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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저번제사 지나갔네 두달만에 명절이네
내눈내가 찔렀다네 어디가서 말못하네
할수없이 그냥하네 스바스바 욕나오네
지갑열어 돈냈다네 중노동도 필수라네
제일먼저 두부굽네 이것쯤은 가비엽네
냄비꺼내 탕끓이네 친정엄마 생각나네
이제부턴 가부좌네 다섯시간 전부치네
부추전은 쉬운거네 스물댓장 구워냈네
배추전은 만만찮네 이것역시 구웠다네
동그랑땡 차례라네 돼지고기 두근이네
김치전도 굽는다네 조카애가 먹는다네
기름냄새 진동하네 머리카락 뻑뻑하네
허리한번 펴고싶네 한시간만 눕고싶네
그래봤자 얄짤없네 입다물고 찌짐굽네
남자들은 티비보네 뒤통수를 노려봤네
주방에다 소리치네 물떠달라 난리치네
속으로만 꿍얼대네 같이앉아 놀고싶네
다시한번 가부좌네 음식할게 태산이네
꼬치꿰다 손찔렸네 대일밴드 꼴랑이네
내색않고 음식하네 말했다간 구박이네
꼬치굽고 조기굽네 이게제일 비싸다네
맛대가리 하나없네 씰데없이 비싸다네
남은것은 장난이네 후다다닥 해치우네
차례상이 펼쳐지네 상다리가 부러지네
밥떠주고 한숨쉬네 폼발역시 안난다네
음식장만 내가했네 지네들은 놀았다네
절하는건 지들이네 이내몸은 부엌있네
차례종료 식사하네 다시한번 바쁘다네
이내손은 두개라네 지들손은 정말많네
그래봤자 내가하네 지들끼리 먹는다네
부침개를 썰어놓네 과일까지 깎아놓네
이제서야 동서오네 낯짝보니 치고싶네
윗사람이 참는다네 안참으면 어쩔거네
손님들이 일어나네 이제서야 간다하네
바리바리 싸준다네 내가한거 다준다네
아까워도 줘야하네 그래야만 착하다네
남자들도 일한다네 병풍걷고 상접었네
무지막지 힘들겠네 에라나쁜 놈들이네
손님가고 방닦았네 기름천지 안닦이네
시계보니 새벽두시 오늘아침 출근이네
피곤해서 누웠다네 허리아파 잠안오네
뒤척이다 일어났네 욕할라고 일어났네
컴터켜고 글쓴다네 그래봤자 변함없네
다음제사 또온다네 그때역시 똑같다네
짐싸갖고 도망가네 어딜가도 살수있네
아들놈이 엄마찾네 그거보니 못가겠네
망할놈의 제사라네 조상들이 욕하겠네
그렇지만 힘들다네 이거정말 하기싫네
명절되면 죽고싶네 일주일만 죽고싶네
이십년을 이짓했네 사십년은 더남았네
보 왕 삼 매 론
1.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2.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3.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4. 수행하는데 마음에 마(魔)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모든 마군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5.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데 두게 되나니,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6.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
7.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써 원림을 삼으라.’
8,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덕 베푼 것을 헌신처럼 버리라.’
9.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겨나나니, ‘적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
10.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하는 것이요, 통함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히는 것이니,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저 장애 가운데서 보리심을 얻으셨느니라.
저 ‘앙굴마라’와 ‘제바달라’의 무리가 모두 반역된 짓을 했지만, 부처님께서는 모두 수기를 주셔서 성불케 하셨으니, 어찌 저의 거슬리는 것이 나를 순종함이 아니며, 저가 방해한 것이 나를 성취하게 함이 아니랴.
“억새풀같이 살고 싶어서요.”
이상하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최상길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지나가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데 욕심 더 안 부리겠어요. 나는 길을 걷는 게 좋아요.”
“전도사업을 계속하겠다 그 말이오?”
“당장은, 그렇지는 않아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당신이 말하던 그 할머니, 그곳에서 심경이 변한거요?”
최상길은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이고 나서 물었다.
“그런 점도 있겠지만... 그 할머니 사시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은 것은 사실이예요. 그 분은 자신의 불행까지 사랑한다고 할까, 천지만물 모든 것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았어요. 겨울 긴긴 밤에 목화씨를 발가내면서도 밥을 짓고 아궁이에 솔가지를 뿐질러 넣을 때도, 아들에게 옷을 갈아입힐 때도, 그 정성이 하나의 의식같이 보이는 거예요. 할머니 자신도 조금도 의식하지 않았지만 말이예요. 나도 저와 같이 시간을 가득하게 살아보고 싶다 그런 생각 여러 번 했어요. 싱그런 풀 같고 흐르는 강물같이, 뭐라 설명이 안 되지만.”
-토지, 제5부, 4권
삶이란 도판에 그려놓은 공식은 결코 아니었다. 삶의 신비는 개인이 어떤 생활의 방식을 취한든 무궁무진하며 끝이 없는 것이었다. 나무토막과 칼을 내어놓고 이것은 칼이다, 이것은 나무토막이다, 칼은 나무토막을 자를 수 있다. 이것은 매우 명쾌한 설명이며 가르침일 수는 있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그 한 곳에만 쏠리는 지식의 허약성, 균형의 파괴, 지감은 이범호의 오류를 그런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토지, 제5부, 5권
“밤낮으로 정성을 다하여 장롱 하나를 만들어놓고 나면 배가 고프다 했지요? 그 배고픔은 위장에서 오는 것이 아닌 마음에서 오는 배고픔이라 했소.”
“그런 말 한 것 같소.”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것도 쟁이받이의 얘긴데, 큰일을 하나 끝내고 나면 설움이 왈칵 솟는다 하더이다. 왜 그럴까요?”
“글쎄올시다... 인연이 끊어지니까 그런 것 아닐까 싶은데... 떠나야 하니까요.”
“무슨 인연?”
“물(物)과의 인연 말입니다.”
“물과의 인연!”
“그렇소. 정성을 다할 때 그것은 하나의 인연이요.”
지감은 골똘히 생각하는 눈빛으로 병수를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았다.
“왜 그같은 인연을 맺는거요? 밥벌이나 하면 됐지.”
어리석은 말이라 생각하면서도 뭔지 모를 분노 같은 것을 느끼며 지감은 쏘아붙이듯 말했다.
“소망 때문이겠지요.”
“소망?”
“예.”
“무슨 소망?”
“한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한 물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뭐 세속적인 욕망하고는 다른 것 아닐까요? 절실한 것... 사람들의 절실한 그 소망은 대체 무엇일까요? 근원에서 오는 절실한 그것 말입니다.”
“그걸 나한테 묻는거요?”
“지감께서도 그 절실한 것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한평생을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았습니까?”
“헛 산 것이지 방황이라 하기도 민망하지요. 이건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어 있는 것도 아니며 서서히 묻히면서 퇴물이 되어갔다. 그게 오늘날 조선의 소위 반가(班家)라 이름 붙은 자손들 말로가 아닌가요? 나야 세상사와 하직을 했고 천만다행, 조형은 변신하여 쟁이받이로 회생했으니.”
가닥이 다른 말을 읊조리다가 지감은 무슨 까닭인지 씩 웃었다.
“그래, 그래서 조형은 그놈의 물과 인연을 맺으면서 소망을 이루었소?”
역시 우문이었다.
“아니지요. 애당초 이루기 위해서라기보다, 뭐랄까요? 소망을 위탁했다, 하하핫핫... 뭐 그런 것 아닐까요?”
“이루어지지도 않을 소망을 위탁하면 뭘 하겠소.”
그 말은 물론 지감의 진심은 아니었다. 그는 조병수를 결코 예사롭게 보아 오지 않았으니까. 다만 지감은 말의 흐름을 탔을 뿐이다.
“불구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꽃을 찾아 날아 다니는 나비같이 살았을 것입니다. 화려한 날개를 뽐내고 꿀의 단맛에 취했을 것이며 세속적인 거짓과 허무를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내 이 불구의 몸은 나를 겸손하게 했고 겉보다 속을 그리워하게 했지요. 모든 것과 더불어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는 물과 더불어 살게 되었고 그리움 슬픔까지 그 나뭇결에 위탁한 셈이지요. 그러고 보면 내 지난 시간이 그리 허술했다 할 수 없고 허허헛헛.... 내 자랑이 지나쳤습니까?”
지감의 아픈 곳이 바로 그것이었다. 또 병수에게 경애심을 갖는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토지, 제5부 5권-
1994년 집필을 시작한지 25년만에'토지'가 완간되자 KBS에서 특집다큐멘터리를 기획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일을 맡게 된 것은 나에게는 그야말로 흥분되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교양 프로그램 구성작가, 방송작가라는 이름이 주는 프리미엄 중의 하나다.
박경리를 만나러 원주에 가기 전날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매료시켰던 '토지'. 그것은 단순히 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무엇인가를 품고있는 거대한 산맥이었고, 보물창고였다. 나는 물론 서희나 길상 같은 인물도 좋아했지만 원색적인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면서 힘들고 거친 인생살이를 헤쳐가면서도 인간다움을 잃지않는 수많은 백성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용이, 월선이, 강청댁, 임이네, 두만네, 막딸네, 윤보, 주갑이, 봉기...... 선하면 선한대로 악하면 악한대로 그들은 나에게 너무나 생생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왔으며 그 소설을 읽는 동안 마치 내 옆에서 함께 숨쉬며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박경리를 만나면서 나는 그가 그런 소설을 써낸 것이 당연할 만큼 대단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25년간의 '토지' 집필은 그에게는 일종의 수행이었으며 그는 이미 해탈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당연히 그에 대한 프로그램은 객관적이고 뭐고 하는 수식이 필요없이 작가와 작품에 대한 경애와 찬사로 일관했던 것 같다. 물론 문학적으로는 엇갈린 평가와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때 그 프로그램을 만드는 나와 피디의 심정은 그저 이 노 작가에 대한 존경과 찬탄 그 자체였고, 그 까다로운 방송사의 간부들조차 아무런 시비를 걸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방송에서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을 가지고 주제넘게 그의 문학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우스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저 이 기념할 만한 사건에 대한 보고와 우리 문학의 한 위대한 작가에 대한 치하, 그거면 족하다는데 모두다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이전, 그리고 그 당시 '토지'를 탐독했고, 프로그램이 끝난 뒤 다시 한번 완독을 했는데도 워낙이 긴 소설이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버린 대목이 많았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세번째로 '토지'를 드라마화한 걸 보면서 생각이 나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1,2, 3권을 읽던 중 갑자기 올케가 와서 자기가 읽겠다면서 10권까지 가져가버렸고, 나는 11권, 그러니까 후반부를 다시 읽게 되었다. 간도에서 평사리로 돌아온 서희와 식민지 시대의 농민과 노동자, 지식인, 독립운동에 투신한 사람들, 밀정과 변절자 등이 시대의 격랑 속에서 갈등과 굴절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모습들이 그려져 있다.
대하소설의 가장 큰 약점은 초반에 조성해 높은 작품의 긴장감과 밀도를 끝까지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나는 그런 약점을 극복한 소설로 '태백산맥'과 '토지'를 꼽는다. 조정래의 다른 소설들과 최명희의 '혼불'같은 소설은 그런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암튼 후반부를 읽으면서도 나는 역시 이 소설에 깊이 매료되었고, 여유를 가지고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우리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인간의 삶의 의미를 곰곰히 되씹어보면서.
어떤 주제나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쓰려고 할 때 자주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
경직된 사고 때문인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바로 그 유연성 부족을 느껴왔다.
그런데 요즘은 경직이 도를 넘어서 사고가 정지되어버린 느낌이다.
중풍이 들어서 마비가 온 수족처럼 뇌의 활동이 경직되다 못해 멈춰버린 것 같다.
글을 쓰려고 하면 머리 속에 모래가 가득 든 것처럼 서걱거리기만 할 뿐,
논리도 감성도 움직여주지 않는다.
가정해체니 가족붕괴니 하는 소리들을 많이 듣는다.
오늘만 해도 열살 짜리 아들을 마구 때려서 죽게 한 아버지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부모를 유기하는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 노인 학대에 대한 이야기들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엄청난 이혼률 증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식상할 정도로 들어왔다.
그런가 하면 지극한 모성애로 자폐아인 아들을 돌본 엄마에 대한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찬사도 대단히 크다.
도대체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정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가족이나 가정의 가치나 소중함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있다.
가족에 대한 애착 속에서 이기주의적인 속성을 너무 많이 발견하는데다가
애초에 가족이란 배우자를 제외하고는 선택하기보다는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하고 책임지기에는 뭔가 불합리한 구석이 많은 것이다.
○ 블랙백 (자막) 이 세상 밖이라면 어느 곳에나
-창 밖의 풍경
질문 - 언니가 지금 금이라고 생각하는건 가족인가?
나 - 아니, 가족은 아닌 것 같애...오히려 나 자신인 것 같애...나 자신이 나에게 하나의 금이 되고 있는 것 같애....이제 이미 누구에게 비난받을까봐 뭐를 안하고 그러지는 않거든...나 자신이 자신이 없어....금을 넘어서서 내가 어디론가 질주할 수 있는 어떤 추동력이나 에너지 이런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거야...자신이 없어...안타까운거는 자신이 없는데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여전히 한쪽 발을 살짝살짝 비껴본다는 그게 참 안타까운거지...평생동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나는 그거 포기 못하는 것 같애....하루에도 몇번씩...아까 내가 그렇게 나의 현재의 이 평온한 삶에 만족한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루에도 몇번씩 지금 당장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저 길을 나서서 홀연히 그냥 사라져버릴까 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그런 생각하거든...하루에도 몇번씩...그게 나야...어쩔 수 없는 것 같애....
-가방 싣고 여행 떠나는 나
-집으로 돌아오는 나
(앞의 오디오에 비디오 인서트)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나
○ 블랙백 (자막) 사랑이 너무 멀다
-침실 문 사이로 서 있는 남편과 침대에 누워있는 나
(자막 - 2002년 3월2일)
남편 내 등 두드리며...."갔다 올게..." 나 손 내밀며..."응응..가지마..."
남편 손 번쩍 들며..."미치겠다."
문 열고 나가는 남편, 침대에서 신음하는 나, 누워있는 뒷모습
(N) 남편은 늘 나한테 친절했다. 내가 아픈 것을 자기가 아픈 것보다 더 아파했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 우리 집 (자막 - 1년 후)
소파에 누워있는 남편 / 내가 다가가서 얼굴 만진다
일어나는 남편, 싱크대 앞에 서있는 나
식탁에 앉는 남편 / 남편 밥 먹고 물병 닦는 나
(N) 결혼생활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날마다 밥을 해먹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 밥 먹는 남편 "밥 먹어, 나보고 밥 먹으라면서...." (남편) "물 담어...물이 없잖아" (나)
식탁에 왔다가 다시 싱크대로 가서 컵 가져다가 물 따르는 나
(N)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나를 지치게 한다.
인터뷰 "한 방편으로서 뭔가를 피해보기 위해서 결혼을 선택한다, 외로움을 피한다던가, 어떤 편견을 피한다던가, 눈총, 비난 이런 것들을 피하기 위해서 그런 방편으로 결혼을 택한다는게 참 어리석은거라는걸 알면서도 그런 면이 없지않아 있었던 것 같애...이제 와서 생각하는거지..."
담배 피우는 남편.... "뭘 이해해 달라는건데?" "내 본심을 이해 못하는 것을 이해 못하겠어....내가 걱정이 되어서 그러나보다 하지 않고 엉뚱하게 받아들이는게 이해가 안가" 남편 "진짜 이해가 안가네...."
- 눈 클로즈업
인터뷰 "금금에서 내 얘기 부분의 제목을 사랑이 너무 멀다라고 정하려고 했잖아...그 이유가 아마 지금 질문했던 것처럼 사랑이 있나, 사랑이 정말 있을까? 이런 생각을 나도 수시로 많이 했었거든....거기에 대한 나의 결론이라면 사랑이 있어...있고 정말로 필요한 것인데 너무 멀어 너무 멀리 있어...항상 곁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체가 잘 잡히지도 않으려니와 실천이랄까 살면서 끊임없이 사랑하기란 굉장히 어려워서 여기에서 멀다라는 건 어렵다는 얘기지....사랑는 너무 어려워...그래서 나는 멀다 라고 생각하거든."
○ 블랙백 (자막) 몸
-척추 운동하는 나
(N) 마흔 네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척추 디스크에 걸렸다. 이혼하고 난 직후였다.
17년 간의 결혼생활과 15년 간의 방송작가 생활 끝에 나의 척추 세 마디는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 퇴행성 척추 디스크라고 의사는 말했다.
허리와 다리의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고, 의사는 완전한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다. 수술도 불가능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척추 운동을 열심히 해서 허리 근육을 튼튼하게 만들어 통증을 줄이는 방법 뿐이라고 했다.
-걷기(산책)
(N) 작가로서의 일을 쉬고, 척추 운동과 걷기 운동을 하면서 나는 허리의 통증을 다스렸다.
걷기조차 힘들 정도의 극심한 통증은 이제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통증은 나의 일상 속에서 늘 나와 함께 있다.
댓글 목록
crab
관리 메뉴
본문
장 칼몽 할머니를 만나고 싶다. 그와 함께 찜질방에 가고 싶다.부가 정보
hi
관리 메뉴
본문
장 칼몽할머니가 찜질방 가시면 제대로 나오실지... 걱정되는군요. ^^;;;부가 정보
풀소리
관리 메뉴
본문
재미있네요. 그런데 제 나이가 간통죄에 많이 걸릴 나이라니...^^;;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