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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하나 감당이 안된다.

2주전 쯤에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냈다. 이미 1월부터 휴직을 해오던 터라 뭐 크게 새로운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4년 가까이 시간을 보냈던 곳이라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가장 오래 다닌 직장이 되는 셈이다. 아직은 무엇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다. 지난 4년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라고 대충 둘러대고 다닌다. 정리할 무엇이 있는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4년의 시간이 흘러 내게 남겨진 것 중에 눈에 보이는 것은 기다란 참고자료 목록 뿐이었다. 출력했던 것들은 다 버리고 자료의 목록만 적어서 나왔다. 그걸 분류하고 인터넷에 있는 자료는 URL 찾아서 파이어폭스 브라우저의 조테로(zotero)라는 부가기능을 설치해서 거기에 데이타베이스하고 있다. 앗 제목과는 너무 다른 서설이 길어졌다. 역시 난 산만하다. ㅎㅎ

사직하기 바로 전에 전남 고흥하고 경남 남해에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전남 고흥에 있는 팔영산에 올랐었는데, 그 산은 8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각각이 경사가 심한 바위덩어리다. 그걸 기어올라가보니 왠지 성취감도 느껴지고 아찔한 느낌도 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당장 꼭 하고 싶은 것이 없던 차에 암벽 등반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확 질러버렸다. 자전거로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클라이밍센터에 가입을 했다. 한달에 7만원. 적지 않은 돈이지만 더 나이들면 내 귀차니즘이 다시는 이런 것 시작해볼 생각도 못하게 할 것 같았다. 눈 딱 감고 가입했다.

지난 주에는 딱 두 번 가고 감기몸살로 완전히 뻗어버렸다. 점심시간을 전후에서 가보니 사람도 없고 한산해서 좋은데, 아는 것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 것이 좀 난감했다. 그래도 단 두 번 갔다오고 나니 자꾸만 가고 싶었다.


감기몸살로 헤매면서 집에 있는 하나TV에서 스포츠클라이밍 강좌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고 싶은 심정을 달랬다.

오늘은 바로 월요일, 감기도 대충 정리가 돼가고 아침부터 센터 문여는 시간만 기다렸다. 결국은 점심 챙겨먹고 오랜만에 타려고 꺼낸 자전거, 수리점 가져가서 정비도 좀 하고 하다보니 오후 2시반이나 되어서 센터에 갈 수 있었다.

센터의 선생님이 칫솔과 골프채를 이어붙이 상당히 재미난 막대기로 찍어주는 홀드를 차례 차례 건너가며 오르는 것을 오늘 처음으로 해봤다. 음... 몇 번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손끝은 아파오고 발끝도 아파오고 팔은 덜덜 거린다. 마지막 홀드에 손이 미치지는 않고 미칠 지경이다. 힘은 점점 빠져가는데 다시 처음부터 매달리려고 하면 이놈의 몸땡이가 미워진다. 아니 무섭다. 아니 도대체 이놈의 살들이 언제 이렇게 내몸에 있었는지, 내몸인데 내손과 팔을 아프게하고 이놈의 돌덩이 몇개를 잡는 것이 겁나게 만드는 건지...

살이 아니라 왠수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살도 내 몸의 일부이긴 한데 이렇게 나를 괴롭게 한다니, 정말로 이런 느낌이 들지는 정말 몰랐다. 오후 2-3시경에는 초등학생 몇명도 와서 훈련을 한다. 나는 홀드 7개도 잘 이어서 잡지를 못하는데 이 학생들 장난 아니다. 20개쯤도 하고 또 한다.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얌전히 선배 초등학생님들 먼저 하시고 쉬실 때까지 기다렸다 안되는 것을 다시 시도해본다.

스포츠클라이밍 정말 재미있다. 아직은 며칠 안됐지만 재수하던 시절 당구 처음 배웠을 때만큼 머리 속에서 그 동작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제대로 지른 것 같아 흐뭇하다. 단지 내살을 내가 미워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사전에 못한 것은 큰 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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