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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연 때 쓴 글

1. 교양(혹은 지성), 대화


5월로 기억합니다. 광운대에서 진행되었던 김규항 씨 강연회 갔었습니다. 새내기를 대상으로 한 강연회가 으레 그렇듯이 딱히 이렇다 할 제목을 잡기 어려운 난상토론식 강연회였습니다. 굳이 내 나름대로 제목을 붙이자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보란 무엇인가’ 정도가 가장 적당할 듯 싶습니다. 그 중에 가장 인상이 남는 대목은 교양과 지성에 대한 언급이었습니다. 요약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는 무척 성실하고 이타적인 사람이 민족이나 국민국가와 같이 거대한 집단을 사고할 때는 매우 보수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만큼 집단이 거대해질수록 진짜 잘못된 것과 올바른 것을 구분하기란 더 힘들어집니다. 사회 모순을 덮어두고 기득권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가장 즐겨쓰는 말은 ‘국민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흔히 엄숙하고 점잖은 태도로 사회가 요구하는 관습과 형식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교양 있고 지성 있는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교양 혹은 지성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과 모순의 근본적인 원인을 볼 줄 아는 능력을 말합니다.


9월 12일, 공개적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뒤로 스물 다섯 해를 살아오며 여기 저기서 만났던 기억 속의 사람들과 연락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더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기뻐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서로 미안해하며 하고 싶은 말이 턱밑까지 올라와도 참고 작별인사를 합니다. 조용히 후원인으로 가입해서 남모르게 도와주고 있는 사람들, 내가 너를 끌고라도 군대에 보내겠다는 옛친구, 인터넷을 보고 잊었던 별명을 상기시켜가며 애석해하는 친구, 당장에라도 군대에 가길 바라는 부모님...주변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주를 이룹니다만 종종 이런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존경스런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주위 후배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경우에는 할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다.


반면, 주로 인터넷과 서명운동 과정에서 만나는 비슷한 또래 사람들이 내게는 가장 소중한 대화 파트너입니다. 이들은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털어놓습니다. 그래서 종종 흥분할 때도 있지만, 적어도 병역거부에 대해서만큼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병역거부로 인해 감옥을 가는 것도 힘든 일이겠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서로가 불필요하게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증오하게 될 때 나는 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세상에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 전쟁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에 빈곤과 모든 불평등이 사라지고 모든 인류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독재정권도 ‘한국식 민주주의’를 말하고 부시정부도 ‘민주주의 수호’를 부르짖으니까요. 누가 혹은 무엇이 진정으로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빈곤과 불평등이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방식을 바꿔가며 재생산되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기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언제나 모든 행동에는 명분이 따라다니기 마련입니다. 지금도 평등, 평화, 자유, 민주, 인권이란 이름 아래 온갖 불평등과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병역거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수많은 장벽에 부딪칩니다. 양심은 종종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양심이 거대한 집단과 부딪칠 때, 사회가 요구하는 통념이나 가치관과 부딪칠 때 이 문제는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국가, 민족, 국민, 안보, 군대, 남성/여성 등 거대한 담론들과 끊임없이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진짜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그 동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는 글로 대신하고 진심으로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그래서 대화가 끝난 뒤에는 진정으로 우리가 함께 비판하고 뜯어고쳐 할 대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한마음으로 평화와 인권을 말하고 싶습니다.



2. 결심하기까지


우리 나라에서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양심수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예비병역거부 선언까지 잇따르면서 전사회적으로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 상식이 되어 버린 이 문제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습니다.


나 역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고민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오태양 씨가 공개적으로 병역을 거부함으로써 금기에 도전했고, 또 다른 젊은이들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시민, 사회, 종교단체들이 모여 연대회의를 구성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를 전면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 역시 이들과 함께 행동해 왔습니다. 한 편으로, 911 테러 이후 탈냉전 이후 새롭게 조성되는 전쟁 분위기는 한국에도 깊게 영향을 미쳤고 이와 때를 같이해서 다양한 형태의 반전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국가, 민족, 계급이나 자유, 민주, 평등, 인권과 같은 말을 두고 오랜 시간 고민하게 되고 때로는 사회가 강요하는 통념들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언제나 동세대 청년들과 맞서야만 했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행된 수많은 폭력 앞에 때로는 무력해지기도 했습니다. 작은 권리 하나 찾으려고 나선 싸움에서 우리는 너무나 자주 아파해야 했고,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너무나 상식처럼 받아들여져서 무덤덤해지기도 하고 내 마음 속 깊이 들어앉은 관성에 놀라기도 합니다. 집회에 나가 졸기도 하고, 빨리 행진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거의 반사적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치고 있을 때가 왜 그리 많았는지. 요컨대 나에게 운동은 일상적인 삶이어야 했고, 그것은 거대한 권력보다 때로 타성에 젖은 자신과 싸워야 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매번 절대 순응하고 타협하면 안된다고 다짐하면서도 항상 수많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여전히 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나를 어떤 ‘특이한’ 사람 취급하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과 성적, 졸업, 직장 등 일상에 대한 고민들입니다. 나는 오늘도 며칠 전 선물받은 ‘서준식의 옥중서한’을 가방에 들고 다니며, 민족의 미래를 고민했던 청년이 사상전향서 한 장을 거부한 이유로 왜 17년간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는지 고민합니다. 그것에 비하면 훨씬 편한 길을 가고 있는 내가 진정으로 이겨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에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절대적인 권력과 맞설 때, 끝까지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 그것이 바로 신념이며 양심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양심수라 불러 왔습니다. 나는 내 양심에 가장 떳떳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가장 투명하게 자신을 인식할 때 타인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마음이 생깁니다. 자신에게 가장 떳떳할 때, 사회를 바꾸고자는 목소리에 진실의 힘이 담기게 됩니다. 나는 국가나 민족 혹은 자유나 평등을 고민합니다. 반전평화, 인권과 민주주의를 고민합니다. 무엇보다 내 삶에 대해 고민합니다.


평화란 소극적인 의미에서 전쟁에 반대하고 전쟁을 예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쟁은 인권과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반전 운동은 동시에 가장 절실한 인권 운동입니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전쟁과 싸우는 것이 평화인권 운동입니다. 노점상, 철거민, 정리해고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등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과 나는 병역거부자로 연대할 것이며, 이것이 우리가 오늘 새롭게 우리 앞에 던져진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가장 실천적인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내 문제를 사회 문제 속에서 고민하지 않고,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재 의미를 찾는다고 말하면서도 자신만은 예외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삶과 운동은 절대 분리된 어떤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일종의 이중생활입니다.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해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속한 집단, 대학인과 동시대 청년들의 문제를 내 문제로 고민해야만 가장 확실한 답이 나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논평하기는 쉽지만 자신 안에 깊이 녹아들어있는 그 모순들을 스스로 인정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병역거부는 또 한번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때마다 기회비용을 다양한 관점에서 따지게 됩니다. 우리는 돈, 권력, 시간, 명예만을 기회비용의 요소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을 꺾여야만 하는 상황보다 큰 기회비용이 있을까요? 일생을 나는 내가 원치 않는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3. 평화인권 - 진보적 대학인의 새로운 행동좌표


우리는 외세와 독재에 맞서 민족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희생을 딛고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대학인은 언제나 한국 현대사의 흐름 한가운데서 진보의 저수지 노릇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진보의 기준은 언제나 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회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고 어제는 완전히 새로운 문제였던 것이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또 어떤 문제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어제는 미쳐 깨닫지 못했던 장애인이나 이주노동자의 인권 문제가 오늘날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동안 금기시 되어 왔던 군대와 관련된 문제들이 지금 논쟁의 도마 위에 올라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회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평화인권이야말로 오늘날 사회진보를 갈망하는 대학인들이 추구해야 할 가장 구체적인 행동좌표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 평화란 앞에서 말했듯이 전쟁을 예방하고 반대하는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유․무형의 모든 억압적인 권력과 폭력에 맞서는 적극적 평화를 말합니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평화는 동시에 인권의 문제입니다.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미증유의 경험으로 남아있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평화인권 운동 역시 민중에게 권력을 되돌려주기 위한 역사의 장강을 따라 함께 흘러가고 있습니다.


첫째, 민주주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땅에는 기본적인 인권이나 민주주의 자체가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는 것 자체로 급진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보장해야 할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우리에게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국민여론을 무시한 채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건재하고 사상전향서까지 만들어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짓밟고 있습니다. 냉전시대를 지배하던 반공 의식이 민주주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체복무는 둘째치더라도 우리에게는 군대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겨운 상황입니다.


둘째, 인권 운동을 통해 우리는 잊고 지냈던 권리를 되찾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혜안을 갖게 됩니다. 인권의 문제는 시혜나 동정 혹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권리의 문제입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은 가장 보편적인 요구라 할 수 있습니다. 구시대적인 잣대로 어떤 문제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인권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본다면, 이 사회가 떠안고 있는 수많은 숙제들이 의외로 금방 풀릴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할 때 누군가 ‘이동권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는 일화를 생각해 봅시다. 이동할 권리는 숨쉴 수 있는 권리 만큼이나 너무 당연해서 잊고 살아가기 쉽지만, 이제 우리에게 장애인이동권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물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피와 눈물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경제적 효용이나 경쟁사회 논리로만 바라본다면 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셋째, 인권은 반전평화, 민중생존권, 병역거부권, 장애인이동권, 노동권/교육권 등 전혀 다른 문제처럼 보이는 문제들이 사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사회구성원들은 각자 처한 위치에서 자신의 문제를 사회와 연결시켜 바라보게 됩니다. 대학인 역시 대학인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군대 문제에 대해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인권의 확대를 기준으로 사고하고 실천할 때 그것은 이익집단의 이기적인 요구가 아니라 보편적인 권리를 찾기 위한 실천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더 크게 단결하게 더 넓게 연대할 수 있습니다. 인권은 어떤 특정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사회적 인간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반전평화를 주장하는 대학인의 문제나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 농민, 빈민의 문제는 모두 인권을 되찾기 위한 우리들의 문제인 것입니다.


넷째, 서준식 선생님 말씀처럼 인권운동을 통해 우리는 극단적인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보편적인 인간해방을 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종종 우리는 사회모순을 지적하면서 우리 역시 동일한 모순에 빠지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만을 요구했던 암울한 시대를 지나왔습니다만 여전히 국가에 대한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권위주의, 획일주의적 사고방식이 전사회적으로 만연해 있습니다. 혹 사회변화를 주장하는 우리는 똑같은 함정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주 노동자, 동성애자, 장애인의 권리를 깨닫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민족주의 위험이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혹 민족이나 계급을 이유로 다른 문제들을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하거나, 다양한 의견을 획일화시키려 하지는 않습니까? 인권에는 위, 아래가 따로 없습니다. 어떤 조건이 무르익은 뒤에야 다른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지금 바로 억압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 인간의 권리와 모순에 처해있는 잘못된 의식과 제도를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운동은 제도의 문제인 동시에 의식의 문제입니다. 국가주의를 넘어서지 못하면, 군대 문제에 있어 우리는 한발짝도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폭력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일방적인 국가주의는 아시아에서는 더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가 존재하는 한, 군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회든 법, 도덕, 윤리와 같은 약속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어떤 제도나 의식적인 약속을 끊임없이 토론 속에서 새롭게 고쳐나갈 힘이 그 사회에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는 바로 이것을 기준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를 두고 이야기할 때도 이 문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입니다. 서로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가며 군대 문제에 대해 생산적인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이 산을 넘어야 합니다. 우리가 군대를 바라보며 비판해야 될 대상은 제쳐두고 왜 우리끼리 서로 증오하고 갈등해야 합니까? 고위층 병역비리, 군대 민주화와 효율 문제, 군대 내 인권문제 등 우리는 아주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겨레21을 보니 사병 월급 문제를 지적했는데 아주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한마음입니다.


작위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어느 개그맨과 ‘고장난 레코드를 바라보듯’ 웃어제끼는 시청자처럼 이 시대 청년들이 서로 배타적인 모습으로 만나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80년대 신화를 넘어 90년대 학생운동 역시 뼈를 깎는 반성과 모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90년대 학생운동은 언제나 삶을 화두로 던졌습니다. 대학인의 삶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학생운동, 그래서 대학인의 이야기를 가지고 보편적인 인간해방의 장강에 합류하는 학생운동이 언제나 우리들의 화두였습니다. IMF를 계기로 이러한 문제의식이 청년실업해결, 등록금 저지, 대학구조조정 저지(학부제/광역화 반대)와 같은 실천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애국적 청년학생이나 (사회 나가면 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예비 노동자로서 도덕적 당위에 호소하는 것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구체적인 과제를 통해 ‘왜 대학인이 보편적인 인간해방을 위해’ 싸워나가야 하는 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어떤 문제들은 남의 문제, 학교 밖의 문제로만 보였고 어떤 문제들은 학교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이제 사회 모든 분야에는 다양한 단체들이 성장하여 단체의 이익과 더불어 사회 진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진보정당의 발전은 이런 다양한 진보적 요구들을 한 데 묶어 정책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진보정당 국회의원이 나옵니다. 그들의 입으로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고, 대체복무를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연대에 대한 당위성만으로 대학인의 보편적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우리의 문제인식은 옳았습니다. 그러나, 실천과제를 찾아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이제야말로 진정 대학인의 삶으로부터 시작해서 전사회로 나아가는 실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보편적인 인권을 획득하는 실천을 전개해야 합니다. 반전, 평화, 인권이야말로 21세기 학생운동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이 군대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있는 문제, 사회구성원들이 엄청나게 불신하고 분노하면서도 언제나 순응하고 복종해야만 했던 문제, 끊임없이 사회적 적대를 조장하고 남성우월주의/권위주의/국가주의를 재생산해내는 거대한 학교. 보편적인 인간해방을 위해 우리는 이제 제한없는 실천과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 마음을 터놓고 대학인들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기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예비병역거부 선언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함께 손맞잡고 연대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시작으로 50년간 비판조차 하지 못했던 거대한 문제에 직면해서 아주 중요한 한 고비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학인이 나서야 합니다. 대학인의 삶으로부터 우리나오는 진실함과 평화와 인권을 갈망하는 절실함이 한 데 뭉쳐 아우성치는 그 날을 상상해 봅니다.


4. 나가며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강연회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학인들과 마음과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다소 생소하고 어색할 수 있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입니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으니까요. 병역거부 이유서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세상으로부터 배운 것을 세상에 되돌려 주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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