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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함은 느림에서 온다. 느림은 관조에서 온다. 관조란 곧 감상이다. 그리하여 생활감상문.'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07/21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18)
  2. 2009/06/30  햇감자 스프
  3. 2009/06/29  장마철 개시 (5)
  4. 2009/06/15  축축한 유월 밤 (2)
  5. 2009/06/05  봄과 여름 사이의 한때 (4)
  6. 2009/06/01  ▦▦ 잘 가요, 노무현
  7. 2009/05/24  ▦▦ 그는 죽었고, 나는 살겠다고 내 손으로 피를...
  8. 2009/05/13  농땡이 모드로 쓰는 아침 일기 (6)
  9. 2009/05/12  근황: 벽지 바꾼 기념 포스팅 (8)
  10. 2009/04/25  일주일 새 세번째 새벽 3시 (8)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2009/07/21 23:53 생활감상문

 Henri Toulouse-Lautrec, The Two Girlfriends, 1894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 말을 들은 것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한 입 베어 물은 순간이었다. 하루 종일 졸던 눈이 번쩍, 귀는 쫑긋(지난 주부터 정례화한 아침 운동이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 몸은 개운하지만 자꾸 졸리다. 오늘도 아침 10시부터 졸음이 와서, 본격 머리 쓰는 일은 못하고... 겨우 제안서 하나 쓰고, 오후엔 익숙치도 않은 인디자인으로 새 원고 조판하느라 머리 쥐어 짜다가... 헐레벌떡 정쿤과 함께 LJW선생님&KYB선생님 인터뷰 갔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옆에서 졸다가 깨다가 눈이 어찌나 감기는지... 사무실로 돌아와 업무 정리하면서도 퇴근하고 불어학원을 갈까 그냥 집에 가서 바로 잘까 고민하느라 10분이나 늦게 나왔다). 오오, 이 무슨 신선한 대사란 말인가. 한숨 졸면서 타고 가려던 604번 버스(회현역까지 직통)가 오질 않아 603번 타고 서소문에서 내려 북창동~소공동 가로질러 알리앙스 프랑세즈로 걸어가는 길에... 졸리다고 저녁도 안 먹고 퇴근(보식 시간인지라 회사 냉장고에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들인 포장죽을 쟁여 놓고, 전자렌지로 데워 먹고 있다)한지라 간단히 요기라도 해야겠다 싶어 간만에 웨스턴조선호텔 앞 패밀리마트에 들른 참이었다. 참치마요네즈 삼각김밥 하나, 삼다수 한 통. '이런 식의 때우기용 식사는 하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배 고파서 수업에 집중 못하면 안 되니까... 생각하며 한 입 베어 물어... 보식 기간이니까 50번 씹어야지 하고 있는데... 들려온 그 한마디. 옆자리에서 큰사발 먹던 두 여인의 대화다. 어어~ 이것이... 뭐랄까... "나 연애 시작했어"도 아니고 "작업 대상이 생겼어" 혹은 "사귀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혹은 "나 꽂히는 남자 있어"도 아니고... 순수한 자기 발견 혹은 자기 긍정이랄까, 참 순수하게 들리는 것이... 이렇게 내밀한 고백을 엿듣게 되다뉫... 신선한 걸?

'어떤 사람이지? 어떻게 만났지? 아아... 수업 시작할 때 다 되었는데...' 혼자 애를 태우며 귀를 쫑긋하며서 대화를 들어보니.... 그의 이름은 재범. 알고 보니... 고백을 들어주는 친구 쪽도 알고 있는 남자. 오히려 고백한 여인은 그의 생김새와 이름밖에 모른다. '아아, 뭐지? 같은 거래처? 아니, 젊은 아가씨들인데... 같은 학원? 같은 교회?' 혼자 추리에 들어간 순간... "너 2PM 멤버인 줄 몰랐어?" "응, <10점 만점에 10점>만 들어봤지, 멤버가 누군지는 잘 몰랐어. 근데 어제 TV 보다가 처음 봤는데 완전 가슴 설레더라..."

웅... 내 김이 샐 건 없지만(덕분에 반만 먹으려던 삼각김밥만 다 먹었다. 30번씩만 씹고),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얘기였으면 훨 더 재미있었을걸. 모르는 사람의 연애담 듣기... 가끔은 재미있는데 말이야. 어쩐지... 편의점에서 라면 먹다가 묻지도 않았는데 친구한테 누구 생겼다는 얘길 하는 게 쫌 bizard하긴 하지. 나도 2PM이 일곱 명이라는 거 말고는 모르니까 나도 나중에 반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라고 말할 거 같지는 않아 쫌 속은 기분이 들더라구. 덕분에 잠 깨서 수업을 잘 들었지만 말이얌.

 

 

익명의 16세기 독일 음악가, Dantz Megdelein Dantz(Dance, Girl, Dance)

<암머바흐 하프시코드 작품집>, 연주 글렌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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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1 23:53 2009/07/21 23:53

햇감자 스프

2009/06/30 10:57 생활감상문

어젯밤엔 원래 회사 블로그에 게재할 알바 체험기를 쓸 예정이었다. 책 마감하느라 바빠서 못 썼지만, 몇 주나 구상을 해두었기 때문에 30분이면 다 쓸 줄 알았다. 이건 뭐 거의 일기처럼 쓰면 되지...하고. 그런데 3주간 이탈리아로 연수 갔다가 남자친구네 식구들이 사는 암스테르담까지 찍고 돌아온 Y양과 퇴근 후에 차 한 잔 하면서 여행 이야기 듣다 보니 훌렁 한 시간이 지나갔다. 집에 돌아와 평소보다 늦은 저녁(이라 해봐야 역시 야채와 고구마)을 먹으면서, 낮에 생협에서 도착한 야채들을 냉장고에 넣다 보니 자리가 모자랐다.

회사에서 앞자리에 앉은 J팀장이 요새 주말농장에서 야채를 키우는데(아이가 두 돌 지나니까 뒤늦게 면허를 따서, 새로운 가정교육 프로그램 실행중^ ^) 감자를 캤다며 낮에 한 봉지를 건네 주더라구. 조금 일찍 수확한 것이라 알이 좀 잘다. 쪄 먹기보단 알감자조림 하면 맛있을 사이즈인데... 내가 무언가 간장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려면 앞으로도 한 달은 있어야 하니 그때까지 신선도 보장 못할 터.... 바로 요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큰 건 골라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잔챙이들만 골라 햇감자 스프를 끓였다. 땀 뻘뻘 흘리며, 스프 끓이고, 일주일 동안 하루 세끼 먹었더니 이제는 먹기가 싫어진 오이는 피클 담그며 또 하룻저녁이 훌렁... 알바 체험기는 5줄 쓰다가 졸려서 일찍 취침.

창문 반쯤 닫아 놓는 거 잊어버리고 잤더니 새벽에 추워서 깼다가 창 닫고 다시 잤다가 늦잠에 지각까징.T T 그래도 감자스프는 인기가 좋았다. 역시 요리는 재료가 7할.^ ^

 

재료

  • 잔챙이 감자 10개(큰 감자면 3개쯤?)
  • 양파 1개
  • 대파 뿌리 부분(흰색 부분만) 1대분
  • 올리브유 3큰술
  • 구은 소금 약간
  • 후추 약간
  • 물 2~3컵
  • 우유 1컵

(취향에 따라, 월계수입, 정향, 파슬리가루, 치즈, 생크림 등을 넣을 수 있다)

 

요리법

  1. 양파와 대파는 굵게 채썬다. 감자는 굵직하니 채썰어 찬물에 담근다(감자 표면의 전분을 제거해야 볶을 때 안 탄다).
  2. 우묵한 냄비를 달궈 올리브유를 두르고, 기름이 충분이 뜨거워지면 채썬 양파와 대파를 넣어 볶는다. 이때 소금을 1/2작은술 정도 넣어 밑간을 한다.
  3. 양파가 반쯤 익으면 찬물에 담궜던 감자를 체에 건져서 물기 털어내고 함께 볶는다. 감자는 표면만 약간 익을 정도로 볶으면 된다(양파와 대파가 충분히 익어야 단맛이 깊어진다).
  4. 양파와 감자에 물을 붇는다. 물은 양파와 감자가 잠길 정도면 된다. 센불이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약-약불로 줄여서 30분 이상 익힌다(양파와 감자를 굵게 채썬 이유는 굵게 썰어 한참 끓여야 야채 본연의 깊은 맛이 충분히 우러날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이러면 굳이 고기육수를 쓰지 않아도 된다. 허브는 이때 넣으면 된다).
  5. 감자에 숟가락만 대봐도 뭉그러질 정도로 푹 익으면 불을 끄고, 한김 식힌다.
  6. 식은 양파-대파-감자-국물을 믹서에 넣고 우유를 넣고 간다(취향에 따라 우유를 가감해 농도를 맞추면 된다. 월계수잎을 넣었다면 이때 빼고 간다).
  7. 소금, 후추로 간해서 바로 먹어도 되고, 냉장고에 넣었다가 차갑게 혹은 따뜻하게 먹으면 된다. 냠냠~

 

* 부드러운 걸 좋아하는 잡식자라면, 생크림을 넣어 데워 먹어도 좋고, 짭짤한 맛을 선호한다면 데운 후에 치즈를 올려 녹여 먹어도 된다.

** 브로콜리 삶아 놓은 게 있으면 같이 갈면 브로콜리 감자 스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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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30 10:57 2009/06/30 10:57

장마철 개시

2009/06/29 08:47 생활감상문

Between the Rains, 출처 http://www.rosi-photo.com

 

아직 겨울 코트도 정리해 넣질 않았는데 여름 장마다. 연간으로 시행하는 보름짜리 야채요법1 일주일째. 기운 없고 어질어질하던 것은 덜하다만 계절 바뀌는 기분에 좀 심란하기도.

별다른 일 하나도 없고, 바쁜 가운데 착실히 일도 하고 있고, 누구 나 괴롭하는 사람도 없고, 결정적 순간 같은 건 기다리지도 않은 가운데...... 느는 건 TV 시청시간뿐이고, 누구한테 전화를 하지도 않고, 누가 전화를 하지도 않고, 가방엔 책이 한 권 들어 있고, 운동도 하지 않고, 왜 갑자기 한 달째나 이렇게 철저한 일상 모드인 건지 나도 어리둥절. 뭐 들끓는 게 없을 때 야채요법을 하면 좋겠다 싶어 몇 달간 생각만 하고 미루던 것을 지난 주 불현듯 시작했더니...... 더 기운은 없어졌다만, 몸은 가볍고, 불면증은 없어졌다. 여름엔 이런 게 건전하지.

비가 오는데, 술을 마시러 갈 수도 없으니... 장마철맞이 집안 대청소를 해야겠다. 곰팡이들 쓸어내면서...... 어디까지인지, 좀더 들어가 보자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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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름간 삶은 감자나 고구마, 단호박 등을 주식으로 하고, 부식은 소금간 안 된 각종 야채로 하루 세 끼를 먹는 것. 단식은 아니지만 장청소에 꽤 효과가 있다. 단기간에 불과하지만 얼굴도 핼쓱해지고, 피부도 고와진다. 이것도 끝나면 보름 이상 보식을 해야 한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009/06/29 08:47 2009/06/2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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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한 유월 밤

2009/06/15 00:21 생활감상문

유월 첫주엔.... 그냥 가만히만 있는 주말이 너무 절실했다. 자체 입원 모드를 바랄 만큼 아프거나 피곤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머리를 쉬게 하고 싶었다. 쫓기며 일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난 것도 아닌데... 그냥 마감으로 시작해 어버이날/스승의 날 지내고, 중간중간 사람 만나고 국상 분위기의 한 주간까지 겪으니 너무 많은 일들에 접속한 기분이었다. 그냥 가만가만히 있는, 리셋하는 이틀이 필요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지난 주 일요일 밤에 생각하니... 무슨 무기력증이 온 거 같더라. 그러고 월요일을 맞으려니 기분이 또 갑자기 초조해졌다. 출근하자마자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느라 밤잠을 설치고, 시커멓게 부은 얼굴로 출근했는데, 오백 년 만에 싸이 방명록으로 후배 Yeon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월/화/수 시내에서 연수가 있어, 간만에 칼퇴근을 할 수 있으니 저녁을 먹자고. 화욜은 사내 강의로 MSG샘의 지젝 강의가 있고, 수욜은 불어 수업. 시간은 당일인 월요일밖에 없다. 재작년에 함께 일본 여행 다녀왔다가 가을에 Yeon의 동기인 Soo 결혼할 때 만나고 처음 보는 거라... 제법 수다거리는 많았다. 늘 그렇듯 주로 내가 떠들었지만.

마침 그 전 주일에 T/V 선배인 HJ옹이 뭐 부탁할 거 있다면서 전화하고, 당일에는 權's와 통화한 터라 선배들 흉까지 사알짝~. 후배들 소식도 뒤늦게 입수. 한 학번 아래인 Yeon의 동기들도 유날리 결혼들을 열심히 한 터라... 이제 날만 잡으면 되는 쭌~을 제외하면 Yeon만 솔로[아, 그러고 보면 내 동기들도 결혼들 열심히 했는데... 그나마 우린 나까지 두 명인가 세 명 남았던가? 1월에 L군이 결혼했음에도 결혼에 대한 나의 지지부진한 생각은 별로 변화가 없으니].

적성에 안 맞는 은행에 어쩌다 들어가 초반에는 덤벙대는 성격 때문에 고생하고, 웬만큼 자리를 잡은 지금에는, 그 놈의 책임감 강한 성격 탓에 야근 너무 당연시하고(이게 우리 T/V 출신들의 문제이긴 하지) 그러면서.... 몇 년을 만나도 생활의 변화 없이, 그렇다고 돈 버는 재미가 있다거나 은행 때려치고 뭐 하고 싶은 것도 없이, 결혼에 대한 의식도 없이, 나이만 먹고 있는 Yeon이다. 바로 전날까지도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주제에... 또 선배랍시고, 변화를 추구하라고... 회사에서 적성에 맞는 부서로 바꿔 보던지... 이래저래 꼬여 못 쓴 논문... 경력에 도움 될 만한 주제로 바꾸어서... 새로 써서, 인사고과라도 높이던지... 어줍잖은 충고를 한다. 이렇게 무기력 혹은 귀차니즘에 빠진 직장인들이랑 얘기하고 있을 땐... 그래도 내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고, 남들에게 도움도 되고, 어쨌든 생계도 해결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는 건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아, 그러면 열심히 해야 하는데.

가끔은 남들에게 호기심 덩어리, 열정 덩어리라는 얘기도 듣는다(실력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늘 무언가를 배우면서 일할 수 있다는 보람도 크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뭔가를 못 넘어서는 게 있다. 수영도 동작은 다 배웠지만 결국 혼자 하질 못하고, 자전거도 탈 줄 알지만 운동장에서만 맴돌며, 등산도, 인라인도, 요가도, 재즈댄스도 마찬가지. 일도 어떤 면에서 분명 소질이 있다는 소리를 듣는데, 실수가 잦다. 사람도 많이 좋아하지만, 매달리질 못한다. 무엇에도 강박을 갖지 않는 게 내 유일한 강박이란 우스개를 대학 다닐 때 한 적이 있는데, 여전히 그런 거 같다. 아마추어로 살면 안 될까 하는. 팔 만한 능력을 상품으로 갖는다는 게... 지금까지는 꽤 성공적이었는데, 참 갈수록 힘들다. 화요일 지젝 강의에서 히스테리 환자에 대한 내용이 있었는데...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었다. 완벽하지 않은 부모의 오류를 덮지도 않고, 부모를 떠나지도 않고 사는 히스테리증은 그럼 어떻게 되냐고. 워워~ 선생님은 지젝 연구자이지, 임상 상담가가 아니라고...- -;;

수욜에 프리랜서로 함께 일하는 북디자이너 O실장님을 만나서... 일 얘기 후에 잠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쨌든 목표는 10년차 편집자 되기. 하지만 독하게는 안 살기가 목표라니깐...... 일에 지면 안 된단다. 이만큼만 하면 되지...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때부터 일이 재미 없어진다는 충고(그 냥반도 이 바닥에서 20년. 보통 선수는 아닌 것이다)

후닥닥 불어 수업 듣고, 나와 퇴근 전에 마무리 안 되었던 일이 어찌 되었나 전화를 해본다. 일단 다시 회사에 들어가진 않아도 되는 상황. 우물쭈물하다 찜찜할 것 같아 시청에 갔다. 그날은 6.10이었던 것이다. 낮에 신간 편집 후기에... 거부의 말을 되찾자. 기막히다고 입도 다물고 살진 말자... 이렇게 썼는데 곧장 귀가하긴 그랬다. 6.10을 의식해서 챙긴 적도 없건만. 그냥 5.29 영결식 이후에 광장에서 모일 수 있을까 없을까가 나한텐 더 중요했다. 전날 밤에 시청광장을 지키니 어쩌니...해서... 이미 광장 뺏기고 상황 종료된 거 아닌가 했더니 9시쯤 도착한 광장은 초만원. H양은 낮부터 사전행사 다니다가 막 귀가하는 길. M선배는 학교 행사 있어서 못 왔다고 상황 어떠냐고 전화만. 나중에야 통화된 M군은 다른 일로 다망하시어 오지도 못하고, 문자에 답도 안 하고. 10시 반에 문화제 막 끝났을 때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평일이고,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니까. 사람도 많고, 이거 뭐 너무 분위기 널널한 거 아냐? 한 것은 완전히 나의 착각. 시청에서 광화문 걸어가는 사이에, 2중 3중으로 쫘악 깔린 전경들.... 뭐야 완전히 차벽 안에서 집회한 꼴이잖아? 평화롭게 끝나지는 않겠구나...라는 느낌이 들면서 꼭 먼저 도망가는 기분이 들더군.

기분이 나쁜 것도 기운이 없는 것도 아닌데, 다만 할 말이 없는 상태. 혹은 욕망이 없는 상태. 결핍은 많은데...... 이것저것 모두 우물쭈물하는 상태랄까. 금욜에 엠티 가서도 평소처럼 나서서 요리하고, 재미있게 놀면서도 피곤하고. 술은 맛이 없고. 그래서 일찍 잤다. 그 와중에 집이랑 잠깐 통화. 몇 달 잠잠하시더니, 아버지는 선을 보라 하셨다. 작년 여름부터 선은 안 보고 있는지라... 그냥 안 본다고 했다. 올해로 두번째 거절이던가, 세번째 거절이던가... 아버지도 더는 채근 안 하신다. 뭐지?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보고 싶은 건 아니기도 하고. 혼자 헛웃음. 갈 때도 올 때도, 운전하는 동료들 심심하게 할 말도 없고, 잠은 오는데 잠이 들지는 않고.... 내가 이렇게 말이 없을 수도 있구나 싶어 스스로 낯설었다.

엠티 끝무렵에 양평장이 장날이길래... 장터 구경을 했는데,  갓 농장에서 따온 느타리버섯이랑 빨갛게 무친 무말랭이 한 근을 샀다. 느타리버섯은 양파랑 볶아 주고, 주중에 만든 멸치볶음이랑 김치까지 곁들이니 주말 밥상이 깔끔하니 맛나다. 제철인 오디 한 그릇 사다 잼도 한 병 만들었다. 빨래 세 판 하고, 이탈리아 여행 간 Y양 대신 화분에 물 주고, 그 화분에 자란 로메인이랑 토마토 따먹고, 낮잠자고, 라면 끓여 먹고, TV 보고, 겨우 겨우 집청소를 했다. 10시 반에 H군이 저녁을 못 먹었다고, 집에 밥 없냐고 문자가 왔는데, 딴 때 같으면 어림도 없을 일이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전화를 걸었더니... 생각해 보니 너무 늦어서 그냥 삼각김밥 사서 집에 들어가겠단다. 담주에 마감이라... 이렇게 늘어질 때가 아닌데..... 갑갑하니까 안온한가 싶기도 하고, 뭔가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게 아닐까?

다들 느끼겠지만, 참 안온하기가 힘든 때여서... 자꾸 주저 앉고 싶은가 보다. 새벽에 소나기가 온단다. 빨래 걷으러 마당에 나가니 흐린 저녁 공기가 축축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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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5 00:21 2009/06/15 00:21

봄과 여름 사이의 한때

2009/06/05 00:02 생활감상문

레슬리 파이스트, 머셔붐, 2004

 

지난 주 중반부터 두통 때문에 잠을 못 자다가 일요일 밤엔 두세 시간이나 눈을 붙였나? 월요일에 헤롱헤롱하다가... 월요일 밤엔 그나마 깊은 잠을 잤다. 봄과 여름 사이 이불 두께를 조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다음주에 드디어 데란다 책(들뢰즈의 자연과학적 재구성)이 끝나는데, 지난 주에 생각 많아 잠 못 잔 만큼 컨디션 관리에도 고민이 많았는데, 어제오늘... 저녁 시간에 좀 여유를 가질 일들(그래 봐야 30분?)이 있어서 그런지 잠을 잘 잤다. 시간적으로는 하루 다섯 시간 자기는 매한가진데, 한결 몸도, 마음도 가볍다. 심지어 오늘은 9시부터 졸리더군(버뜨 너무 일찍 자면 새벽에 깨기 때문에 3시간을 버텼더니 그만 두통이...... 그래도 자야지). 

어제 디자인팀 L팀장님이 아프셔서 이틀째 결근을 하시어... 점심시간에 S과장님과 함께 죽 사들고 문병을 갔다. 어디가 아프신지, 어떻게 아프신지, 식사는 했는지, 아픈 원인이 뭔지 이런저런 얘기 끝에... 단기적으론 마감 후유증, 중기적으론 이직 6개월차 적응으로 인한 체력/정신력 저하증이라는 야매 진단을 내려 드렸다. L팀장님 최근 변화에 대한 내적/외적 요구에... 변하고도 싶고, 지금까지 잘살았는데 변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고민이 많으시다(이직을 했든 안 했든 누군 안 그러겠냐만). 머리가 변하라는 것도 무조건 일을 잘하라는 것도, 부족한 능력을 야근으로 때우라는 것도 아니다. 작년 한 해 메신저 대화명을 "신체의 능력"이라 해두었다(요새는 다른 거다). 변화를 담지할 신체를 갖고 버티는 게 장땡이란 말이다(전부 나 자신에게 하는 얘기다)고, 나는 백지연처럼 나를 경영하는 건 못하지만, 나의 몸은 경영한다고... 뭐 그런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만큼 내가 부실해서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말이다. 태어나기를 약골로 태어나 과민성 대장 증후군과 남달리 밝은 잠귀, 입에 안 맞는 걸 먹느니 굶겠다는 주의지만 배고픔은 못 참는 자기 모순, 제 성질을 못 이기면 속병이 나는 성격까지 어쩜 다 그리 집안 내력 그대로인지... 뭐 여하간, 그래서 이 인구 밀도 높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남달리 노동 강도 높은 직업을 선택한 사람은 나니까, 방법은 하나다.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거다. 물론 나도 놀고먹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만(꼭 그 시절이 다 지나서가 아니라, 시절은 언제든 올 수도 있다. 공간과 배치만 적절하다면. 노는 것도 체력이긴 하지만) 돈을 벌려고만 하는 일이 아닐진데, 하는 일을 잘하는 게 내 삶 자체가 충실한 거 아닌가? 여기보다 어딘가에...에 대한 생각은 가끔씩만 하기로 했으니까.

여하간 어제 죽 안 좋아하신다는 데 억지로 식사하시게 해서 한의원 모셔다 드리고 사무실로 돌아와 교정을 보는데, <차이와 반복>을 인용해 지식과 배움의 차이를 설명해 놓은 부분이 눈이 들어온다. "배움이란 누군가가 문제의 객관성에 직면할 때 수행되는 주관적인 행위에 대한 적절한 명칭이다. (......) 이에 반해 지식은 개념들의 일반성 혹은 해들을 가능하게 하는 규칙의 조용한 소유만을 가리킨다." 이직과 적응과 자기-됨 등에 대한 이야기들, 그러니까 L팀장님께 잘난 척 늘어놓은 장광설은 모두 내가 나한테 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어제는 오랫만에 파이스트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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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5 00:02 2009/06/05 00:02

▦▦ 잘 가요, 노무현

2009/06/01 00:13 생활감상문

2009년 5월 29일, 오후 1시 10분

노무현의 영결식 뒤에 이어진 노제 행렬 가운데에서.

 

노무현의 장례 행사에 다녀왔다. 사실 누군가 이번 주의 노무현 현상을 파시즘 운운할 때 성질이 좀 났다.  애도하고 싶은 사람들이 마음껏 애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렇게 남은 한이 없게 해야 차분해진 다음에 죽은 사람 때문에 수면에 가라앉을 이슈도 챙길 수 있는데.... 너무들 조급해하고, 화를 내고, 심지어 "저 세상에 가서는 미안해하라"고? 이래서 좌와 우는 통한단 소리가 나오는 거다.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일 뿐 아니라 산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주는 일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 이런 우아한 말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는 그에 대한 평가든, 이후에 대한 구상이든 말을 아낄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래 봐야 몇 달도 아니고 불과 일주일인데. 상황의 전개를 조심스레 지켜보면서 근심할 수도 있었건만. [그런 가운데 장례란 엄숙히 치뤄져야 한다는 구식 생각을 고집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기는 했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생각이란 걸 할 만한 시간이라는 것. 예(禮)란 마음에 격을 갖추어 표현하는 것이니까.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나와 상대와 우리의 관계를 보호하는 껍질 같은 것이라고.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이 일을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동안 이래저래 떠드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에 대해서보다, 그 사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나 내 감정을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소통이란 미묘한 것이라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것인데. 그런 예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성질이 난 것조차 내 마음일 뿐이므로, 아무에게도 별 소리 안 하고 일주일을 보냈다. 다만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노무현을 좋아하고, 미안해할 일이 있었던가 놀라울 뿐이었다. 일요일에 덕수궁 분향소에 다녀온 이후 나도 일하기에 바빴고, 몸도 좀 아팠다(아마 그것이 내 나름의 충격표현법이었을 수도). 유년 시절 놀이친구와 다름 없이 허물없던 막내 삼촌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을 때도, 부모님과 함께 우리 자매를 키워 주신 큰이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치매와 노환 끝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우는 법을 몰랐던 내가 어떤 정치가가 비극적으로 죽었다고 울 리도 없었다. 기사들을 찾아 읽고, 블로그들을 돌아다니고, 필자들(주로 철학자들)과 통화할 때 "시국이 흉흉하여~" 정도의 인사를 건넸을 뿐이다. 상당히 쿨하고 이성적인 양반들인데도 큰 충격을 감추지 못했고, 중대한 상황국면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위로하면서 원고 일정을 추스리고, 미팅 일정을 잡고 할 일들을 해나갔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장례에 참석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에 광장이 다시 열릴 수 있을까? 나도 물론 근심했고 궁금했다. 광장과 함께 우리가 말을 열 수 있을까? 아니, 말과 함께 광장을 열 수 있을까? 극단적인 거부의 형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숨죽여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어떤 분위기일까? 영결식을 서울에서 하기로 했다고 발표가 난 이후로 신경이 조금씩 더 쓰였다. 난 노무현을 사랑한 적도 없고, 미안할 것도 없다. 그를 신뢰한 적도 없고, 실망한 적은 여러 번이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욕한 적도 별로 없다. 그래도 장례식은 가고 싶었다. 이런 게 촛불 중독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뭐랄까, 역사적 순간.... 그렇게 부르기는 닭살스러워도(내가 무슨 자식이 있어 훗날의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은 역사 의식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 적어도 내 삶에서 유일무이한 순간이고, 그냥 흘려보내는 건 꽤 오랫동안 찜찜한 기분이 들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보기엔, 자기 감정이 뭔지 너무들 오래 생각하고, 분향소 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이상했다. 가고 싶은지 아닌지, 그건 그 순간의 어떤 맥락에 의해 평가하고, 논리적으로 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살아온 역사 위에서 갈지, 말지 몸으로 즉각 알 수 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나?]

 

하지만 일이 너무 많았다(그 더위에 아스팔트에서 몇 시간 보낸 댓가로 파김치가 된 여파가 이틀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서... 직장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데미지가 꽤 크다). 2월에 엄마 수술 때문에 연차를 써서, 딱히 뽑아 쓸 연차도 없고 해서... 휴가를 내려면 낼 수도 있었지만, 그 시간에 담담하게 일을 하고, 주말에 어찌 되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나를 설득했다.

그러다 갑자기 가게 된 건, 목요일 밤에 걸려온 오클라샘의 전화. 선생님이 먼저 나에게 전화를 하시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밤중의 전화는 정말 뜻밖이었다. "너 혹시 내일 영결식 갈 거니? 나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 만한 사람이 없어서... 너라면 갈 거 같아서 전화를 해봤다." "아아~ 선생님, 저도 가고 싶습니다만, 일이 많아서..." 선생님은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새벽부터라도 가시겠다고 했다. "M선배가 갈지도 모르는데.... 음... 제가 물어봐 드릴까요?" "그, 그럴래?" 선생님은 내년이 환갑이시다. M선배는 이제 40대 중반. 나름 정이 있는 사제지간이긴 하지만 이런 데를 같이 간 적은 없는 상당히 뻘쭘할 조합. M선배 늘 그렇듯 한 번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 혹시나 전화해 본 H언니는 닷새 동안 너무 울어서, 장례식 가면 더 울까 봐 못 가겠단다. 아아... 어쩐다. 사람은 많을 테고, 날은 덥고, 선생님 혼자 가시게 하긴 걱정되고, 난 또 이런 식으로 '갈 것 같은 사람'으로 생각되었다는 데서 아, 이것도 내가 살아온 데 대한 평가인가 하는 생각에... 결국 주간님께 전화를 걸어 출근했다 점심에 다녀오는 것으로 외출 허락을 받았다.

당일 아침 1시간 일찍 출근해서 오후에 예전된 회의 문건 만들고, 급하게 처리할 일 놓친 거 없나 확인하고, 진쿤에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해놓을 일 체크하고, 10시 갓 넘어 서둘러 사무실에서 나와 약속장소인 광화문으로 향했다. 시청역에서 약속장소인 광화문사거리까지 걸어가는 좁은 길엔 경찰과 사람들로 넘쳐 10분 거리를 걸어가는 데 30분이 걸렸다.

 

막 영결식이 시작되던 참이었다. 선생님과 아침 무렵에 마음을 바꿔 나온 H언니와 나무그늘 밑 사람들 사이에 털퍼덕 주저 앉아 동아일보 전광판으로 영결식 장면을 지켜봤다.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학생들, 유모차 끌고 온 새댁, 구성은 분명 다양했다. 문제의 이명박 움찔 장면에선 거리에서도 사람들의 야유가 폭발적이어서, 나조차도 움찔했다. 귀를 막아야 할 정도로. 여기까지 나올 사람들 정도면 벌써 많이도 울었을 텐데...... 한명숙의 조사 때 또 한참을 울더라. (사람들 우는 데 혼자 안 우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딱히 뻘줌할 것도 없었다.)

 

선생님이 시청이 아니라 광화문에 자리를 잡으신 건, 운구 행렬을 바로 뒤따르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영결식이 끝나고 행렬이 광화문 사거리까지 천천히 나오는 데 15분 이상 걸렸다. 미리 노란 종이비행기를 접어 놓은 사람들은 운구차가 지나는 순간 정확하게 던지려고 조바심을 냈다. 드디어 나타난 망자의 사진과 영구차.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말하듯이,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그렇게들 소리를 쳤다. 이런 경우 이 사람들에게 망자는 죽은 자요, 아직 죽지 않은 자이다. 죽었다는 팩트와 이 사람과 자신이 맺고 있던 관계라는 팩트가 병렬해서 작동한다.

 

노제 행렬 속에서 뒤늦게 M선배가 합류하고, 스승과 제자 네 사람이 정말 살면서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조우한 느낌. 만나자 마자 M선배는 화를 낸다. 전에는 불만이었는데, 이제는 원한을 샀으니 이 죄를 어떻게 할 거냐고. 이 많은 사람들의 원한을. 악마라고 불러도 된다고 이젠. 노제가 시작되고, 노란 풍선이 날리고, 울고,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를 몇 번씩 반복되고, 워낙 기질이 뜨거운 H언니는 그렇다 치고, 냉정하기로 소문난 오클라샘과 M선배마저 운다. 이 많은 사람이 이렇게들 모여, 이렇게나 슬퍼할 만 한 이유.... 정말 노무현이 가지고 있었나? 뒤늦게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한편으론 난 "국민의 이름으로 노무현 대통령님을 보내드리려" 오지 않았어요 하는 반항심과 함께. 월드컵 기간에 굳이 파란색 티셔츠를 찾아 입었던 것처럼, 나는 그냥 나라는 개인으로서,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장례식에 오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장례식에서 무슨 구호 외치듯이, 모두가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를 외쳐야 할까? 그보단 <상록수>나 <아침 이슬>을 따라 부르는 게 나았다. 노래 속의 인물들은 홀로 제 갈 길 가고 있으니까. 노무현은 노무현의 길을 간 것이고, 나 또한 내 갈 길을 가는 와중에 그의 장례식이라는 유일무이한 사건을 만났을 뿐이다. 그곳에 가는 것이 '그의 표현대로라면' 나의 운명이었다고 해야 할까?

 

애도는 좋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평화적으로, 제대로 말도 못할 거면, 뭐하러 서울까지 와서 장례를 치르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통령으로 죽지도, 민간인으로 죽지도 못한 그 어정쩡한 상태는 장례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뭐 하나 내 입맛에 맞는 게 없으니 나 역시 [그토록 피하려고 애썼지만] 입만 나불거리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기를 잘했다. 노무현 열풍이라는 파시즘적 현상에 대한 우려...에 대한 내 대답은 이렇다. TV나 인터넷으로 느껴지는 광대한 스펙터클이 파시즘을 만들 것을 걱정하느니, 차라리 나는 나 자신이 스펙터클의 일부가 되겠다. 스펙터클의 일부인 채 그 조성(composition)을 바꾸겠다. 그것이 내 입장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국민이라는 호명에 응하지 않은 채, 그 엄청난 인파의 감정에 휩쓸리지도 않은 채, 나와 죽은 사람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고, 그 현상을 눈으로 보고, 겪었다. 다녀오면서 확실히 생각이 더 많이 정리되었다.

 

23일 밤, 노무현이 죽었다고, 다시 한 번 촛불이 일어난다면, 그건 정말 웃기지 않냐고. 그렇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도 정말 견디기 힘들 것이라 했을 때, M언니는 대답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현실이고, 정치의식이라고.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 위에서 보자고. 그렇다. 어떤 당위로 재단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현실인지 알기 위해서도 일주일이란 시간은 필요했다.

 

블랑쇼가 말한 대로 정치가 통치가 아니라 소통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죽음을 가는 존재, 유일무이한 존재, 하나의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생명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노무현의 죽음에,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는 인식에, 나는 그 사람이 애도받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 가슴속에 노무현이 영원히 살아 있을 필요는 없다. 그가 저승에 가서 누군가에게 미안해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고, 자기 몫을 했고, 더 내놓을 패가 없을 때 승부를 접었다. 결국 각자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 운동을 하고, 정치를 한다. 나 역시 나의 현실 인식 위에서 앞으로의 내 정치를 배치해야 하는 것이다.

 

뭐 두서없지만, 그냥 쿨~하게... 말하면 안 되는 걸까? "잘 가요,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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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00:13 2009/06/01 00:13

▦▦ 그는 죽었고, 나는 살겠다고 내 손으로 피를...

2009/05/24 00:08 생활감상문

숙취에 시달리면서 자다깨다를 반복하던 와중에, 11시 반쯤 H군으로부터 전화로 소식을 들었다. 그 사람이 죽었다고. 놀란 마음에 술병으로 난 두통이 심해져 종일 토했다. 오후엔 속 가라앉힌다고 사 먹은 칡즙까지 토한 다음에... 제 손으로 바늘을 꺼내 열 손가락을 모두 땄다. 붉은 피인지 검은 피인지... 술병 날 때마다 이 짓하면서... 술 끊어야지 생각했지만... 오늘은 살겠다고 피를 보는데, 죽은 사람에 대한 뉴스를 반복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내가 더 웃겼다.

 

충격의 강도와 색깔은 장국영이나 최진실 죽었을 때랑 좀 비슷한 듯도 싶다. 얼마 전 장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땐 (다녔던 학교, 같은 단대 건물이라 복도에서 뵌 적이 있기는 할 텐데, 딱히 기억은 없다) 안타까움과 아까움을 느끼면서도, (30년 세월을 함께 보낸 동료교수를 잃으신 오클라 샘의 심경만 걱정했을 뿐) 문상을 가야 한다든지 슬프다든지  이런 건 없었다.

 

슬프다기보다는 "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왜 죽었어? 그러지 말지"라는 느낌이지만, 심란하고 착잡한 건 나도 남들과 같다. 머리는 계속 아프고, 생각이란 건 계속 할 수밖에 없지만... 일단 사람이 죽었을 땐 사람들이 말을 좀 아꼈으면 좋겠다. 서거가 아니라 자살이라고 적는 게 기자라고 생각하는 미친 노인네한테 열받기도 싫고, 누구 죽음이 누구 죽음보다 더 대단하다고... 이 죽음을 폄하하는 사람들에게도 짜증이 나고, 이런 일을 겪고도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혹은 한다면, 결국 이런 일을 통해서나 무언가 반전을 꾀하게 되려나... 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나의 그 주춤거림도 싫다.

 

사태의 원인이 무엇이고,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고... 그걸 오늘은 생각하질 못하겠다. 아니면 입 밖에, 혹은 손끝으로 내놓는 건 안 하겠다겠지만. 아침에 정신 차리면 덕수궁에 분향을 하러 가야겠다. 사람이 죽었는데... 거기 또 경찰들을 풀어놓은 인간들 때문에 열도 받고, 겁도 나지만... 어쨌든 다녀와야 할 것 같다. 근거와 상관없이, 그래야 할 것 같다. 생각이든, 말이든, 행동이든 그 다음에 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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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4 00:08 2009/05/24 00:08

농땡이 모드로 쓰는 아침 일기

2009/05/13 09:24 생활감상문

간만의 아침운동으로 기분이 좋아, 샤워하고, 머리 말리고, 옷 입고, 밥 먹고, 양치질하고, 가방 싸고, 화장하고, 선글라스 쓰고, 가방 멘 다음... 또 노트북 앞에 주저않아 봄노래 따라 부르며 쓰는 아침 일기. 이미 9시인데... 후딱 쓰고 휘리릭 회사로 날아가야지 .

 

봄이 되니까 해가 일찍 뜨고, 그래서 계속 아침에 6시 반이면 귀신같이 눈이 떠져서 아주 미칠 지경이었는데... 왜냐하면 살짝 불면증이 생겨서 암만 일찍 누워도 새벽 1시 전에 잠드는 일도 별로 없고, 수면 품질도 별로라서 3시쯤 깼다가 다시 잠드는 일도 자주 있어서... 그러면 늦잠이나마 자야(8시에 일어나도 출근에는 전혀 지장이 없단 말이다) 회사 가서 강도 높게 일할 수 있는데... 아침에 늘 찌부둥하니... 뭐 그랬단 말이다.

 

어제도 낮부터 골골해서 저녁때 보도자료 쓰는 진쿤한테 1차 코멘트만 해주고, 마무리하라고 하고 집에 들어왔는데(초저녁에 또 심장이 오그라드는 제작사고-나의 경험이 좀더 풍부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을지도 몰랐을-가 일어나서 몸에 기운이 쭉 빠진 다음) 집에 와선... 또 그냥 바로 가만히 누워 있으면 좋겠다만 그러지는 못하고, 주말에 교정 본다고 제낀 방청소하고, 빨래 개고, 그 와중에 아프니까 비타민 섭취한다고 오렌지 두 개씩이나 먹어주고, 쉽답시고 <내조의 여왕> 잠깐 봐주고... 그러고 자야지 자야지 하다가 왜 잠이 안 오나 생각했더니.... 하루 종일 뭘 빼내기만 했지, 넣은 건 없더라(먹을 거 얘기가 아니다). 아... 맞다. 마감이 아니니까 책을 읽을 수 있구나.... 읽던 단편소설 책은... 음~ 오늘은 소설책 필이 아니야...

 

뭐 그러면서 이 책 저 책 뭐 볼지 마음 정하는 데만 또 한참 걸리고... 서문이 마음에 들어 읽어야지 하고 4월이 지나가 버린 <폭력의 예감> 1장 읽다가(난이도도 난이도지만, 주제가 환기하는 느낌이... 침대에서 누워 볼 책은 아니었다) 1시 다 되어서 불 끄고 누었는데... 잠이 정말 한 개도 안 오는 건 아니고... 피곤해서 가사 상태인데 사념들은 머릿속을 막 헤집고 다니는.... 책의 중심 주제인 오키나와라는 지명이 자꾸 울리고, 처형 장면이 묘사되어서 그런지... <색/계> 마지막 장면에 인물들 즉결처형되는 장면도 생각나고... 내가 자는지 깨어 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나는 내가 잠이 들었다가 평소처럼 3시~3시 반쯤 깬 줄 알았다. 화장실 다녀와서 다시 잠을 청할까 하고 일어나 보니... 겨우 2시... 한 시간 동안 뻘짓했구먼.

 

음악이나 들으며 긴장이 풀리면 잠이 좀 올까 하고... 모터 소리 없는 라디오를 틀었더니... 아뿔사... 하필이면 오늘이 전파 정리하는 날이라 클래식 채널 안 나온다. 다른 채널은 말 많아서 수면에는 방해되는데... T T

 

뭐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방황하다가 겨우 3시쯤 잠들었는데.. 오늘도 6시 반에 어김없이 눈이 뜬 것이다. 엄마가 2주 전에... 무슨 땀복인지.. 운동복 비슷한 것도 한 벌 주셨고 해서... 그동안 몇 번 망설였던 아침 운동을 나갔다... 극동방송국 옆골목인 집에서 산울림극장 앞 삼거리까지 걸어갔다가 와우산 공원 아래까지 언덕을 올라가 다시 산중턱을 돌아 홍대 남문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길. 30분쯤 걸렸다. 와우산엔 아카시아꽃이 피었더라. 꽃향기에 기분이 꽤 산뜻.

 

예전에 평촌 살 때는 봄에 우울하다가도... 사당역에서 평촌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남태령 넘을 때 창문을 열어두면 풍겨오는 아카시아 향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특히나 학교에 있기 싫어서 초저녁부터 집에 들어가는 날에... 그렇게 기분이 좀 좋아진 다음에 집에 가서 엄마가 차려주신 저녁을 먹고는 긴장을 풀어서 잠을 잘 자곤 했다.

 

아카시아가 지기 전까진... 아침운동을 다녀야겠다. 그런데 이렇게 결심하면 내일부터 8시에 잠이 깰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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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3 09:24 2009/05/13 09:24

근황: 벽지 바꾼 기념 포스팅

2009/05/12 00:47 생활감상문

EM님의 [노닥노닥] 에 관련된 글.


 

EM님이 블로그 스킨 슬쩍 손 보신 데 필도 받았고, 오늘 아침에 갑자기 사무실 내 자리에 22인치 와이드 모니터가 들어오는 바람에(회사 전체가 DTP 툴을 인디자인으로 바꾸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도입한 디자인팀에 30인치 모니터가 지급되는 바람에, 주인 잃은 모니터가 뜻하지 않게 나에게 콩고물로 떨어졌다) 전에 깔았던 벽지가 새 모니터의 화면 비율과 안 맞기도 하고, 뭐랄까... 그것은 약간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을 때의 봄기분(낙엽들 사이에 슬며시 고개 내민 제비꽃)이라... 봄비 속에 새싹이 신록이 되어 가는(또 얼마간 초여름의 더위도 느끼게 하는) 요즘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 그리하여 바람에 날리는 버들잎으로 새 벽지 깔았더니만... EM님이 [벽지만 바꾸지 말고] 근황 글도 하나 쓰란다. 긁적긁적.... 그리하여 가장 최근 근황은 모니터 새로 생겼다 뭐 이 정도? 

 

근황을 말하자면... 무진장 바빴다. 전에 쓴 대로 마감이 두 개였는데... 첫번째 마감은 필름 출력한 다음에 사고가 있어서 4월 말부터 고대했던 '뜨거운감자' 콘서트를 당일이라고 환불도 못 받고(그나마 H양 덕분에 50%에 예매한 덕분에 손실도 50%) 못 가고... 겨우 사태 수습하고 다음날 눈 빠지게 데이터 확인해서 다시 마감. 그리고 중간에 다른 마감이 하나 끼어 들어서 책 두 권을 세 번에 걸쳐 마감. 그리고 다음주에 다시 남은 두번째 마감 예정.

 

이 와중에... 저녁때로 옮겨진 불어학원 다니느라 헥헥. 금욜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경제학 책 OK교 받아서... 뭔가 너무 압축적이다 싶은 캡션 한 줄 알아내느라 EM님 블로그에서 댓글로 실시간 대화(여긴 아침, 거긴 한밤중)... 그러곤 저녁에 낑낑거리며 푸코 강의 들으러 갔다가 SSG샘이랑 3시 반까지 술 마시고, 다음날엔 Y양이 조직한 어버이날 모임 출연해서 처음으로 아바마마부터 막냉이까지 전가족 출동한 가족모임에 낀 R군(Y양의 남친으로서 사윗감으로 윤허를 받은 옴므 홀랑데)에게 아바마마 좋아하시는 한국식 예법 알려주고(어른이 안쪽에 앉으셔야 한다, 어른이 오시면 일어나서 악수를 받아야 한다 etc.인데... 사전에 의도 설명 없이 살짝 피곤한 말투로 이렇게 앉아라 저렇게 해라... 해서 Y양은 또 나의 대장 기질 나왔다고 짜증냄) 점심부터 돼지갈비에 백*주 석 잔 마시고... 생전 처음으로 가족끼리 외식하고, 우아하게 커피집까지 갔다는.... 다들 가르치는 거(즉 잔소리하기) 좋아하는 가족이라 같이 있으면 서로 짜증 내는데... 우리끼리 한국말로 티격태격하다가 R군에게 뭔가 짧은 영어로 설명해 줄 때는 모두 친절한 모드... 영어 거의 못하시는 엄마는 계속 불편하셨는지... 나중에 Y양 커플과 헤어진 다음에... R군 왜 한국어 안 배우냐고... 한국말로 하라고 하라고 짜증내심. 그리하여 밤잠도 부족한 데다 낮술까지 마셨으니 아바마마께서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주시는 동안 한숨 졸고.... 

 

잠깐 주간님/사장님께 전할 말 있어 귀갓길에 회사 들러서 일본어 과외 공부 마치고 점심 드시고 오는 양반들 기다려 할 말 마치고 오며가며 읽던 단편소설 마저 읽다가 세 쪽인가 남은 순간 나의 등산친구이자 울 회사 앞에서 자취하는 MY언니가 저녁 먹자고 전화. 어버이날 치르느라고 돈 없다고 밥 사달라니 사준단다. 나름 좋아라 나갔더니.. 사실은 술이 마시고 싶단다. 아아... 24시간 내에 3끼 연속 술이로구나. 그래서 맥주 두 잔 마시며... 새로 들어간 회사는 보스가 헤매서 발전 가능성이 없어 보이며, 하던 공부는 기운이 빠져서 전처럼 열의가 안 느껴지고, 나이는 먹어서 연애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자기 결론은 외국 남자랑 연애를 해야겠단다... 뭐 좋은데... 이 냥반이 이 결론에 얼마나 결의에 차 있던지.. 겨우 맥주 두 잔인가 마셔 놓고는... 3시간 같이 있는데... 그 말을 15번쯤은 불쑥불쑥 계속 하는 거다(내가 R군 친구 중에 알아봐 준다고 대답마저 했건만)... 그래서 결국 나의 대답은... "외국 남자랑 못 사귀기만 해봐라... 내가 버럭 화를 내줄 테닷!" (이럴 때 보면... 나름... 뭐하고 살아야 잘살까 고민하기보단 지금 하는 일을 조금 더 잘할까만 고민하자고 결심한 나는 나름 복 받은 사람이다 싶기도 하고...)

 

뭐 이러고 집에 와서 괜히 술이 깨서 새벽까지 TV리모콘 괴롭히며 뒤숭숭해하다가... 일요일엔 저자 방한 일정에 맞추어 오늘까지 마감해야 할 예의 그 경제학 원고를 다시 떠듬떠듬 원서 및 사전을 참조하다가... 막히면 혼자 승질내다... 그러다 이러면 혼잣말 심해져서 정신건강 해칠까 봐 H양에게 메신저로 투덜투덜... 그러면서 간만에 선생님 댁에서 하기로 한 스승의 날 참석 연락 돌리기... '아니 다들 일요일에 뭐 하는데 전화들을 안 받는 건데? 난 평일엔 바빠서 연락할 시간이 없다고...' 또 혼자 궁시렁궁시렁...

 

뭐 그러고 회사 가서... 글 시작처럼 모니터 바꾸고, 오늘 들어온 신입들에게 J팀장, P팀장과 함께 점심 사주고... 점심 먹고 와서는 스승의 날 모임 참석여부 확답 안 한 인간들에게 전화 돌리고, 모처럼 그의 무관심을 드디어 믿게 되어 주말에 참석여부 알려달라고 문자를 보냈던 J씨가 전화를 걸더니... 안 온다던 풍문과 달리 오겠다고 의지 표현하며 내게 관심을 보이며 근황을 묻고, 그새 더 이뻐졌냐는 말에 전화 끊고 나서 살짝 머리가 아픈데도) 목표한 대로 퇴근 시간 전에 OK지 털어 주고 퇴근해서... 낮에 생협에서 배송된 먹을거리 들고 들어와 냉장고에 정리하고, 다시 나가서 아프리카 공예품점 가서 스승의 날 선물할 만한 신상 있나 구경해 주고... 사장님이랑 미리 가격협상하고... 다시 집에 와서 어버이날 엄마가 만들어 오신 반찬에다 새로 들어온 먹을거리까지 냉장고가 터질 듯(지난 주에 먹을 게 하도 없어서 생협에 주문했는데... 엄마가 어버이날 외식자리에 반찬에다가 옥상에서 키운 상추까지 가져다 주실 줄이야...)해서... 내일 도시락이라도 싸 가야 상해서 버리는 일은 없겠구나 하고... 동태찌개 끓이고, 잡곡밥 하고, 무나물 볶고, 설거지를 하고, 까먹고 있던 빨래 삶고, 지난 주 새로 받은 불어 MP3를 들으며 한 시간 동안 근황을 정리했다.

 

이렇게 바빠서야 잡념이란 도무지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입밖에 내기가 그래서 그렇지 여전히 잡념 천지이나, 어떤 생각을 진지하게 발전시켜 무언가 결심하고 이런 건 하지 말자는 것으로, 언젠가 내가 믿었듯이... 일상이 쌓이면 방향성이 생기고, 그 방향성들이 지금까지 나를 유지시켜 온 그나마의 힘이라는 정도라서... 뭐 딱히 그리하여 고민하는 것은 없고 근황이라 할 만한 것이 없는데도... 근황이 궁금하다는 EM님 댓글 한마디에 그만 마음이 약해져서 이런 글을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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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00:47 2009/05/12 00:47

일주일 새 세번째 새벽 3시

2009/04/25 09:44 생활감상문

일주일 새 세번째 새벽 3시에 넘어서 들어왔다. 의도치 않은 방탕(?)한 생활 그리고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아팠던 수요일의 결근을 포함하여] 주간 활동 골골. 어제 술자리 분위기도 그렇지만, 속으로 에라이 모르겠단 생각이 있어서 그랬는지...... 더 웃겼다. 다음주가 진쿤 마감만 아니(그래서 오늘 잠깐 회사 나가겠다고 말만 안 했)었어도 아예 철야를 하고 지금쯤 뻗어 있을 수도.

 

어제는 푸코 통치성 수업 뒷풀이에서 철학강의를 처음 듣는 동급생이 SSG샘에게 "그래서 세계는 누가 바꾸나요?"라는 질문(맥락이 좀더 복잡했지만 여하간 질문은 그랬던 거 같다. 2001년 스승의 날에 밤새 놀 때 가보고 처음 간 선*골 민속주점의 김치랑 동동주, 파전이 어찌나 맛있던지 남의 질문에 집중 안 함ㅋㅋ)에 대한 선생님 답을 듣다가... 음 첨으로 actor, agent, subject의 구분이 명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세 가지를 비교해서 생각한 적은 없는데 말이다. 수업시간보다 뒷풀이에서 깨달음이 오다니 좀 웃기긴 했지만... 선생님한테 약간 썰을 풀어서 물어보니까 대충 비슷한 얘기라신다. 그래서 나의 최종 결론은 "주체에겐 얼굴이 없다"(머릿속에서 그런 문장이 들려서 선생님한테 누가 그런 말을 했나요? 하고 물어보니 선생님은 처음 들으신단다). 구글에서 불어로 검색("le sujet n'a pas de visage")해 보니까 없는 거 같다. 음, 나름 유니크한 문장이로군(지난 1년여 간 만든 세르 책+들뢰즈 주해서+블랑쇼 책 et 푸코 강의의 결과로 요거 한 문장이닷).  나중에 또 써 먹어야지. 

 

여하간 사람들이 많이 일찍 가기도 했고, 지난 주에 엄마도 오시고 몸도 아프다고 수업 빠진 것도 죄송하고, 일부러 푸코랑 들뢰즈 다큐멘터리 DVD로 구워주신 것도 감사하고, 마지막까지 함께한 SYS씨의 새침하면서도 도발적인 말투도 재미있었고... 그리하여 또 새벽 3시 귀가(그 양반들은 그 시간에 3차 하러 갔다. 요즘 나의 술자리 태도... 막차는 무조건 빠진다?)... 4월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자 했는데... 어째 술자리가 열심히가 되는 건가? 아냐아냐... 9월에 불어 시험도 보기로 결심하고 소문도 냈고, 당장 마감도 2연타로 있고, 스승의 날에 오클라샘 뵙고 오면 또 격려도 해주실 테고... 그러니까 꽤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이얌.  

 

일단 오늘은 1시간만 더 자고 회사에 가자꾸나. 아아, 정말 나는... 그냥 쭈욱 자면 되는데 술 마신 다음날도 제시간에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빨래나 청소까지 하고 나서] 다시 졸리단 말이야. 그래서 결국 더 지치고 늦게 나가게 된다는.T T

 

에에... 술 별로 안 마셨는데, 이 두서없는 아침 일기를 보니... 꼭 술이 안 깬 것 같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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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5 09:44 2009/04/25 0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