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밑창

from 너에게독백 2005/12/30 02:01
지금 왼쪽 목, 어깨, 허리, 다리 근육이 찌르르한게 쑤시고 당긴다. 왜냐면, 너무 왼쪽 신발 밑창에 대해서 집요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러 그런건 아니었다. 왼쪽 밑창에 신경쓰기 시작한 것은 이틀전부터다. 그러니까 화요일날 백화점에서 탈의실에 들어갔는데 바지를 입어보려고 부츠를 벗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일단 이 부츠로 말할것 같으면 이르면 시월 초쯤에 아르바이트비를 받은 기념으로 산 내 평생 처음신는 부츠였다. '부츠'는 나름대로 대학생이 되면 꼭 신어보려고 마음먹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로망이었다.무릎까지 오는 따듯하고 세련된 부츠. 비록 지금의 것은 '부츠'쪽 보다는 '장화'랑 더 친분이 있을것 같은 모양새에 싸구려티가 물씬 풍겨서 아빠가 엄마한테 애 신발 좀 사신기라고 잔소리 할 정도이지만.. 그때 상상했던 것 보다 더 나에게 어울리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다. 아무튼 다시 탈의실로 돌아가서.. 그때 부츠를 손으로 당겨서 벗었는데, 왼쪽 신발을 당기는 순간 미묘하게 이상한 느낌이 났다. '어라 ? 혹시 밑창이 떨어지려고 하나?' 하고 불길한 마음에 황급히 살펴보는데...아무리 고무 밑창이라지만 산지 두달도 채 안된거 같은데 째진것 같은 구멍!?이 나있었다. 그때부터다. '왜 구멍이 났을까? 왼쪽에만.' '걸음걸이가 이상한가?' '발뒤꿈치쪽에 가까운것을 보면..내가 발 뒤축으로 힘을 많이 주나?' '더 달아서 못신게 되면 어쩌지?' '아직 본전도 못뽑았는데.' '역시 싸구려는 살게 못된다고 엄마가 득의양양해 할텐데..' 의식적으로 왼발에 힘이 들어가서 어떻게든 뒤축이 덜 마모되도록 신경을 쓰게 되는것이다. 아 그랬더니 다리가 부자연스러운게 좀 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지하철 환승로나 길에서는 걸을때 뒷사람한테 구멍난게 보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까지 들어서 밑창이 안보이도록 걸어보려고 신경을 쓰게되고. 걷는 리듬은 점점 엇박자를 타기시작했다. 게다가 발바닥이 좀 밀리고 배기는 느낌이 들어서 '앗. 드디어 밑창이 떨어진거야?' 하고 밑창을 보면 별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인지. 그렇게 혼자 비웃고 자연스레 걸어보려고 해도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내 다리가 내 생각 때문에 내 다리 같지 않게 되니까..나중에 집에 오는 길에는 길은 깜깜한데 왼쪽다리에 뭔가 찰싹 감겨 붙어있는 느낌까지 들어서 선뜩하기도하고 웃기기도 하더라. 병은 마음에서부터 ..여기서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굉장히 시시한 일인데, 걸을때마다 생각하게 되니까 괴상한 인간이 된것 같기도하고 제삼자적으로 나를 보면 웃기기도 하고 기괴하다. 실제로 발에 뭐가 달려 있다는 기분이 들었을때는 무섭기도 하면서 재미있기까지 했다. 실제로 달려있는 뭔가의 형태같은것도 상상되고.. 무서운 이야기를 들은날 자기전에 눈꼭감고 무서운 생각을 끊임없이 부풀려가면서 잠못드는데 실제로는 점점 덜무서워지고 급기야는 즐기고 있는 자신을 볼때처럼 말이다. 아무튼 내일은 떨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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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30 02:01 2005/12/30 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