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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

 1.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20년 넘게 뵙지 못했는데 어제 연락이 왔다.

엄마랑 이모들 모르게 외할머니의 죽음도, 장례도 알리지 않고 혼자 처리한 후

의절하며 지내왔었는데 죽음을 계기로 뵙게 된 것이다.

나야 뭐 어렸으니 의절이고 말고 없지만.

재혼하셔서 11살, 12살 남매를 두셨는데 우리 애들은 그애들하고 같이 놀았다.

큰애가  "이제 왕따 당할 일 밖에 안남았어요. 애들이 아빠 없다고 그러면서 왕따시킬 거예요"

그래서 설마, 괜찮을거야. 아줌마도 열살 때 아빠 돌아가셨는데 그런 건 없었어.

라고 말하긴 했으나 그래, 아빠 없이 사는 게 쉽진 않지..그런 생각이 문득.

학교 안가겠다고 하니 "그래도 숙제는 해야될걸요. 밀린 거 다 해야되지요" 하고 물어서 

괜찮을 거라고 하긴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하늘이 "아빠 돌아가면 학교 안가고 숙제 안해도 돼?" 하고 물어서

애들은 죽음보다 숙제 걱정을 먼저 하는구나... 살짝 웃음을 참으며

숙제 안해도 될거야. 장례 치르는 일이 쉽지도 않고

아빠가 돌아가신 상황에서 숙제 안했다고 혼낼 선생님은 없을거야 했더니

하늘이 "숙제보다 아빠 돌아가신 일이 더 크니까?"하고 나름 이해하는 듯했다.

그래,  대답하는데 하늘이 갑자기 물었다.

 

"엄마, 아빠가 돌아가도 엄마는 우리 옆에 있을 거지?

엄마는 우리 돌봐아하니까 어디 안 갈거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좀더 진지하게 설명을 해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는 벌써 이별이나 상실에 대해서 알고 있구나..그런 생각도 들었고.

나에게 최초의 죽음은 아버지였다.

장례가 끝나 모두 떠난 후 북적대던 집안이 고요해질 즈음 처음으로 아버지의 빈 자리를 느꼈고

며칠 동안 새벽이면 잠이 깨어 자는 언니의 코에 귀를 대보곤 했었다.

하늘이 죽음에 대해서 너무  직접적으로 겪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하늘아. 엄마는 어디 안 갈거야.

아빠도 얼른 안 돌아가고 하은별이랑 오래오래 살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하늘은 내게 몸을 기댄 후 곧 잠이 들었다. 편안한 잠이었으리라 믿고 싶다.

 

2. 손바닥 그림

박재동 화백이 말한다. 

"노래는 노래방에서 부르는데 왜 미술은 안 그럴까. 이유를 생각해봤더니 첫째는 크기야.

그림 한 번 그려보자, 싶으면 먼저 도화지 사이즈를 생각한다고. 

일상에서 사람들이 그 도화지를 채우려고 하면 어렵지. 

그림이라고 해서 표준 사이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작가가 알아서 정하는 거라고.

손바닥 만한 명함이라면 그럼 만만하지 않나.

............

그림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 누구 기다리면서 그림 한장 그리면 내 삶이 소중해져.

지루한 시간이 창조적으로 변하지. 그 사람이 조금 더 늦게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생기고."

 

좋은 카메라를 구했다.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상은의 노랫말처럼

카메라가 없으니 카메라가 애타게 그리웠다.

떠나보낸 카메라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pc300을 구했다.

사무실 동료들은 그럴 필요가 있냐고 했고

나 또한 그럴 필요가 있을까, 백번 생각해도 이건 미련일 뿐이라는 생각을 안한 건 아니지만

하지만 난 카메라가 필요했다.

공기같은 내 일상을 가볍게 담아줄 카메라.

너무 커서도 안되고 너무 비싸도 안된다.

나는 촬영을 즐기고 싶다.

 

남편의 차에 두었던 엠피쓰리를 내가 갖게 되었다.

몇 년 전의 나라면 그걸 들으며 지냈겠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앵두를 키울 때, 드물게 혼자 외출을 할라치면 차창밖 풍경과 사람들 모습,

주변의 작은 소음까지도 다 새롭게 다가왔었다.

그래서 이젠 이동하는 시간을 비워둔다.

어린이집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오는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 주변 풍경들,

새로이 문 연 대형 마트, 전날 다 팔지 못한 빵을 세일하는 빵집, 농산물들을 모아 파는 농협의 가판대,

계절에 따라 바뀌는 꽃집의 작은 화분들, 학교 가는 차를 기다리는 듯한 장애아와 엄마들,

보라매병원 앞의 불합리한 신호체계, 매일 배달을 위해 트럭에 싣는 산더미같은 계란들.

오늘 아침에 실수로 몇 판이 깨졌는데 그 실수를 아까워하는 남자들의 탄성(?)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저게 계란이 아니라 맞은편 집의 유리판이었다면 지나가던 내가 다칠 수도 있었겠구나

앞을 잘 보고 다녀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손바닥그림을 즐기는 것처럼 내 작은 카메라로 이 시간들, 이 광경들을 즐기듯 담아두고 싶다.

물론 항상 생각이 앞서고 행동은 굼떠서 그것들이 내게 남긴 흔적들은 포르르 흩어져버리지만

언젠가는 손바닥 그림을 즐기듯 내 시간들 내 풍경들, 그리고 내 삶을 즐기듯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한다는 강박없이 그저 자유롭게. 시간을 포착한다는 일은 매력적이니까.

 

3. 금주

외삼촌의 죽음은 감기에서 시작되었다. 감기가 폐렴이 되었고 폐렴이 폐혈증으로

그래서 마지막엔 어떤 약도 소용이 없었다.

몇달 째 기침이 계속되어 병원에 갔다.

병원약은 먹으면 효과가 있지만 끊으면 또 금새 원래로 돌아간다.

처음으로 사무실 근처를 찾았다.

약을 주며 의사는 내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그랬다.

 

가족 아닌 누군가에게서 술 마시지 말라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2년에 한번 있는 건강검진 때 의사는 내게 지방간이라며 운동 열심히 하라고 그랬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말하기를

의사선생님은 당신이 술을 마신다고는 생각조차 못할거야.

그 병원의 의사선생님은 독실한 성공회신자셨다

남편이 덧붙이길 "사모가 술을 마신다는 생각을 하겠어?" 

 

어쨌든 술 마시지 말라는 얘기는 처음 들었는데  

좀더 들어보니 '차가운 맥주'를 마시지 말라는 얘기.

그러니까 '차가운' 걸 마시지 말라는 얘기였다.

따뜻한 정종은 되나요? 문득 의문이 생겼으나 묻진 않았다.

 

그러고보니 따뜻하게 데운 정종 마신지 오래됐구나.

뽀로로 녹화하다가 따뜻한 오뎅탕 끓이는 걸 하길래

얼른 녹화해두었던 이유는 나중에 사무실에서 정종 데워마실 때 저거 만들어먹으면 좋겠다

뭐 그런 생각이었는데 그게 벌써 작년이구나.

모두들 바쁘고 나도 바빠서 사무실에서 정종을 데워마시는 일을 깜박 한 채

벌써 여름이 와버렸네.

시간은 참 잘도 가는군.

 

4. 네번째 영화

너무 재미있을 것같아서 혼자 좋아하다가

옆자리 김감독님께 "너무 재미있을 것같아요" 했더니

열심히 하니까 재밌겠지 하는데...

그런 얘기 아닌데.  열심해 해서가 아니라... ^^

김감독님은 나에 대해 이런 얘기를 많이 하셨다.

너는 너무 늙었어.

너는 너무 구닥다리야.

너는 너는....

 

그래요 알아요. 얼른 대꾸하고서는 잠깐 기분이 상해있긴 하지만

나는 정말 구닥다리다. ㅋ

뭐 그래도 올드한 것도 한 경향일 수 있는 거니까.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한다.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

그 시간 안에 완성을 하는 일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

그런 저런. 어쨌든 오늘도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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