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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달

 일단 광고: 영화보기 및 오픈 토크 

내일 9월 26일(금)

12시 40분 미운오리새끼

14시 40분 반신반의

5시   오픈토크 : 카메라를 든 여성
장소_    인디스페이스 (중앙시네마 3관)

초청자_ 다케후지 카요 (Takefuji Kayo 竹藤佳世) : <반신반의> 감독
               오노 사야카 (ONO Sayaka  小野さやか) : <미운오리새끼> 감독
패널_    류미례 (<엄마...> 감독)
               박정숙 (<동백아가씨> 감독)
사회_    김소혜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미루고 있었는데 벌써 한 달전 일이다.

어떤 여성 모임에서 참석해달라는 전화가 왔다.

나는 혹시나 거기에 가면 만난 지 10년도 더 된 친구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 날을 기다렸다. 아이들을 교대하기로한 남편이 늦었고

약속시간에서 거의 한 시간이 늦은 후에 출발을 했다.

가면서도 갈까 말까 계속 망설였던 이유는 친구가 온다는 확신은 전혀 없었고

만약 그애가 오지 않는다면 나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자리에 끼게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의례적인 전화, 의례적인 문자였을지도 모르는데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엄청 망설이면서 버스를 탔다.

 

드물게 허락된 혼자만의 밤외출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못 가면 다른 데라도 가려고

사무실 동료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다른 일들로 바빴다.

다시 집에 돌아갈까 하다가 그냥 될대로 되라지, 하는 마음으로 지하철로 갈아탔다.

종로3가에 도착하니 약속시간으로부터 2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런데 문자가 왔다. "오고 계신 거죠? 늦어도 꼭 오세요~"

거리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금요일 밤이어서 그런지 포장마차마다 사람이 그득했다.

그 거리는 27살까지 길을 잃고 떠돌던 쓸쓸한 나의 시간이 배어있는 곳.

그 모든 포장마차들에 한 번쯤은 다 앉아보았던 것같았다.

 

어쨌든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듯 포장마차들을 하나씩 지나가며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그런 곳을 와인바라 부르는 것같긴 한데 아무튼 와인과 초콜릿과 샌드위치 같은

평소의 모임에서라면 결코 접하지 못했을 식탁 풍경이 펼쳐져있었고

짐작대로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그 자리에 끼어앉았다.

영화일을 하는 여성들이지만 관심분야와 활동범위가 많이 달라서

공통의 화제 또한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단지 내 옆에 앉아있던 아름다운 여성이 신입회원이라 '꿔다놓은 보릿자루'로서의

동류의식이 좀 반가웠다고나 할까.

 

다른 화제, 다른 화법.

그러다 문득 놀랐다.



공통의 화제를 찾으려 애를 쓰다가 내가 만든 영화이야기가 나왔고...

그리고 놀랍게도 많은 이들이 아이엄마였다.

내가 사는 세계에서의 촉수로는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세련된 옷차림, 뮤지컬이나 그림, 혹은 문화산업의 동향과 같은 이야기들.

살림이나 육아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같은 분위기의 그녀들은

다들 아기를 키우고 있었고 힘들게 분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공통의 화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궁금했던 건 지금 아기는 누가 돌보고 있느냐는 거였는데

이웃집 아주머니나 입주 육아도우미가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어느 집에도 아이 아빠의 자리는 없었다.

남편 혹은 아이아빠의 자리는 애초부터 없는 것같았다.

추석 때 만난 언니에게 그 놀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언니가 그랬다. "다들 그렇게 살아. 아가씨나 서방님(내 동생)이 특별한 거예요"

 

그녀들을 만나고 며칠 후, 나도 아기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미뤄둔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먼저 아이돌보미지원센터에 회원가입을 했다.

가입까지는 했으나 결국 포기하게 된 건 그 곳은 이용할 때마다 사람이 다르다는 거다.

엄마 손을 떠날 앵두가 매일매일 낯선 사람의 손을 떠돈다고 생각하니 좀 짠해서 포기.

 

두번째로 시도했던 것은 동네 분 중에서 알아보는 거였다.

그리고 속삭임에 가서 베이비시터에 대한 게시물들을 검색해보았다.

 

괴담1. 경인방송 OBS 살림의 여왕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이야기
박경림이 자기 아는 언니가 겪었던 일.
그 언니라는 분이 스튜어디스라서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며칠씩 비행을 다녀오곤 했는데 어느 날 비행이 취소되서 예고없이 집엘 갔더니

아줌마는 우아하게 음악듣고 있고 아기가 없더란다.
그래서 아기 어디갔냐고 했더니 대답을 못하고...
계속 다그치면서, 말안하면 경찰 부르겠다고 했더니 글쎄...................
옛날식 통돌이 세탁기 안에 곰인형과 함께 아기를 넣어놨더라.

괴담2. 친하게 지내던 같은 아파트 아주머니가 하도 아기를 봐주겠다 해서 맡겼더니
어느 날 그 아기를 데리고 몰래 이사를 가버렸다

 

괴담3. 베이비시터에게 아기 몰래 녹음기를 틀어놓고 나갔다 나중에 들어보니,
하루 종일 컴터와 티비소리만 들리고, 아기에게 말한마디 없이 밥먹이고,
울면 윽박지르는 소리만 녹음이 되어있었다.

......................

결국 괴담들에 질려서 포기. 다시 원점.

 

그 끄트머리에 미디어교육 때문에 알게된 원주사는 언니랑 통화를 했는데

상담을 공부한다는 언니가

일곱살까지 엄마가 키운 애들이 우울증걸릴 확률이 낮다라면서

가능하면 오래오래 키우라고 얘기해주었고

여기에 맥락은 다르지만 며칠 전 봤던 <미운 오리 새끼>까지 가세하면서

머리 속이 온통 뒤죽박죽 되어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영화를 봐도 사람을 만나도 교육을 해도 원점으로 돌아온다.

답답해하는 나의 자리. 우물쭈물 망설이는 나의 자리.

나의 주기는 18개월 정도인 것같다.

15개월 정도가 지나면 갑자기 강의나 작업 의뢰가 밀려오고

한편에서는 최소한 36개월까지 엄마가 애를 키워야한다는 강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세번째 맞는 시간임에도 이 시간이 가장 괴롭다.부부싸움도 가장 격렬하다.

그리고 그 괴로움의 끝에는 항상 '이건 욕심'이라는 자각.

 

아이와 일을 양손에 움켜쥐고서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다보면

몸과 마음이 찢겨가는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같다.

벌써 한 달.

세상에는 다양한 엄마들이 살아가고....

그 다양함의 한 순간을 엿보고 나니

우유부단한 내가 참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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