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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뎅에게 보내는 편지

언제나 냉정한 듯하지만 때론 장난스러운 부르뎅. 그래서 가끔은 건조해 보이기도 하는 태훈이. 얼마 전 갑자기 결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 나를 놀라게 했던 부르뎅. 전쟁없는세상을 시작한 이후로 늘 곁에 있어서 서로 많이 알고 지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르는 게 더 많은 태훈이.

난 너와 용석이의 병역거부 이유서를 보고 지난 몇 년간을 돌아보았다. 병역거부를 결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계속되는 일정에 쫓기던 그 때를. 반복되는 기자들의 질문에 준비되지도 않은 답을 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던 그 때를. 그래서 어느 한가로운 날 가만히 누워 자신을 생각하면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고장난 라디오처럼 지직거리던 그 때를. 내가 했던 말들을 되새김질하기 바쁘고, 내가 뱉은 말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혼자 헤매이던 그 때를. 그래서 내 인생 처음으로 사람은 결국 개별자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그 때를. 가끔은 불면증을 어쩌지 못해 생각없이 리모콘을 누르며 밤을 새기도 했던 그 때를. 어쩌면 인생은 항상 이렇게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버거운 상대를 대하면 나가는 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때를.


착취된 피땀이 모여 누군가에게 부를 가져다주었고, 그 부가 권력을,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기를, 그리고 그 무기가 다시 슬픈 눈물의 사람들을 겨누고 있다는 너의 병역거부 이유서. 사상의 한 귀퉁이가 심각하게 무너졌을 때, 껍데기뿐인 병역거부자에 불과했다는 자기 고백. 너의 병역거부이유서를 읽으며 생각한다.

버려야 할 것들과 새롭게 받아들여할 것들 사이에서 한참을 망설였던 그 때를. 때로는 겉잡을 수 없는 적대심과 분노로, 들끓는 승부욕으로, 거친 말과 배타적 태도로 살아왔던 그 때를. 

세심하게 보호받아야 할 너의 신념은 이미 수많은 검증 과정을 거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너도 모르는 사이 사람들은 널 병역거부자로만 검증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른다. 때로는 너 자신이 아니라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편견의 장벽이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긍정보다는 냉소가, 대화보다는 침묵이, 관심보다는 소외가, 애정보다는 외면이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완벽을 기대하면 상처받는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고, 때로는 세상을 바꾸기 보다는 등지는 게 더 편하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난 오늘 네 결심을 축복해주고 싶다. 원래 값진 인생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에게는 이 과정을 충분히 이결낼 만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때 더 멋진 모습으로 성장한 너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긍정의 에너지가, 희망의 언어가, 평화의 기운이 너와 함께하리라 믿는다.

수감되면 종종 글로 찾아가도록 하마. 항상 건강하고 밝게 지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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