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어드벤쳐

from 너에게독백 2006/01/16 03:08

 첫날부터 날씨는 좋지 않았다. 도착하자 마자 들은 소식은 한라산 쪽으로 가는 도로들이 눈때문에 모두 통제 되었다는 이야기.그래도 우리는 꾸물꾸물 구름낀 하늘밑으로 빌린 승함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일단은 도착 첫날이니 무난하게 성산 일출봉에 가기로했다. 성산 보다는 그길가는 해안 도로가 멋졌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좋을 길이었다.




▲ 성산 일출봉에 올라가는 길에 꾸무정한 하늘

겨울 해라 날이 금새 저물었다. 날이 흐린탓도 있을거다. 일찌감치 숙소로 가기로 했다. 한숨자다 일어나서 저녁꺼리 장을 보고 다시 길을 갔다. 시내를 벗어나서 북쪽으로 북쪽으로 갔는데. 주위에는 집같은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 꼬불꼬불한 길이다. 그런데 좁은 2차선 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지더니 점점 희끗희끗 눈 길이 되더니 얼음길로 이어져 있었다. 날은 깜깜하고 가로등도 없고 후륜 승합차는 조심조심 비틀비틀 길을 더듬어 갔다. 가다보니 얼음 덮인 언덕배기가 나타나고 .. 차는 힘을 잃었다!

"어! 어! 어어!" 끝내 차는 언덕을 넘지 못했고, 모두 내려서 차를 밀어봤지만 바퀴는 공회전을 하다못해 줄줄줄 미끄러져 내린다. 숙소는 언덕만 넘으면 바로 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숙소 맞은편에서 가게를 하고 있는 검은승용차를 탄 아저씨가 나타나 자신이 다른 길을 안내할테니 따라오라고 하신다. 차을 겨우 돌려서 아저씨를 따라가는데 아저씨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속도를 늦추지 않고 빙판을 올라 가셨다. 우리도 따라가는데.. 헉. 여기는 난이도가 더 높은 언덕이 있다. 확! 밟아서 힘을 받아서 올라가 보려고 하는 찰나.. "어어~어어~" 하는 사이 차는 180도 회전을 해서 가던 방향의반대 -즉 올라온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언덕과 언덕 사이에 빙판길에 갇혀 버린셈이었다. 다들 별로 놀라지는 않고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웃어댔다.

게다가 우리를 안내해 주겠다던 아저씨는 사라져버려서 우리는 여우에 홀렸나 싶었다. 어쩔수 없이 갔던길을 되돌아 가는데 전방 좌측으로 시커먼 물체가 출현했다.  '헉 저게 뭐야!' 음. 제주도 소였다. 쌔까만 소. 별걸 다보는군. 결국 우리는 주변 공터에 차를 세우고 숙소로 걸어갔다.. 노곤해진 몸을 풀고 저녁을 해먹고는 동양화를 가볍게 들여다 보다가 모두들 일찍 잠이 들었다.

둘째날..
계획상으로는 한라산 등산을 해야 하는 날이었지만. 한라산은 통제 되었다니까.. 다른 대안을 찾다가 배낚시로 합의를 보고 차귀도로 출발했다.


▲ 우리가 탔던 작은 배


낚시보다는 배타는게 더 재미있었는데 날이 전날 보나는 좀 풀려서 배를 타고도 춥지 않고 시원했다. 허긴 뭐 내복을 위 아래로 입고 솜바지까지 입었으니 추울리가 없었다.

낚시는 상상했던것 보다 조촐했는데, 그냥 추낚시였다. 선장아저씨 입담에 재미있게 미끼 끼우는법, 낚시하는 법을 배웠는데 나는 잘 안되더라. 잘하는 사람은 내가 놀래미 한마리 겨우 잡을 동안 대여섯 마리씩 잡았는데.. 나는 소위 챔질이라는걸 잘 못해서 인지 느낌이 와서 줄을 끌어올리면 이미 미끼만 먹고 가기 일 수 였다. 한마리도 못잡으니까 오기가 나서 열심히 하긴 했는데 한마리 낚고 나니 또 허무하고 의외로 별 재미가 없었다.먹으려고 낚아야 재미있지, 놀이로 낚아서 무슨 재미냐 싶은게..

뭐 아무튼 신나기는 신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폼을 잡았는데, 몇몇 튼튼한 장정들이 멀미가 나서는.. 허옇게 질려 버렸다. 그러더니 일찍 뭍으로 올라가자고 선장님을 졸라서 결국 두시간도 못채우고 올라와 버렸다 :) 재미있는건 선장님도 파도가 조금더 센 바다에 나가면 멀미간 나는 체질이라는 거다..


▲ 차귀도에 다녀와서 간 용머리 해안가


둘째날 저녁, 한라산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가기 전날 밤까지 정말 가는건가 싶었는데, (난 운동부족에다가 산을 제대로 타본적이 전혀 없다. 심지어 등산을 싫어하기도 했고) 이 기회  아님 언제 한라산에 올라 보나 싶어서 다음날 새벽에 발딱 일어나서 따라 붙었다. 얼어 붙은 길을 택시를 타고 등산로 입구까지 가서 오뎅과 김밥으로 배를 채웠다. 그런데 전날 먹은 술탓인지, 매운 라면탓인지 속에서 별로 좋지않은 낌새가 느껴졌다. 혹시나해서  김밥은 몇점 먹지 않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하.. 눈이 정말 너무 많았다. 상상도 못했는데. 발보다 상당히 큰 운동화(게다가 천으로된..)를 신고 가서 등산하기에는 상당히 불량한 복장이었기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돈좀 들여서 각반도 사고 아이젠을 사서 준비를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행이도 산이 오른다기 보다는 평지에 가까워서 자신있게 잘 걸을수 있었다. 초반에는 평지에서는 걸음이 빠른편인데다가 뒤에서 오는 일행들에게 혹시나 폐가 되지나 않을까 싶어서 머리에 땀이 차도록 속도를 내서 걸었다. 눈쌓인 나무들. 발자국들. 새들 발자국. 노루 쯤 될것 같은 동물의 발자국..



▲휘장 같이 삼나무 머리카락이 늘어져있었다


 

그런데 머리에 땀이 식으면서 서늘해진다 싶더니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워졌다. 배도 살살 아픈것 같고.. 어제 배타던 사람중 멀미하는 사람들 기분이 이랬을까 싶었다. 점점 배가 아프고 토할것같고 어지러워서 몇번씩 쉬어갔다. 처음에 휘적휘적 앞장서 걸어가던 그 기세는 어디로 가고 왔던길을 내려가고 싶을 뿐이었다. 사진에 있는 삼나무 숲은 내 핸드폰으로는 제대로 담을 수 없었지만.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그런 풍경이었다. 근데 천천히 둘러 보거나 사진을 찍기도 귀찮을만큼 아파지고 있었다. 정말 어디를 둘러봐도 눈뿐인데. 결국에는 눈위에서 일을 봐야 하는건가? 이런 절망 속에서 어질어질 할 뿐이었다. 위 아래 사진도 결국 내려오는 길에 찍은것이다.


   
▲  빽빽하게 삼나무가 들어선 숲

 

그러다가 조금만 더 가면 화장실이 나올테니 거기 한번 가면 낫지 않겠냐는 말을 듣고 참고 또 참고 걸었다. 화장실이 보이기 약 오분전에는 절정으로 아팠는데 더 이상 아프다고 일행을 지체 시킬 수도 없었다. 백록담까지 가려면 진달래 밭이라는 대피소있는 지점까지 12까지 도착해야 올라 갈수 있다고 했었기 때문에..

배아플때 식은땀이 나면서 몸에 소름이 돋고 온몸의 피는 마르는 듯한 기분 다들 한번쯤은 겪어 봤을 것이다. 꼭 그랬다. 어금니를 앙 물고 두손을 꼭쥐면서 침묵 속에서 낮아지는 체온을 견디면서 걸었다. 나중에는 손에 땀이 흥건하고 손을 너무 꼭 쥐어서 손바닥에는 손톱자국이 퍼렇게났다.귀는 욍욍거리고.아아.. 가상도 하지. 관자놀이가 팔딱팔딱.

그렇게 인고의 오르막을 그렇게 오르고 나니.
화장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꼼짝 못하고 눈밭에서 일치르나 했건만..
눈속에 파뭍힌! 결국 몸을 옴짝달싹도 할수 없을 만큼의 작은 간이 화장실에 다녀오니 아픔은 싹가셨다. 하하하. 참 민망하더라.

가뿐한 마음으로 또 온 만큼 한참을 올라섰는데, 슬슬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있다. 우리도 제법 일찍 출발했는데 벌써 정상에 다녀왔을리는 없고...
"백록담까지 다녀오시는건가요?" 했더니 "못가요 못가" 하신다. 이제 10분만 더 올라가면 못올라가게 통제 되어있다는 사람들이 몇명더 지나갔다. 눈때문에 등산로가 묻혀서 어제 길을 낸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내놓은 탓이란다. 우리는 잘못된 길을 오르고 있었던 거다. 이제는 어쩌나...

그 순간 우리팀의 산행 령도자 홍모씨는 "아냐. 아직 몰라." 하더니 "앗 고수인것 같아!" 하면서 어떤 털보 아저씨를 발견해 냈다. (그는 실패연대의 대표주자로 알려져있는 인물이었지만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번뜩이는 그의 눈빛. 우리는 그를 따라 정체불명의 털보 아저씨를 따라갔다. 그는 한라산 국립공원 직원이었던 것이다!!
길을 새로 만들겠다는 아저씨들을 따라 나서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중 우리는 거의 앞쪽에 있었는데. 우리팀의 복장이 가장 열악했다. 우린 거의 평상복 차림인 반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프로훼셔날한 차림이었다.

암튼 관계자들이 지도를 펼치고 나침반도 나오고.. 쑥떡쑥떡하더니 길을 내기 시작했다. 길은 아주 천천히 열렸다. 한발짝 가고 기다리고 한발짝 가고 기다리고. 앞사람 발자국에 맞춰서 한 이십명 이상의 사람이 한 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구불구불.. 이 길이 아닌 걔벼 하면서 틀었다가 올라갔다. 오히려 나같은 초짜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천천히 올라가니까 힘도 별로 들지 않고, 눈속에서 길을 낸다니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서서히 운동화로 눈이 들어와서 양말이 젖어가고 있다는건 좀 불안했지만 시종일관 즐거웠다.

 

▲ 길을 만들어서 올라가고 있는 모습

원래는 길이 아니었는데. 한사람이 가고 두사람이가고 열사람이 가니 길이 되고 있었다. 드라마 다모의 장두령의 대사를 추억하면서 우리는 올라갔다. 언덕 배기를 하나 올라서서 뒤를 돌아다보니 절경이다. 먼저 올라선 사람이 '와아'하고 탄성을 지르니 뒤따르던 사람들이 차례로 뒤를 돌아보고 탄성을 지른다. 사진으로 제대로 담지는 못했지만 장관이었다. 눈발이 흐부끼고 산아래 광경이 쫘악 눈에 들어오는데 어디 딴 세상에 온게 아닐까 싶었다.


 

 

▲ 잘 나오진 않았지만 뒤돌아봤을때 찍은 사진


 

그 언덕을 넘어 조금 더 오르니 나무가지들로 시야가 가려진다. 앞을 가린 나무를 헤치고 나서니 나타나는 설원. 흩날리던 눈가루는 이제 그치고 구름에 가렸던 해가 나타나 앞에 탁트인 눈쌓인 평지는 눈을 따갑게 할정도 였다. 얼굴로 따뜻한 햇볕이 반사되어 와서 따끈따끈해지는게 기분이 좋았다. 여기가 바로 "진달래 밭"이었던 것이다. 캬아.. 하늘에서는 까마귀떼가 휘휘돌고. 대피소는 눈에 쌓여 지붕밖에 안보인다. 화장실이었던것 같은 것은 지붕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고 피뢰침 같은 것만 남아있다.



 

▲ 오병이 찍은 눈덮인 진달래밭 대피소와 평원
(오바해서 남극이라고 해도 믿지 않을까?)

건물높이 만큼, 나무 한그루 높이 만큼 쌓인 눈위에서 도착한 사람들은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먹거리를 꺼내 배를 채우고 있었다. 도시락을 단체로 싸온것 같은 사람들. 보온병에 든 커피를 나누어 먹는 사람들... 그리고...

컵라면을 먹는 사람들!!!!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가져왔는지 컵라면을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대피소까지만 가면 따뜻한 컵라면을 한그릇 먹을수 있겠지 그 맛이 얼마나 좋을까 전날밤부터 기대했었다. 그러나...이제 눈을 퍼내려고 삽질을 시작한 대피소는 지붕밖에 보이지 않았고, 보온병따위 수중에 있을리 없었다. 아...어찌나 부럽던지. 우리는 궁상맞게 신문지위에 주섬주섬 소주두병을 올려두고 햄덩어리와 산아래서 사들고온 꽁꽁언 김밥을 먹을수 밖에 없었다. 난 그 김밥은 도무지 먹을 마음이 들지 않았고 술 역시 못먹겠더라. 곱은 손으로 귤이나 까먹으면서 컵라면 먹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밖에..

사실 컵라면 국물이라도 어떻게 얻어먹어볼까 하고 뚫어져라 처다보면서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이라는 대사도 연습해보고 했는데. 내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그들은 이미 다 먹어 버렸다. 아아.. 그렇게 침만 꼴깍 꼴깍 삼키다가 우리는 내려와야만 했다. 백록담까지는 또 길을 내야하는데 오늘은 무리라는 것이다. 관계자는 "오늘은 이것으로 만족하셔야 합니다" 하고 우리를 달랬다.

내려 오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힘이 들었는데. 미끌어지지 않으려고 아이젠을 눈위에 팍팍 박으면서 내려오니 무릎 관절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동화를 신어서 발목을 받혀주지 못하니 복숭아뼈있는 부분이 너무나 아팠다. 그래도 오르는 길에서 배아파서 제대로 보지 못한 삼나무 숲에서 사진도 찍고, 쌓인 눈위로 몸을 던져서 누워보고, 누구는 비니루 봉지를 하나 구해서 경사로를 봅슬레이를 해서 내려가고...


그렇게 그렇게 한라산행을 마쳤다. 내려와서도 컵라면을 파는곳이 없어서 되게 아쉬웠지만. 그 산에 포기하지 않고 다녀온 내가 대견하기도 하고 만족스러웠다. 한라산은 별로 어려운 산이 아니라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대단한 일이었다! 내가 언제 다시 이렇게 눈길을 헤치고 산을 타겠는가!

산에서 내려와서는 차에타고 바로 골아떨어졌다가 어딘가에서 내려 밥을 허겁지겁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들 피곤에 쩔어서 일찍 잠이들고, 다음날 숙소를 떠났다. 그리고 다행히도? 비행기가 연착이 되어서 약 한시간 정도 공항근처 용두암 쪽으로 가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자전거 여행이라는것에 어려서 부터 로망이 있어서 여행지에만 가면 자전거를 빌려서탄다. 언젠가는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을 해야지 하고 있다가 제주도에 간거라서 사실 자전거를 굉장히 타고 싶었는데, 이렇게라고 한차례 타니까 소원을 그럭저럭 이룬셈이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니 허벅지 근육이 무지 당기고 엉덩이가 아파서 우리는 끝까지 체력훈련 엠티구나 싶었지만, 대만족이었다. 바람을 차고들어가니 귓가에는 상쾌한 마찰음이 들리고 등에서는 땀이 나고 얼굴은 싸아하고. 날씨도 많이 풀려서 봄날씨. 중간에 바닷가에서 음료수와 초코바/양갱같은 것을 우걱우걱 먹고 즐거워 하는 얼굴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고..

암튼 그렇게 동계체력훈련겸 제주도에 다녀왔다.



* 요즘 글을 조금쓰다가 말고 시간날때 이어서 쓰고 하다보니까 글이 주체 못하고 길어진다. 누가 이걸 읽으려나 모르겠다. 16일 새벽 3시경에 쓰기 시작한 글이 18일 0시 15분에 끝이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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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6 03:08 2006/01/16 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