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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더라

학교다니던 시절에 난 참 모진 사람이 였다.

활동을 후회해 본적은 없는데 동기들이나 후배들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후회되는 것들이 있다. 좋게 말해 참 모진 사람이였다는 거다.



과학생회 활동을 할때 한 동기는 '너 때문에 미치겠다'라고 나를 타박했던 적이 있다.

뭐 지금도 그리 다르지는 않지만 그때는 일에 대한 절박감이 있었다.

내가 일을 하면 할 수록 만나고, 많아지는 과학우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에는 정말 농성도 많았고, 집회도 많아서 방학동안 집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렇지 .. 좀 무리하게 일에만 욕심을 부렸었다.

주변 사람들은 생각도 않하고..

 

오늘 우연히 토론회를 갔다가 과학생회 집행부를 같이 했던 동기를 만났다.

토론회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주최하는 제네바 주재 주요국 대사 초청 세미나였다. 세미나를 들으러 간게 아니라--; 침묵시위 택을 미리 받고 취재차 갔었다.

근데 거기서 동시통역하는 녀석이 바로 그녀석이였다.

나와 함께 미전투라는 부를 함께 했던 은아 녀석.

하하... 무자게 반가웠다. 정말 무자게 반가웠다.

3학년 말에 진로에 대해 무진장 고민하다가 영어를 택해서 갔던 녀석이

동시통역사 2년차가 되서 내 앞에 나타났는데..

뭐.. 난 도와준게 없지만 내자식 훌륭하게 키워낸 부모 맘처럼 뿌뜻함이 밀려왔다.

토론회 내내 녀석이 종종하는 통역을 들으며 웃음도 많이나고 생각도 많이 났다.. 


 녀석 모르게 한장을 몰래~

 

근데 친구 말이 더 웃기다.

이 친구가 전에 미국이 이라크 침공했을 때 MBC던가 KBS던가 미국방송 동시통역을 했었다. 동기녀석 하나가 듣고 쫘악 소문 냈던 거다. "어라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린데.."라고 보니 바로 은아녀석이였던 거쥐. 

그래서 '너 그것도 했었다며' 아는 척을 했더니 짜식이 한마디 한다. 

기분이 찝찝했다고 전쟁나서 난리나는 마당에 전쟁에 기생해서 돈벌어 먹는 작자들이 많고 자기도 기생해서 돈 버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웠다나..

오늘도 뭐 별로 다른 자리는 아니였지만..

짜식 말투며, 하는 투며 별로 달라진게 없다..

물로 녀석도 나한테 '너 여전히 그렇게 사는구나'라며 반색을 했지만..

 

과집행부를 같이 했던 한 녀석이 내년에는 결혼을 해서 유학아닌 유학을 간다. 더 많이 멀리 헤어지기 전에 한번 모아서 안부라도 건네야 겠다. 워낙 학생회가 붕괴상태로 마무리 됐기 때문에 모으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 올 겨울에는 흩어진 사람들을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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