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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

사운드 믹싱이 1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 편집이 안끝나서 걱정하다가 엄마한테 이틀만 와달라고 했다.

엄마는 처음엔 "너희 집 너무 더운데?"라고 해서 우리 집 에어콘 있다고 했더니

그럼 복지관 강좌 빠져야하냐고 해서 잠자코 있었더니 생각해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일요일 밤에 집에 오셨다. 내가 엄마한테 부탁한 건 애들 잠들때까지 돌봐달라는 거였다.

어린이집에서 집에까지 데려오고, 씻기고, 먹이는 건 내가 할 테니

내가 그 일들을 다 끝내고 다시 사무실 가서 3시간 정도만 작업을 더 할테니

그 시간동안 같이 있어달라는 거였는데. ..

월요일, 작업하다가 어린이집 끝날 시간이 되어서 열쇠만 들고 나와서 애들 데리고 집에 갔는데

먼저 올라간 하늘, 하돌이 "할머니 문 열어주세요~" 하는데 불이 꺼져있었다.

앵두를 데리고 나중에 올라갔을 때에야 엄마는 문을 열어주셨고....술냄새가 확 풍겼다.

술에 취해 주무시고 계셨던 거다.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왔다.

그런 엄마한테 애들을 맡기고 갈 수는 없었다. 그냥 집에 가시라고 그랬다.

화요일 아침에 복지관에서 춤 강좌가 있어서 그걸 꼭 들어야한다고

그래서 화요일 새벽에 나갈 거라고 하셨던 터라 그냥 가라고...

엄마는 화가 나서 가셨고 나도 화가 나서 안녕히 가시라고 그랬다.

 

이틀동안 화가 가라앉지 않다가 수요일에 사과 전화를 드렸다.

내내 후회했다. 그냥 내가 혼자 감당했어야했는데 너무 절박해서 엄마를 생각한 내가 잘못한 거였다.

혼자 감당했더라면 몸이 힘들고 말 것을

괜히 엄마한테 기댔다가 마음까지 힘들고, 화났다가 미안했다가 자책하다가 한탄하다가....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아침 출근길이나 저녁 퇴근 길에는 여지없이 눈물이 난다.

조급해지면 안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면서도 이건 답이 안나온다.

며칠 전, 먼데  사는 mia가 전화를 해서 상황이 있으니까, 진심이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그냥 이번엔 존재감을 알리는 정도로만 생각하라고 위로해주었지만 사실 위로가 안됐다. (미안....)

 

 "너희들과 함께 걸어온 이 길을 후회하지 않고 가겠다"라는 내레이션을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바꾸는 게 낫지 않겠냐는 조언을 들었다.

영화적 흐름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내 상황에 대한 이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졌다.

이 영화를  끝내고 내년엔 강화로 이사를 할 것이다.

내가 다섯번째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독립할 때까지 글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도 들었고

사실 이 시간 다음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감이 안온다.

이 영화가 복귀작이 아니라 은퇴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mia는 존재감을 알리는 정도로도 의미가 있으니 힘을 내라고 했으나

나는 내 영화가 그렇게 상황이나 진심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봐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정보없이 들어왔다가 보고 나서 그저 so so라고 생각되어지는 그런 영화였으면 좋겠다.

 

수요일, 씩씩이 부모님, 아이들과 시사회를 했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아이들은 프로젝트 앞에서 그림자 놀이를 하고 뛰어다니고....

그래서 잠깐 멈춤을 하고 부모님들께 "지금 씩씩이 부분이 끝났는데 다음 기회에 상영을 하면 안될까요?"

음악도 안 들어가고 사운드 정리가 안되어있고, 전체적으로 호흡도 골라지지 않은 상황이라서

관객도 힘든 것같았고 나도....정말 힘들었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은 계속 보고 싶다고 해서 다 보긴 했다.

<엄마...> 때처럼 내 최초의 관객들은 영화 얘기보다 자기 얘기를 더 많이 했다.

위로도 받고 힘도 얻고...그래도 또 작업 컴 앞에 앉으면 캄캄하다.

뭔가 문제는 있는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 감이 안온다.

 

화요일에 둘째언니가 와줬다.

언니가 자고 가는 줄 알고 새벽까지 일을 하고 있는데 언니가 집에 가야겠다고 와달라고 했다.

와서....한탄을 했다.

"엄마도, 나도, 우린 자기애가 너무 강한 사람들이야. 자기 감정이 중요하고 자기 일이 중요하고...."

언니가 공감했다. 그래...자기애가 강하지....

그래도 항상 그렇지만 아이들이 내게 새로운 에너지를 준다.

수요일 아침에, 전날 언니가 끓여준 오뎅국을 데워서 밥을 먹는데

앵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엄마, 진짜 맛있지? 진짜 맛있지? 엄마도 한 번 먹어봐"

하늘이 그렇게 맛있는 걸 먹으면 꼭 나한테 먹여주고 그래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대견스러웠다.

그래서 오뎅을 한개 집으려고 했더니 숟가락으로 막으면서

"엄마 거 먹어야지 왜 내 거 먹어?"해서 한참을 웃었다.

 

주말이 고비다. 부디 길을 발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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