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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기록을 시작하며...

1년 3개월을 조금 넘는 수감생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글을 읽.고.썼.다.

 

3평이 채 못되는 공간에 7명이 함께 산다. 출입은 불가능하고 방 안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만이 인정된다. 인터넷을 할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핸드폰을 때릴 수도 없다. 그러면 누구라도 글을 읽.고.쓴.다.

사람들은 잘 보지도 않던 신문을 꼼꼼히 분석한다. 신문 하나로 두시간을 버티는 사람도 있다. 한 번도 써보지 않은 편지를 쓴다고 예의 식상한 문구를 끄집어낸다. '겨울이 가까워오니 바람이 차가워지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따위를. 사람들은 갑자기 한문을 공부하고, 영어를 공부한다. 그것도 질리면 네모네모 로직을 구입한다. 그래도 지치면 그 다음엔 월간잡지들을 섭렵한다. 최고 인기가 많은 건 여성지다. 속옷 광고 모델들이 벽지를 대신한다.

 

읽고 쓰는 일은 때로 커다란 즐거움이기도 했지만 어쩔 때는 집착이기도 했고, 어쩔 때는 절박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몸부림. 뭔가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몸부림. 결국엔 나는 살아있다는 심리적 보상. 그래서 가끔은 재미도 없는 책을 꾸역꾸역 오기로 읽는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정이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읽은 책이 쌓이면 시나브로 날아간 시간들이 모두 헛되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게 자신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읽고 쓰다가 의도하지 않게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진지한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좀 더 제대로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처음엔 일기를 썼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쓸 내용이 없었다. 언제나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게 지겨웠다. 수감생활 중반을 넘어서면서 독서도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억지로 책을 붙들고,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다시 덮고. 혼자서 옥신각신 '이걸 읽어 말어' 고민만 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이미 지겨움이 다른 모든 욕구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 만큼 할 일이 없었고, 더 정확히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일희일비의 연속. 하루에도 여러번씩 오르내리는 바이오리듬. 잠자리에서 결심했다가 날이 밝으면 쓰레기통에 쳐박히는 수많은 결심들. 그러기를 반복하다 컨디션 좋은 어느 하루. 이 번에는 일기가 아니라 에세이를 써보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쓴다. 수감기록을.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해가면서. 그러다 또 결국엔 그만두었다.

 

 

출소하고 한참 시간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이 수감생활에 대해 물어온다. 곧 수감될 병역거부자들과 후원을 맡을 사람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질문 공세를 펼친다. 의.외.로. 나에겐 아주 사소하고 단순했던 일들이 사람들에게는 구체적인 정보가 된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정보를 필요로 한다. 또 단순한 지적 호기심 때문에 궁금해한다. 그런데 알려진 건 거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다녀왔지만 여전히 감옥의 일상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감옥을 다녀온 사람 누구도 자신을 전과자라고 소개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군대 이야기처럼 술자리에서 자랑스럽게 떠들 이야기가 못된다. 나는 수감기록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역거부자들은 대체로 집단주의와 위계질서에도 비판적이기 때문에 수감생활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할 말이 아주 많다. 사실은 내가 지루하다고만 느꼈던 그 일상들이 아주 많은 문제들을 시사하고 있었다. 인권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위계질서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남성성의 세계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여기는 군대 못지 않은 현장이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는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군대 문화의 피해자였던 주인공이 마지 못해 가해자가 되아가는 상황들을 묘사하고 있다. 나는 그 영화를 보는 순간, 많은 경험들이 스쳐 지나갔다. 계속 자의식을 건드려서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수감기록이 필요다는 생각을 굳혔다.

 

또 병역거부를 비판하는 사람들 역시도 병역거부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군대 2년에 비하면 감옥 1년 6개월도 과분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난 군대를 안 갔다와서 잘 모르겠다. 제대로 보고 나서 그런 말을 하라고 해야겠다. 함부로 지껄이는 말 때문에 또 한 번 상처를 입는다는 것도 모르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그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감옥에 갇히는 것만은 막아보자는 입장에서 소극적으로 병역거부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나는 수감기록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마치 의무처럼 느껴진다.

 

 

우려되는 건 단 한가지, 술자리에서 계속 내뱉는 군대 이야기처럼 일방적인 설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배타적인 경험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장벽을 만들고 싶지 않다. '넌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를 수 밖에..'라고 말하는 순간, 그건 폭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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