에 선했다. 그것도 정파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득표율로 당선되었으니 얼마나 어이없었겠는가. ‘이번에는 정파를 떠난 선거가 될 것이다’라고 예측한 한겨레 21은 삽질 한 것이었다.

 

 그리고 본선 때는 어떻게 했을까? 일단 민주노동당을 탈당했을 것이고(경선을 끝낸 다음 주에 휴가였다. 그 때 탈당하고 싶었는데 선배들이 무섭기도 하고 짠하기도 해서 그 생각 그만뒀다.) 문국현 후보와 금민 후보를 놓고 고민했을 것 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금민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시험보고 난 뒤 피시방에서 금민 후보와 권영길 후보 정책설명집을 비교하면서 읽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부재자 선거 때 금민 후보를 찍느냐 마느냐 라고 고민 많이 했다.) 그의 선거 슬로건이었던 ‘새로운 진보, 담대한 제안’ 이  맘에 끌렸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군대 있었던 게 다행인 듯싶기도 하다. 내 성격상 액션을 취했을 것이고 그 계기로 사회당에 입당했을 수도 있으나 그 곳에서 적응을 잘 했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라는 대로 당을 나눴기 때문에 내가 몸담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으니. 현실은 지금 이 상황이고 그냥 심심하다 생각한 거니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당원 분들은 불쾌하게 봐주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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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렇다면 내 주위 사람들은 누구를 선택했을까? 부모님이야 다른 생각 안하시고 정동영 후보 찍었다. 내 여자 친구는 충장로에서 오로지 BBK 이야기만 한 정동영 후보의 연설을 듣고 문국현 후보를 선택했다고 한다. 내 대학친구는 허경영 후보를 선택했다. 19일 당직사관을 선 간부는 인수인계 도중 다른 간부의 질문에 문국현 후보가 참신하게 느껴져 그를 선택했다고 이야기 했다. 병사들은 말은 안하지만 대체로 그 곳도 이명박 후보가 대세였다. 내가 ‘권영길 후보를 찍겠지’ 라는 희망을 가졌던 후임은 ‘비판적 지지’를 이유로 정동영 후보를 뽑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후임은 다 도찐개찐이라 그냥 이름이 특이한 금민 후보를 찍었다고 한다. 이유야 뭐가 되었든 한국의 진보를 위해 자신의 귀중한 한 표를 선택한 그 후임에게 아직도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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