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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2/15
    자기만의 방
    참게
  2. 2005/02/15
    거짓말과 상상력
    참게
  3. 2005/02/15
    내 안의 금
    참게
  4. 2005/02/15
    프롤로그
    참게
  5. 2005/02/15
    이중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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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2/15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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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1/24
    끝나지 않는 숙제
    참게
  8. 2005/01/24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참게
  9. 2005/01/20
    전갈자리와 게자리
    참게
  10. 2005/01/20
    누가 전갈자리냐구?
    참게

자기만의 방

○블랙백                      (자막)  자기만의 방

 

-내 방 스케치
-문 틈으로 작업하는 나, 노트에다 뭔가 적고있는 나

 

(N) 나를 가로막고 있었던 또하나의 벽은 여성이라는 조건이었다.  나는 20년 동안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왔지만, 마흔 여덟살이 되어서야 나만의 방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나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의 개념 대로 한다면 나는 아직도 불완전한 방을 갖고있는 셈이다.  경제적인 기반이 너무 허약하기 때문이다.  나는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는다면 나에게 허용된 자유는 굶는 자유 뿐이다.

 

-결혼식
-엄마와 대화하는 나

 

(N) 나는 5년 전에 이혼했고, 1년 반 전에 재혼했다.  지금은 재혼한 남편과 친정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가부장제 아래서의 결혼 시스템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딸들처럼 그런 인식은 엄마의 인생을 바라보면서 저절로 생겨났다.

 

-오디오만, 나루 (현장음) "행복하기 위해서 누군가 희생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했거든...."

 

-나, "응, 나두 그랬어....우리집도 엄마가 다 희생하고 그랬거든....엄마가 남 몰래 흘린 눈물은 강을 이루고도 남았어...저렇게 한 여자를 불행에 빠트리고 얻은 한 가정의 평화라는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런 생각 했거든....

 

-내 방 창문에서 내다 보이는 숲의 모습
-수진이와 나의 사진 액자
-수진이 모습

 

(N) 혼자 있는 시간, 혼자 있는 공간, 돈이 없기 때문에 불완전하긴 하지만 나의 방을 확보한 이후로 나는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평화와 여유를 알게 됐다. 
나에게는 딸이 있다.  스물 두 살, 여전히 가부장제의 틀 속에서 살아가야 할 여성.
내가 재혼하게 되면서 그애는 스무 살에 혼자 살게 됐다.  그애 역시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기만의 방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인터뷰 "그래서 그런 상처를 갖고 있는 애한테 다시 또 엄마하고...그애가 결혼하거나 그런 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또 엄마하고 헤어지게 만들었다...라는게 정말 마음에...괴로웠었지...사실 혼자서 막 울고 그랬었어. 수진이 생각하고 딱 해서....아직 어린데 사실 엄마에게는 자식이 늙어도 어린 것처럼 보이잖아...아직 어린데 실제로도 아직 어린데...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어린애같은데 혼자 떨어트렸다 그런 생각 때문에 참 혼자 많이 괴로워했었지...울고....지금두 막 생각하면 마음이 막 무겁고 마음이 쓰리고 그럴 때가 있거든....수진이가 아프거나 어떤 괴로움이 있어서 나한테 호소를 할 때 말도 못하게 마음이 아프지....인생을 복잡하게 만들어서 자식에게 굉장히 큰 짐을 지웠다 이런 생각도 들고...나한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죄책감으로 남을 것 같애...죄의식으로."

 

-입 벌리고 있는 얼굴 클로즈업

 

(N) 딸이 열살이었을 때 나 혼자가 되기 위해 가출한 적이 있었다.  그 죄책감에다 재혼하면서 성년이 되자마자 딸을 혼자 살게 했다는 것에 대한 마음의 부담은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 

 

-내 방에서 작업하는 나

 

(N) 나의 여성으로서의 삶은 내 방 안에서도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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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과 상상력

○ 블랙백                   (자막) 거짓말과 상상력 

 

-잠 자고 있는 모습
-이미지 영상

 

(N) 내 무의식의 창고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나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종종 기억을 날조한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어떤 사건, 어떤 상황을 내가 믿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그래온 오래된 습관이다.  나는 거짓말을 잘한다.  사람들은 나더러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한다.

 

-다이어리 살펴보는 나

(현장음) "날마다 일기를 쓰는거예요?" "최근 들어서....다 잊어버려...그래서 적어놓잖아...일기보다도 메모야....요즘 들어서 길게 쓰지..."

 

(N) 나는 날조된 기억에 대한 알리바이조차 만들곤 한다.

 

-노트 보여주는 나

 

(현장음) "나는 이런 노트가 많아...일기도 아니고 그때 그때...최근에는 노트북에다 쓰고...이런데다 잘 안 쓰니까...."

 

(N) 가끔 나의 거짓말은 상상력과 혼동되고 허구와 창작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인터뷰 "나는 파트너가 있어도 항상 자위을 해왔거든....옛날이나 지금이나...파트너가 없던 어린 시절부?나는 줄곧 자위를 해왔기 때문에 나에게는 전혀 낯선 게 아니고....그 성적인 욕구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안전하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아무한테도 해를 미치지 않잖아....물론 파트너가 기분 나쁘게 생각하고 화를 내는 경우가 있어...알면....기분 나쁘게 생각하면 모르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이해시키면 더 좋고 그렇게 생각하거든..."

 

-금금 작업일지 노트

 

(N) 나의 진술은 사실일까?  사실이다.  그러나 내 일기나 노트의 어느 한 구석에도 그런 이야기는 들어있지 않다.
기억을 날조하는 이유는 나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또 하나는 현실에서 넘지 못하는
금기를 넘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인터뷰"내가 지금 이 작업을 하려던 이유 중의 하나도 내가 그렇게도 넘지 못하는 벽, 넘지 못하는 선은 무엇일까 그걸 탐구해보고 싶었어....내가 저 사람 만나서 나보다 더 개방적이고 나보다 더 열려있다고 생각하고 놀랐거든.....40이 넘을 때까지 나는 내 성기를 본 적도 없었어...볼려고도 하지 않았고....막연한 혐오감을 갖고 있었던거야..."

 

-노트북 앞에서 작업하는 나
-'세계도시...' 스탭 스크롤

 

(N)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면서 많은 글을 썼지만 제대로 된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20년 동안 작가로 불렸지만 나는 어디서도 내가 작가라고 떳떳하게 말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상상력이 아니라 거짓말로 세상을 살아왔다는 자괴감을 느낀다.
나의 거짓말은 나 스스로 원하는 인생이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가장 유용했다.

 

인터뷰"내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와 같은거야...허위의식을 넘지 못해..  +  그것이 나의 거짓 이미지라는 걸 알았지만 그걸 고수하려고 했었어...직업,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남편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직업 있고, 아이 잘 키우고, 소위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한 캐리어 우먼이다, 이런 나의 이미지....난 그걸 지키려고 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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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금

○ 블랙백        (E)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 블랙백                  (자막) 내 안의 금

 

인터뷰 "쁘띠 브르조아들이 갖는 견고한 윤리의식이 있거든...열린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그게 안돼....창조하는 것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건데 기존의 가치에 너무 얽매여 있기 때문에 그게 안되는거야...나는 그렇게 생각하거든..."

 

-나루, 자혜, 영심 회의 모습
-카메라 들고 작업하는 나
-우리 집에 모여서 이야기하는....
-우리 집 스케치

 

(N)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다.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얼마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나는 카메라 앞에서 얼마나 정직해질 수 있을까? 
영화는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인터뷰 "우리가 진실을 알기 위해서 이 작업을 한다고 그러는데 우리는 이 작업을 하는걸 의식하고 있으면서 얼마나 정직하게 토로할 수 있으며 끄집어낼 수 있을까...청소할까 했는데 안했어....누가 온다는데 청소 안하는건 정직한 걸까...의식한다는걸 의식한다는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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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내가 쓴 소설들 (육필원고 + 타이핑한 원고)  
-신춘문예 당선 기사 + 활자화된 원고

 


 

(N) 나는 서른 여섯 살에 등단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소설을 쓰지 못했다.
    내가 문학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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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성2

사람은 누구나 이중성을 갖고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말은 사실일까?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정도의 차이라는게 아주 엄청날 때는 자칫 이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다.   지극히 이중적인 인간, 위선의 도가 지나친 인간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만한 혐오감을 갖는가?   

그리고 사람은 자기 자신이 얼마만큼 이중적인 사람인가에 대해서 스스로 잣대를 가질 수 있을까?

거의 어려운 문제다. 

나는 내가 얼마나 이중적인 인간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정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알고있는 아무개는?  또 아무개는?   그것은 더 알 수 없는 일이고 장담할 수 없는 문제다.

이중적인 잣대로 세상을 보는 일, 그것은 오랫동안 습성화되어 굳어버린 습관이라 할 수 있고....

 

투명한 사고란 지성보다는 감성의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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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성

어제도 후배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이중성에 대해서 문득문득 의식을 했다.

가끔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쳐 심정이 말할 수 없이 답답해서 호소를 해오는 사람이 있을 때 나는 그럴 듯한 태도로 그런 사람들을 위로해 주곤한다.

내가 취하는 태도는 가장 공정한 체하기, 만사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듯 초연한 체하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예언자연하기, 가엾은 중생이여 하며 불쌍해 하기 등등인데 그런 말들을 하면서 내심으로는 끊임없이 '흥,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나서...너 자신도 아직 하나도 극복 못한 것들이잖아...'하면서 나 자신을 비웃는다.

한 마디로 말해서 참.....복잡하다.

자기가 왕따를 당하고 이 사람 저 사람한테서 싫은 소리를 듣는데 왜 그런지를 모르겠다.  그럴 만한 아무 이유도 없는데 그런다는게 그 애의 하소연의 요지였다.

사실 그애의 말이 액면 그대로 다 사실인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나는 그애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애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할 만한 근거도 전혀 없다. 그런데도 나는 그애의 말을 다 믿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사람들이 싫어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애한테는 그런 말을 비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애의 하소연을 별로 들어주고 싶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나의 예의 그 '...연하는' 습성 때문에 잘난 체하면서 그애의 말을 들어주고 충고까지 해주고 있었다.

나는 내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남의 곤란을 들어주고 충고하기를 즐기는 나의 이중성을 혐오한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즐기는 일 중의 하나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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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숙제

영원히 끊내지 못한 숙제가 몇가지 있다.

국민학교 때의 방학숙제를 포함해서.

'금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방학숙제 같은 경우는 그래도 괜찮았다.

한대 맞고 잊어버리거나 - 사실 맞기 전까지가 초조하지 막상 맞고나면 별거 아니다.

걱정한 것이 억울할 정도다 - 또 몇번은 방학이 끝나고 전학을 했기 때문에 참 홀가분하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  성격 이상하게 그전 학교의 방학숙제를 갖고 오라고 하던 선생이

하나 있었는데 나는 미소로 답했을 뿐이다.  뭐 끈질기게 추궁할 정도로 이상하진 않았다.

 

허나 '금금'은 그게 아니다.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다.

심지어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
참 골치 아프다.

내가 왜 이걸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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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애가 말한 요지는 그거였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것...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정말 당황스럽다.

사십구년 동안 살면서 늘 해오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야 나는 왜 사는지 대답을 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거꾸로 왜 사는지 알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기 때문이다.

대개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는게 내가 최근에 발견한 사실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살더라도 그의 목표가 개인적인 욕망의 성취보다는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없더라도 영향을 미치겠다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일, 그런 일들을 하고 있을 때 사람은 삶의 허무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내가 최근에 발견한 사실이 그것이다.

물론 왜 사는지 묻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근본적으로 의미있거나 가치있는 삶이란.....허위에 도전하는 삶이 아닐까?

 

미셸 푸코....우리의 인습, 제도가 완전히 자의적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를 억압하고 우롱하는 체제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실체를 폭로하고,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  내가 저술작업에서 할 일도 바로 그런 것이다. 

 

살면서 끊임없이 부딪치는 우리를 둘러싼 허위와 모순들,

그런 것들에 대한 도전....그런 것들을 뒤집어엎고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내가 하지 못했던 것....

어쩌면 예술이라는 것, 창작이라는 것을 그런 의욕을 가지고 할 수 있었다면

나는 내가 사는 이유를 묻지 않고도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물론 보다 더 소박하게, 직접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

험하고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고 봉사한다는 의식 조차 없이 당연하다는 듯

우리가 사는 사회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은 나에게는 더더구나 도달할 수 없는 꿈같은 일이다.

너무나 이기적인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이나 영화로 허위에 도전하는 일 같은 것은 정말이지 일찌기 내가

뜻을 두었으면 할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나는 왜 뒤집어엎어버리는 일에 그토록 관심이 없었을까?

그렇게 많은 삶에 대한 불만이나 회의를 오히려 에너지로 삼을 수도 있었을텐데.

 

주변을 돌아보면 허위에 도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지금은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자의적으로 주어진 시스템에 도전하기 위해서

산다고 한번 말해보고 싶다.  물론 아직 그렇지는 못하지만.

어떻게 살면 좋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네 주위에 네가 부수어야할 허위가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그 허위를 부수기 위해서 살아보면 어떠냐고 말하고 싶다.

 

이제 와서야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

이데올로기란 이데아란 어떤 경우에건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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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자리와 게자리

      ≫ 조화를 중시하는 최상의 커플.
             전갈자리와 게자리는 기본적으로 개성이 같아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이런 감정을 지속시켜 나간다면 결혼으로 골인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커플이 바로 두 사람입니다.
          게자리는 외모보다는 내면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당신은 그의 요구에 맞춰야 합니다. 당신의 신비한 매력을 외모보다는 지적인 면으로 충족시키라는 것이죠. 당신은 가끔 감정적이 되면 균형을 잃기가 쉬운 사람입니다.  이 점만 주의한다면 게자리와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을거예요.

      ≫ 강렬한 질투심이 최대의 적.
             게자리는 감정적이기 때문에 쉽게 화를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게다가  기분이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너무 극단적이기 때문에 당신은 종종 감을 잡기 어려울 거예요. 더 큰 문제는 게자리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기 때문에 당신의 강한 질투심을 자극한다는 점입니다.  친구가 많은 게자리를 당신은 용납하기가 어렵습니다.  게자리를 이해하는 아량을 넓힌다면  게자리는 당신을 더욱 소중히 여길 거예요.  게자리는 일단 결혼하면 가정에서 안정감을  찾는  사람이기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하면 분명 재물 운이  따를 것이며,  자식복도 많을 거예요. 그러니 쓸데없는 질투로 서로의 감정을 파괴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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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전갈자리냐구?

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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