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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이후(기고글)

또 이사를 했다. 메가패스를 다시 깔았는데 모뎀을 바꾸는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침투했다. 우리집 컴퓨터는 악성 스파이웨어와 바이러스 놀이터가 되었다(고 짐작할 뿐-.-;;). 결국 포맷했다. 여기는 PC방이다. 다시는 PC방 신세 안 져도 될 줄 알았는데 역시 바깥세상은 나름대로 험하다. 며칠 전에는 지하철을 타는데 환승역을 못 찾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엉뚱한 출구로 나와서 헤매기도 했다. 너무나 빠르게 걷는 사람들, 너무나 계획이 많은 사람들, 너무나 돈 욕심이 많은 사람들, 챙겨야 할 관계가 너무 많은 사람들. 그 속에서 난 당분간은 이렇게 어리버리 하겠지. 곧 그마저도 적응이 되겠지. 그래도 나오니까 참 좋다. 이 맑은 공기, 푸르고 높은 가을하늘은 정말이지 매력 그 자체다. 적응이 빠를수록,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 아름다운 것들도 잊고 살게 될까? 솔직히 사람에 대한 매력은 가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겠다. 이 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게 될까?


구치소와 군대는 비슷한 면이 많다(고 짐작할 뿐-.-;; 군에 다녀온 사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니까). 본인의 선택과 무관한 집단생활, (소위 짬이 쌓여) 갈수록 편해지는 위계서열 구조, 수많은 벽 앞에서 자포자기하게 되는 심정. 기본적으로 낯선 사람들 끼리 집단생활을 하는데 마찰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공간이 너무 좁은 게 결정적이다. 3평도 안 되는 공간에 7명까지 들어온다. 다리가 겹치는 건 둘째 치고 재수 없으면 어깨도 못 펴고 자야한다. 그런데도 화가 안 난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런데 그 좁은 공간에서 서열이 높은 사람은 조금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구조가 그런 식이니 딱히 누구에게 화를 내기 애매할 때가 많다. 이럴 땐 ‘그러니까 감옥이지 달리 감옥이냐’는 운명론적 사고가 싹튼다. 사람들과 1:1로 얘기를 해보면 각자 불만이 다 있다. 특히 누구 누구는 이래서 재수없다는 식의 감정을 다 가지고 있다. 1:1로 수다떨기가 서로 맺힌 감정을 푸는 데 효과적일 때도 많다.

갈등을 무마시키는 가장 큰 무기는 위계서열. 일단 이 구조에 적응하려면 처음엔 고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인내한다. 더러 불만이 생기면 대화로 풀어보려 하지만 토론에 익숙한 사람들이 별로 없다. 남성들만의 세계라 더 거칠다. 가끔 주먹다짐도 벌어지지만 대개는 폭언으로 끝난다. 징벌을 받으면 자기도 손해니까. 교도관들도 어지간하면 말로 해결하라 하고. 그 다음으로 시간이 지나면 나도 곧 서열이 올라간다는 기대심리가 생긴다. 기대심리는 웬만한 불만을 참게 만든다. 실제로 시간이 지날수록 감옥 생활은 조금씩 편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 만큼 익숙해지기도 하고 대처방법을 터득해가니까. 사람들은 위계질서가 가하는 폭력도 두려워하지만, 그 구조에 적응 못해서 왕따를 당하게 되는 것도 두려워한다. 군대, 회사, 학교, 감옥... 이 세상에 많은 것이 얼추 비슷한 방식으로 굴러가겠구나 생각도 든다.


처음엔 굴욕감도 조금 있었다(그래, 지나고 나니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 가끔은 정말 진저리나도록 사람이 싫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냉정해지지 못하고 감정의 노예가 될 때도). 뜻대로 되는 게 없으니까. 나중엔 점점 늘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너무 안 가더라. 도 닦으러 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온갖 수단 다 동원해서 제 입맛에 맞출 때까지 저항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든 그리 간단한 건 아니다. 난 여러 가지 태도를 두루 고려해서 적당히 잘 지낸 거 같다. 가끔은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상대를 이해해보려고 노력도 하고. 시스템을 알고 나니 사람들에게 거칠게 대해봤자 나만 손해라는 생각도 들었다. (평범한 의미에서)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잘 지냈다. 서로 조금은 들어주려는 노력도 하고, 더러 사소한 것들은 배려도 해주고. 평범한 사람들인데 이렇게 모아놓으면 누구라도 예민해질 수 밖에. 이건 운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운동하는 사람들하고 있어도 반드시 발생하는 비슷한 문제들도 많았다. 요컨대 인간관계의 문제였다.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걸 순응이냐 저항이냐 하는 식으로 사고하는 건 좀 자신을 지치게 만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약간 생각을 바꾸니까 좀 편해졌다. 무리 가운데는 꼭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 확실히 개개인마다 사고방식의 차이가 많이 난다. 무조건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면 더러 통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나도 모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편해지는 생활에 적응하더라. 안 그럴려고 나름대로 노력은 했던 거 같다. 조금은 달라 보려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다. 더러는 오래 살다보면 정들기도 한다.(이건 참 신기한 발견이었다. 친구도 별로 없는데...) 결정적으로 자존심을 상할 정도로 거친 사람들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자존심이 다쳤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 만큼 거친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래도 이 생활이 잘 안 맞는 사람들은 많이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여기서 바뀐 생각이 또 하나 있다. 원래 난 공무원을 싫어했다. 국가는 자본가들의 위원회고, 공무원은 그 위원회를 떠받치는 벽돌같은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 역시도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박봉을 탓하고, 아이들 교육을 걱정하고, 내집 마련 생각에 가슴 설레고,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벗어나 보려고 주식투자에 목을 매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 내 아버지 같은 그런 사람들. 정치적인 문제를 두고 입장을 가르면 더러 같은 편에 서는 경우도 많다.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교도관은 공무원 중에서도 가장 막다른 선택이라는 피해의식이 팽배하다. 사람은 원체 복합적인 존재니까. 무엇보다 1:1로 만나면 그들 역시 다양한 감정을 가진 인격체다. 그러니 공무원이라는 집단을 묶어 생각하지 말고 각 개인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부분에서는 묘한 인간적 유대가 생겨나기도 한다. 아주 미세한 연대의식이랄까? 참 외로운 사람들 많더라. 무슨 책이었었나? ‘상대방에 대해 너무 완벽한 걸 요구하면 자신도 상처받는다’는 말을 보았다. 자신이 완벽과는 거리가 먼 존재라는 걸 인식하면 할수록 상대방이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이게 되는 거 같다.


처음에 병역거부를 결심했을 때는 형량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워낙 의지가 남다를 때였으니. 당연히 3년형을 예상했다. 출소를 두 달 정도 앞둔 시점부터는 시간이 참 느리게 갔다. 짐작컨대 군에 입대한 사람들도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3년형을 받았다면 참 힘들었겠다 싶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해서 이만큼 온 거라고 생각하니 뭉클했다. 작은 변화도 그 과정을 직접 겪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벅찬 감동인가!! 1년이 가까워오면서 자주 구치소를 배경으로 꿈을 꿨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도 여러 번 등장했다. 자고 일어나면 멍한 상태에서도 그 꿈 때문이 기분이 무지하게 찝찝했다. 1년 6개월에 가석방까지 받아서 나왔으니 참 다행이다. 이 좋은 가을에 나와서 참 재수좋다.


GP 총기난사 사건 때, 리셋 증후군이란 말이 사회화되었다. 컴퓨터 게임과 인터넷에 익숙한 신세대들은 삶도 언제든 리셋할 수 있다는 생각에 철없는 행동을 벌인다는 식이다. 정말 속편한 논리다. 온라인 게임 수출국이니, IT 최강국이니 자랑하다가도 무슨 사건만 터지면 애먼 곳만 두드린다. 관련이 없진 않겠지. 그렇지만 사람이 어디 그렇게 간단한 존재냐? 사회적 책임은 생각도 않는 한심한 사람들.

출소를 앞둔 시점부터 리셋 증후군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해봤다. 이 시기를 나는 리셋시키고 싶은건가? 처음엔 뭔가 의미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이런 저런 계획을 잡고 바깥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이건 단절의 시간임이 점점 더 분명해져가더라. 혼자 견뎌내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마음을 콩 밭에 두고 안에서 잘 살기는 힘든 노릇이다. 한 두 달이면 가능하겠다. 그렇지만 1년이 넘는 시간은 그런 식으로 지내기 힘들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야말로 자연스레 빵잡이가 되었다. 다들 그렇듯이. 그러면서 점점 지루함에 지쳐갔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잘 지냈다. 마음 속으로 자신에게 ‘넌 참 잘해냈어’라고 한마디 해주고, 밖에서 격려해준 사람들에게도 ‘참 고마웠어’라고 한마디 해주었다.


그 시간을 리셋시킬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많은 걸 배웠다느니, 자유로운 공기와 푸른 하늘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느니 그런 말들을 할 수도 있겠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몸 버리고 마음 상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저 난 지금 나무늘보처럼 늘어지게 쉬고 싶을 뿐이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해야할 일들이 파도처럼 몰아치리라. 그러기 전에 마구 쉬어보자. 사람들이 빠르게 걸어가는 모습을 어이없는 듯 쳐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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