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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00의 시간

감기는 항상 목에서부터 시작된다.

피로가 쌓이면 침 삼키는 게 불편하다.

며칠 잠을 자지 못해 일찍 자려고 했는데 빨래삶느라 늦어졌다.

늦은 밤, 아이들을 재우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울리는 전화벨은 불길하다.

전화를 받으려니 뚝 끊어졌다.

꺼두었던 핸드폰을 다시 켜고 기다려도 전화는 다시 오지 않는다.

불안해서 남편에게 전화를 해보니 자다 깬 목소리. 미안.

러시아로 전화를 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전철을 타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라고....언니도 아니다.

도대체 누굴까? 전화선을 빼놓고 이러고 앉아있다.

아이들 깰까봐 깜짝 놀라서인지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낮에 사무실 동료가 한마디 툭 던졌다.

영화만드는 일은 너무 힘들어.

갑자기 왜.... 하려다 그래 정말 그래.

우린 지금 둘다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너무 좁고 작다. 외길이다. 지금 이 상태에서 조금만 더 숙성이 된다면, 조금만 더 만진다면 뭔가 이룰 것같은데

그게 어떤 건지는 아는데 그걸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는 거다.

 

녹음실 표기사님이 말씀하시길
"그게 끝인데 계속 붙들고 있으면 좋아질거라 믿는 사람이 있어. 그럴 때 안됐어"

그게 나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는 이 상태에서 1센치라도 나아가고 싶은 거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아.

배급사 이피디는 빨리 마무리를 해야 할 것같다고 하고

그래, 나도 빨리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건 사실 빨리 손을 털고 싶은 마음이 시키는 거다.

 

시간에는 결이 있는 것같다.

그 때, 부산영화제를 앞둔 그 때에는 밥 먹는 시간도 아깝더니

지금,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이 시간들을 두고도 나는 빠져들지 못한다.

어떤 선택이든 스스로를 설득시킬 수는 있을 것같다.

문제는 지금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를 분별하기 어렵다는 것.

 

지금 나는 처음으로 외부적 요인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엔딩을 선언해야할 순간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만들었던 세 편의 영화는 다 스케줄에 쫓겼다.

첫번째 영화는 실습제도 3개월이라는 시한에.

두번째, 세번째 영화는 출산에.

그런데 네번째 영화의 끝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

자기결정권을 처음으로 가져본 이가

지금 망설이고 있다.

 

......

결심을 해야지. 결심을.

지금은 결단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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