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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1/01/26
    적게 먹어야
  2. 2011/01/20
    사람보다 체온이 높은 동물의 지방을...
  3. 2011/01/14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4. 2011/01/05
    바로 오늘
  5. 2010/12/31
    새해엔
  6. 2010/12/19
    벗을수만 있다면...
  7. 2010/12/11
    희망사항
  8. 2010/11/30
    체온이 1도 떨어지면
  9. 2010/10/19
    평등과 차별
  10. 2010/09/27
    개 풀 뜯어먹는 소리

적게 먹어야

건강합니다.  수도없이 들어 온 이야기지만 고치기 힘든 과제입니다.  만약 고기류등 비싼 음식을 많이 먹어야 건강하다면 돈이 없어 기름진 음식을 못사먹는 서민들의 가슴은 더욱 멍들것입니다. 불행중 다행으로 현대인의 고질병인 고혈압과 당뇨가 가공식품의 과다섭취에 그 원인이 있다는데 적게 먹고, 제대로 먹고, 단식등의 비움을 통해 건강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다져야 할 듯.

 

과식은 만병의 근원이며 특히 현대인의 생활습관병의 원인은 많은 부분 과식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과식은 위와 장에 부담을 주고 결국 비만의 원인이 되며 비만의 결과로 고혈압이나 당뇨 등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당뇨환자들은 대개 병의 진단시 이미 췌장기능이 5년 정도는 나빠진 상태입니다.  따라서 먹는 약으로 5년 정도 치료하면 췌장기능이 거의 소실돼 인슐린이 전혀 분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식사요법·운동요법의 병행이 중요합니다.

 

당뇨예방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비만을 피하는 일입니다. 비만은 당뇨 유병률을 높이는 천적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비만이 창궐하면 당뇨, 나아가 심혈관 질환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다. 따라서 이러한 결과를 막기위해서 무엇보다도 평소에 적게 먹는 습과과 운동을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초입니다.  돈도 시간도 요하는 '많이'가 아니고 적게 먹어서 건강할 수 있다는데...  세치도 안된다는 자신의 혀와 싸워 볼 의향은 없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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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체온이 높은 동물의 지방을...

섭취한다는 문제의 접근은 우리가 식탁에서 접하는 고기와 생선을  환기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흔히 육류에 들어있는 포화지방산은 나쁘고 어류에 들어있는 불포화지방산은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좋다하고 하는데, 간단한 공식이 있다. 사람보다 체온이 높은 동물의 지방은 나쁘다.
 

 

소나 돼지 새의 온도는 38.5~40도로 사람보다 높고, 닭의 체온은 41.7도로 이보다도 더 높다. 이와 같이 사람보다 체온이 높은 동물의 지방은 그 온도에서 가장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즉 이보다 체온이 낮은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면 끈적끈적하게 굳어져 점성이 높아지고 혈관에 정체되거나 막힌다. - 병 안걸리고 사는 방법중에서 -


육류보다 생선류 단백질은 해가 적다라고 하지만 과잉섭취하면 마찬가지다.  소식이 건강의 요체라는 교과서적인 원칙을 외면한 채 끊임없이 오장육부를 혹사시키며 자신은 남보다 더 건강할 것이란 착각을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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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알았습니다

가장 큰 재앙이 미움, 원망이라는 것을... 가장 큰 축복이 자비심이라는 것을...  가장 큰 힘이 사랑이라는 것도.     그런데 왜?  제 팔다리엔 여전히 힘이 오르지 않는 것일까요?  제대로된 사랑을 몰랐으니 미움, 원망인들 오죽 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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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오늘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삶에서 절정의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생애에서 가장 귀중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 ' 지금 여기 '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다가오는 오늘이다.

그러므로 오늘, 지금, 여기를 이 삶의 전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      < 벽암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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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몸과 마음이 더욱 건강한 우리이길 ...  일진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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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을수만 있다면...

인체에서 가장 큰 기관은 무엇일까?  그 무게는 체중의 약 16%를 차지하고 총면적은 성인의 경우 신문지 3장을 펼친 넓이와 같은 피부이다.  피부는 온몸을 덮어 외부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체온을 조절해 주고 호흡을 하며 체내 노폐물을 배설하는 등의 역활을 한다. 피부에는 또한 체내 장부가 외부와 소통하는 반응점(경혈)이 있어서 장부의 상태가 피부에 나타나기도 하며 피부에 가해지는 자극이 장부로 전달되기도 한다.

 

한의학에서는 피부의 상태를 보고 병의 원인과 경중을 가늠하고 치료를 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의학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누군가를 만나면 피부 상태를 보고 "건강해 보이는군요"라든지, "기색이 좋지 않군요,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하고 되묻게 된다. 사실 노화의 표상도 피부의 주름이라고 하지 않는가?

 

자연의학에서는 피부를 매우 중요시한다. 인간은 두껍고 조밀한 섬유의 옷을 입고 있으며 온수 목욕을 하기 때문에 피부가 약하고 긴장력이 없다. 옷은 피부와 대기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노폐물의 배설을 가로막는다. 피부는 분비 기관일 뿐만 아니라, 파스처럼 붙이는 형태의 진통제에서 보듯이 흡수기관이기도 하다. 따라서 피부를 통해 배설된 노폐물이 공기에 의해 분해되지 않으면 다시 체내로 흡수되어 마치 밀폐된 방에서 유독한 공기를 폐로 계속 흡입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식물이나 동물에게 늘 덮게를 씌워 놓으면 어떻게 될까?  점점 약해져서 오래지 않아 죽게 될 것이다. 나체로 있으면서 두꺼운 담요를 덮었다 벗었다 하는 풍욕은 자연 의학의 자극과 반작용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살갗에 닿는 공기가 같은 온도의 것이면 인체에는 어떤 반작용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온냉이 교차하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신경중추는 대량의 혈액을 말단으로 보내어 혈류가 증가하고 노폐물의 배출 또한 증가하게 된다.

 

피부의 말단까지 혈행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노폐물이 피부에 쌓이게 되고, 피부 호흡이 원활하지 않으므로 호흡기 질환을 가져오며 일산화탄소의 배출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 암 등 난치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풍욕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것이 좋다. 20초 동안 나체로 있다가 담요나 두터운 외투 등으로 몸을 덮어 1분 동안 체온을 높인다. 그리고는 30초 동안 나체로 있다가 다시 1분 동안 몸을 덮는다. 이렇게 나체로 있는 시간을 10초씩 늘여나가 나체로 있는 시간이 120초가 될때 까지 하면 한 차례의 풍욕이 끝나게 된다.

 

건강을 위해서면 하루 1회 정도면 족하다. 풍욕은 옥외에서 하는 것이 최상이나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방안에서 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 잠들기전의 밤 시간이 한가로운데 실천의지가 따라 줄런지... 더 늦기 전에 훌렁 벗어서 님도 보고 뽕도 따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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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사항

 좋은 생활 습관으로 건강을 챙겨보시죠

첫째, 다리를 꼬고 앉지 마라.

다리 길이에 차이가 생기면서 체형이 바뀐다. 바뀐 체형에서 질병은 발생한다. 엉덩이가 바닥에 밀착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선 두다리가 겹치지 않도록 앉는 자세를 익혀야 한다. 건물의 기초가 튼튼해야 하듯 앉는 앉는 자세에 따라서 오장육부의 상태가 결정된다. 
 

둘째, 엎드려서 책을 보는 것은 좋지 않다.

의자에 앉을 경우엔 엉덩이를 바짝 붙인 상태로 발바닥은 바닥에 붙이고 보는 것이 옳다.  또한 척추를 바로 세우고 가슴을 내민 상태로 턱을 앞으로 당기고 작업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책이나 컴퓨터를 통해 얻는 정보 못지않게 잘못된 습관으로 깊어가는 체형의 변형을 생각 할 때이다.
 

셋째, 어깨와 가슴을 쫙 펴자.

가슴과 어깨가 앞으로 오그라들면서 체형이 무너진다. 엉덩이가 기초라면 어깨와 가슴은 건물의 대들보에 버금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의 몸은 소중한 내 영혼의 집이다.  그 집안의 살림살이가 온전하려면 자세를 바르게 가꾸는 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넷째, 쇼파에 누워 TV 보지마라.

무엇을 볼 때 눈높이보다 아래쪽을 향함이 눈의 피로를 경감시킴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일이다.  눈을 치켜 올려다 보거나 곁 눈질로 보는 것은 안구에 심한 타격이다.  옆으로 누우면 어깨가 늘어지고 척추까지 비뚤어진다. 또한 목에도 영향을 준다.  마음과 몸을 조고각하와 하심의 자세로 단련시켜 보자.
 

다섯 째, 낮은 베개를 사용하자

고침단명이란 옛말이 있다.  우리 몸 모두가 소중하지만 특히 목뼈(경추)의 역할은 지대하다. 어깨와 뒤통수의 사이를 자연스럽게 메꾸어주는 크기 이상의 베개는 심장에서 뇌로 가는 혈류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지키고 가꾸어야 할 것들이 오죽 많겠냐만은 지금 여기에서 사소한 것 같은 일상의 습관을 바꾸어 보자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 여기가 내 삶의 온전한 전부인데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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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이 1도 떨어지면

 신진대사는 50%가 감소한단다. 건강한 사람의 평균 체온은 36.5도 전후로 체온이 1도 낮아지면 신진대사는 50%나 저하된다고 한다.  게다가 암세포가 가장 증식하기 쉬운 것도 체온이 35도일 때로 이것은 엔자임의 작용이 약화돼 면역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인듯하다. 엔자임의 작용은 체온이 높을 때 활발해진다.. 감기 등 질병에 걸렸을 때 열이 나는 것은 몸의 면역기능을 높이기 위한 자위기능이다.  자연건강법에서는 물을 마실 때도 냉장고의 냉기가 있는 물보다는 일반 상온상태 약 20도 전후의 물을 마시도록 하는데 찬물을 마시게 되면 단숨에 몸을 차갑게하여 좋지 않다는 것이다. 온수와 냉수를 섞은 물을 음양보양탕이라며 물 먹는 방법으로 적극 권하는 의학자의 이론에 귀 기울이자.  헌데 몸을 차지않게 하는 것 못지않게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자.

                                                                지.  여.  처.  다

기에서 나의 주변에 있는 모든 존재를 음 만난 것 처럼, 시는 못 볼 것 처럼 대하자는 것이다.

 

지금이란 현재라는 시간속에서도 가장 나의 존재를 실감하는 바로 이 순간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과거란 이미 지나가서 없는 것이고 미래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없는 것이다. 과거에 얽매여서 또는 번뇌, 망상으로 소중한 현재를 놓치지 말자는 시간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우주가 생긴지 150억년이란다. 훌륭하고 유능한 많은 분들이 명멸했고 변화무쌍한 자연의 변천이 있었지만 지금 나의 이 순간보다 더 소중한 시간은 있을 수 없다.

 

 

여기란 나의 몸과 마음이 머무는 공간이다. 헌데 몸은 한정된 공간에 있으면서 마음은 온 우주를 헤메고 있지는 않는지? 걸어가면서, 사무실에 앉아서, 운전을 하면서도 지금 하고 있는 나의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나는 공간적으로 일정한 곳에 있으면서도 바로 여기를 잊고 사는 것이 된다. 머리속으로 제아무리 이상적인 공간을 그린다 하더라도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여기, 이 공간을 온전하게 느끼며 아름답게 만들지 않고서야 여기가 아닌 저기 저 푸른 초원은 욕심일 뿐이다.

 

존재가치가 없는 존재란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소중하다. 나의 잣대로 재단하는 칼질만이 문제해결방법일리 없다. 대상이 인간이든 동,식물이든 무생물이든 우열이 있을 수 없다.  누가 사람을 주인이라고 인정한 적이 있는가?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더불어 삶을 파괴하는 유일한 종이 인간말고 또 있기라도 한가?  지금 여기에서 만나는 모든 존재를 처음 만나는 것 처럼 따뜻하게 대하며 지금 여기에서 말고는 다시 못 볼 것 처럼 최선을 다해 보살피고 도울 수 있다면 나 이외의 존재 모두와 함께 몸과 마음의 체온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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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과 차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더하여 현대과학은 지구만이 아니라 태양조차도 우주의 중심에 있지 않다고 말해 준다. 우리은하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수천억 개 정도 되는 은하의 하나일 뿐이며 , 다시 태양은 우리은하안에 존재하는 수천억 개 정도 되는 별 중의 하나로서 우리은하의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는 별일 뿐이다.

 

지구는 태양계에 속해 있는 하나의 행성에 불과하며 인간은 파악할 수 조차 없는 수많은 생명체중의 하나일 뿐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은 우리와 함께 38억 년이라는 진화의 과정을 거쳐 온 장엄한 존재들이니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생명체가 경시되어선  안 된다는 경고를 진화생물학은 전해주고 있다.  인간이외의 모든 존재는 결코 정복의 대상이 아니며 앞으로도 공존해야 할 그리고 공존하여야만 하는 동반자들이다.      

 

흙 한줌, 풀 한포기, 창공을 나는 기러기와 물속의 작은 생명들도 아끼고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자세야말로 존재의 질서를 작으나마 지킬 수 있는 인간들의 몫이다.

 

이렇게 말하면 평등의 이치만 강조하였지 차별의 현실을 무시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평등한 이치속에서 차별의 사물을 보아야 하며 차별의 사물속에서 평등의 이치를 보아야 평등과 차별의 어느 한 편에도 속박되지 않는 지혜로움일 것이다. 차별만으로 보았을 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만 평등과 차별에 끄달리지 않게 되면 산은 물을 있게 하는 산이요 물은 산을 있게 하는 물이 되니, 같은 산이고 물이라 하더라도 차별상으로만 보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산이 물이 되거나 물이 산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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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풀 뜯어먹는 소리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 ?

              이것이 모든 창조의 시작이자 내 인생을 결정하는 순간입니다 -

 

마음엔 집착을, 몸속엔 숙변을 제거할 때 건강이 나를 반길겁니다. 특히 음식문화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는 것이 몸과 마음을 맑히는가 보다는 혀의 취향과 포만감을 즐기기에 급급하였던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였을까요? 편식과 과식은 우리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입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두 도움이 될것이란 착각에 빠져 있지는 않았었는지요? 주먹만한 위장에다가 그 몇배를 투입하고도 오장육부가 편하시길 바라시나요? 돈도 권력도 명예도 음식도 채워서 쌓이면 부패하고 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할 수 밖엔 없지요. 비우고 또 비워야 합니다. 몸과 마음의 비움을 통해 여유로움과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 채워보심은 어떨까요?

 

숙변이란? 묵은 변, 오래된 대장 벽의 유착물, 찌꺼기등으로 표현가능하다. 즉 숙변은 하수도의 관이 낡고 녹슬어 관벽에 이물질이 붙어있는 것과 같이 대장에 변이 정체된 것을 말한다. 육식과 지방질 과다의 식사는 장에 자극을 주고 배출을 어렵게 한다. 대장이 늘어지고 부풀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여 변이 정체된다. 찌꺼기가 쌓여 부패하고 거기서 나오는 독소로 인하여 신경이 마비된다. 숙변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숙변제거에 탁월한 갯벌의 함초는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한 보배이다. 텅빈 충만의 진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살찌울 것이다.

 

"음식공급이 중단되면 배고픔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숨겨진 놀라운 기능이 작동하게 되는데 간에 쌓인 노폐물과 독소가 제거되고, 피하지방이 소모되며 근육의 일부도 감소한다. 그러나 심장, 혈액, 뇌,신경은 놀랍게도 정상적으로 유지된다. 단식은 몸을 정화시키고 조직을 개선하며, 독소를 배출하는 놀라운 기능을 한다." -노벨의학상 수상자. Dr. Alexis carrel -

 

生命과 生死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 本無實 生死去來 亦如然

생은 어디에서 왔으며 죽음은 어디로 가는가. 생이란 한 조각의 구름이 뜬 것과 같고 죽음은 그 한 조각의 구름이 없어진 것과 같다. 일어난 구름 스스로는 본래 실다움이 없다. 生死도 이와 같다. 구름이 일어나고 없어짐에 따라 물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명에는 두 가지 필수 조건이 있다. 대사능력(代謝能力)과 복제능력(複製能力)이 그것이다. 대사능력이란, 생존을 위한 에너지의 생산과 회전을 말하고, 복제능력이란, 종족번식을 위한 생산능력을 말한다. 생명이란 결국, 어떤 원소(物質)들이 어떻게 만나, 어떻게 서로 반응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일종의 상태이며 현상인 것이다. 늙고 병든다는 것은 생명현상의 시스템이 변화하는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 역시 변화의 과정중 사망이라는 절차를 경유, 본질인 물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29종의 원소로 구성된 물질이다. 프로판에 불을 붙이면 연소한다. 그러나 불이 있다고 타는 것은 아니다. 연소 한다는 것은, 프로판과 산소가 결합 한다는 뜻이다. 프로판 분자를 구성하는 탄소와 수소는 연소(死亡)의 과정을 거쳐,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인간의 죽음은 생노병사라는 과정을 거쳐, 본래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에너지의 운동과 변화의 모습일 뿐이다.

 

인간의 체질이나 성격형성은 유전자의 기능만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수정된 세포는 분열(성장) 과정의 정보와 영양상태에 의해서 결정된다. 난자와 정자. 그들은 새로운 생명으로 시작하고, 또한 인식과 의식도 새롭게 시작된다. 태아는 어머니의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자란다. 부모들의 감정과, 주변 환경은 태아들의 유전자에 정보를 전달하고 성격을 형성한다. 어머니의 감정 즉, 공포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즐거움 같은 감정은 유전자에 정보로 작용하고, 잠재의식에 기억되어 인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자궁 속의 태아는 산모로부터 전달되는 영양분, 산소, 호르몬 등 생리학적 조건에 적응하기 위하여 태아의 조절 시스템을 미세하게 변조하게 되며, 이렇게 결정된 태아의 삶의 질서가 프로그램되어 성인이 된 뒤 건강을 지배한다. 태교가 태아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환경은 정보를 유발시키고 유전자는 정보에 반응하며 마음을 만들고 마음은 행동을 만든다. 그리고 행동은 다시 환경을 만든다. 좋은 환경은 좋은 정보를 유발하고 좋은 정보는 좋은 기억을 저장하고, 좋은 정보와 좋은 기억은 좋은 마음으로 반응한다. 내적정보란 유전자의 기존기능과 뇌세포에 기억되어 있는 정보를 말한다. 그리고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접촉의 오감(五感)을 통하여 들어온 새로운 정보를 외적정보라 한다. 이러한 내외 정보가 상호 작용하여 정신 또는 마음이라는 반응현상을 유발시킨다. 상생호발의 시스템인 것이다. 건강한 삶이 영위되기 위해선 출생과정의 정성스러움, 그리고 출생이후 오감을 통한 좋은 정보를 끊임없이 유전자에 입력시켜야 한다.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나듯. 나의 미래는 내가 만드는 것. 운명이니, 숙명이니, 누구의 뜻이니...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자.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100여개의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은 본질적으로 에너지라는 동질성이다. 우주는 극미세계에서, 거시세계인 거대우주에 이르기까지 알고리즘으로 짜여진 치밀한 시스템이다. 단세포 생명체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 하나하나가 개체이면서, 전일성(全一性)인 우주의 한 부분이다.

 

한개의 유전자에 생명의 전체비밀이 온전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즉 일미진중 함시방(一微塵中 含十方)이다.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다르지 않다(不異)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는 동물이나 식물이나, 벌레나 인간이나 동일형이다. 인간은 "인간만이 인식하고 사고한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의식이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성질이 있다.

원자는 핵과 전자가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100여 가지의 원자가 된다. 생체를 구성하는 물질 즉, 바이러스나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그 구성물질은 모두가 같다. 핵산(核酸)과 단백질, 그리고 당질과 지방을 생체를 구성하는 4대물질이라 한다. 모든 생명의 구성물질이 같다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본질은 결코 하나(不二)라는 것이다. 온 곳도, 돌아가야 할 곳도...

이것은 모든 생명이 하나의 생명체로부터 진화 되어 현재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어찌 상대적 분별로 시기, 질투, 증오한단말인가? 풀 한포기, 개미 한 마리까지도 나의 또다른 모습일진데...

 

인간은 눈과 귀 그리고 맛과 냄새와 촉감으로 들어온, 오감의 정보에 의한 경험을 통하여 의식하고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감으로 인지되지 않는 바깥세계를 알 수도 없고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계와 그 현상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존재의 본질을 알기엔 절대부족인 오감의 능력에 의존해 시비, 선악, 증애의 놀음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미완성인 현대물리학의 성과조차 우리의 삶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원자를 포함한 모든 물질의 본질이란 에너지의 다른 모습이다. 쿼크의 수준으로 내려가면 물질은 그 본색인 파동(波動)과 물질(物質)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원자란 화학적 방법으로는 더 이상 분할 할 수 없는 물질의 기본입자인데 그것의 크기가 운동장만 하다면, 원자핵은 골프공 정도이며, 전자의 크기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다. 전자는 원자핵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돌고 있기 때문에 관찰할 수 없을 정도이다. 미시세계에서는 물질은 없다. 결국 모양이 있는 모든 존재의 본질은 공이다.(色卽是空,空卽是色) 이것이 현대과학에 의해 밝혀진 물질의 본질이자 존재의 실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온갖 것에 집착하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갈등하고, 화내고 그래서 우리의 삶을 우리 스스로 황폐화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어떻게 살 것인가? 중도(中道)는 중간(中間), 또는 중용(中庸)이 아닙니다. 중도는 시비선악(是非善惡) 등과 같은 상대적 대립의 양쪽을 버리고 그의 모순, 갈등이 상통하여 융합하는 절대의 경지입니다. 이것은 평면적인 절충점으로서의 적당한 중간지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양극단, 또는 대립되는 상대적 위치에 얽매이지 않고 존재의 본질이 공(空)임을 인식, 어느 것에도 끄달리지 않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계를 구성하고 있는 근본 요소인 에너지와 질량을 얼마전까지만해도 서로 다른 두 개의 존재로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에너자와 질량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일체(一體)에서 에너지가 질량이며 질량이 에너지임이 입증되었으니 이것 역시 중도의 한 원리입니다. 자연계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가 제각각으로 보이지마는 사실은 모두 일체입니다.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세계가 우주의 본래 모습인 것입니다.

 

나의 잘못을 생각지 않고 남의 잘못만 생각하는 자는 어느 곳에 가더라도 시비가 그칠 새가 없어 자신의 성품 때문에 항상 괴로워지는 것이니 모든 현상을 우주적인 나(大我)의 문제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미워서 용서하지 못 하겠다?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 사람으로 인해서 좌지우지 당하는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용서하지 말아야 할 것은 상대방이 아니고 나 자신입니다. 나는 전도몽상(顚倒夢想)속에 인생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지는 않는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내고 그래서 이성적 판단을 놓치지는 않는지, 어려운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지, 오늘 내가 존재하기까지 각각의 인연으로 화합하여 준 자연환경을 훼손하고 있지는 않는지 등등...이야말로 스스로 용서해선 안 될 입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갈등과 괴로움이, 순수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행복과 즐거움이 그를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미움과 원망, 증오의 마음을 느낄 때는 그럴 만한 과거의 기억과 그에 대한 집착이 반드시 따르게 마련입니다. 과거에 얽매이는 집착심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에까지 증오와 원망을 그대로 가져와 현재에 투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결코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과거와는 전혀 새로운 온전한 ‘지금 여기’의 현실일 뿐 과거에 얽매인 기억들로 현실을 투사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온전히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순간 순간 온전히 새로운 현재를 살 수 없게 됩니다. 과거는 흘러가서 이미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집착과 얽매이는 마음을 놓아버리고 쉴 수 있어야 상대를 치우침 없는 정견(正見)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고 그랬을 때 미움과 사랑이 투사된 대상이 아닌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원망스런 마음과 미운 마음이 내 안에 있다면 그 마음이 근본이 되어 앞으로 펼쳐질 나의 미래는 원망스럽고 증오로 가득찬 미래가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늘 새로움의 ‘지금 여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확실히 보장받는 미래의 밝은 내 모습일 것입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상대는 ‘미운 사람’ ‘좋은 사람’이 아닌 그저 지금 이 순간 전혀 새로운 ‘사람’일 뿐이라고 느껴야 합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수식도 바람직한 것만은 못됩니다. 대상을 좋다고 분별해 버리면 벌써 좋고 싫은 두 가지 상대적 마음의 굴레에 나를 가두고 미움의 싹을 남겨 놓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막증애(但莫憎愛)하면 통연명백(洞然明白)이라.’ 오직 ‘지금, 여기’에서 ‘나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깊이 살피고 또 살피어 존재의 본질과 함께하시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입니다.

 

더불어 삶을 위한 실천과제를 만들어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라는 不二의 정신으로... 턱없이 부족한 놈이 주접을 떠는 것은 아직 제 수준이 이러하다는 반증이오니 몽둥이론 어깨만을 때려주소서.  일진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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