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문정현감독의 <가면놀이>

 

둘째아이 출산휴가를 마치고 사무실에 복귀한 후, 처음으로 맡았던 일이 아동성폭력에 대한 영상작업이었다. 촉박한 마감일정 때문에 밤낮없이 일을 하다 잠깐 잠이 들면 어김없이 악몽에 시달렸다. 아이를 둔 엄마에게 항상 세상은 그렇게 사무치게 다가온다.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문정현감독의 <가면놀이>를 사실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70분의 상영시간동안 들여다봐야하는 그 진실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눈을 돌리더라도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상처입은 사람들은 애써 살아간다. 고통때문이든 무관심때문이든 외면은 외면이다. 내가 지금 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외면하지 말아야한다는 각오로 지금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가면놀이>는 성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의 상처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가족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 가족모임 '가족의 힘' 구성원들이 치유의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한 축으로 하고, 다른 축으로는 대안가족을 모색하는 성교육강사 이명화 선생의 활동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해자들이 나온다. 신기하게도 영화 안에서 가장 떳떳한 건 가해자들이다. 그들은 "똥이 있는데 그걸 알고도 밟은 거다"라든지 "걸레가 있었다"라는 인터뷰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피해자가) 평생 안고갈 상처를 받은 것같진 않다"라는 가해자의 진술과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웃고 싶다"는 성폭력 피해여성의 간절한 바람은 어떤 식으로도 만날 수 있을 것같지가 않다. 그리고 영화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조금씩 보여준다. 

 

조두순, 김수철과 같은 이들이 끔찍한 사건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내고나면 그들은 괴물이 된다. 아니, 세상이 그들을 괴물로 만든다. 하지만 18년동안 성교육강사로 활동해온 이명화선생은 말한다. "그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 때, 일상에서의 성폭력적 요소들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TV만 켜면 꿀벅지나 초콜릿복근을 운운하며 상품화된 육체들이 떠다니고, 마음만 먹으면 미성년자도 포르노그래피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세상이다. 영화 중간에 성문화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의 솔직한 인터뷰 안에는 쉽게 접한 포르노를 통해 배운 왜곡된 성의식이 들어있다. 

"여자들은 처음엔 항상 싫다고 하지만 결국은 좋아해요."

사이버공간에서 변태미니미로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고 치한게임이나 강간게임이 버젓이 유통되는 현실을 돌아보다보면 '평범남'과 '괴물'은 구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가족의 힘' 이 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들조차 "너 뭐했냐? 그렇게 예쁜 애 그렇게 될 때 넌 뭐했냐?"라고 외면하고 책망할 때, '가족의 힘' 구성원들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고 공연을 준비한다. 즐겁게 놀던 아이들이 낯선 아저씨로부터 피해를 당할 때, 우리 아이 어디 갔냐며 울부짖을 때, 그리고 울고 있는 아이를 끌어안으며 위로할 때, 가해자와 피해자와 엄마와 아이가 되어 그 시간들을 재연해낸 후엄마들은 말한다. "그 때, 내 아이에게 해주지 못했던 그 일들을 이렇게라도 다시 할 수 있어서 위로가 된다"고.

 

그러나 그 공연을 하는 엄마들의 얼굴에는 가면이 씌워져있다. 가면을 쓰고서야 무대에 오를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엄마들은, 이 영화 <가면놀이>에 출연할 것인지, 출연하더라도 맨 얼굴을 보여줄 것인지에 대해서 치열하게 토론한다. 피해자 가족으로서 맨얼굴을 드러냈을 때, 세상 사람들이 위로보다는 따가운 시선을 보낼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건 미리 아는 게 아니라 성폭력 피해를 당한 그 순간부터, 경찰에 알리고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미 겪어봤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성폭력가해 경험을 한 순간의 실수로 여기고 금전적 보상이나 상담, 투옥으로 댓가를 치뤘다며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할 때, 피해자들은 피해자로서의 낙인, 이웃의 무관심, '그럴 여지를 줬겠지'와 같은 의혹의 시선 속에서 피해사실을 숨기거나 피해자가 아닌 척 가면을 쓰고 살 수밖에 없다. 그들은 그렇게 외롭고 쓸쓸하다.

 

이 가면놀이는 어떻게 끝날 수 있을까? 스스로도 성폭력 피해자이면서 딸이 형부로부터 2년간 성폭력피해를 당한 이레님은 말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 마음에 부딪쳤을 때 내 마음이 이겨낼 힘을 갖길 바란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 내 마음이 강해져야 한다"

진정 그 방법 말고는 없을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상처를 어루만질 새도 없이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다시 상처를 받고, 결국 스스로 강해지려고 노력해야하는 그 방법 말고 다른 기대는 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 세상은 무섭고 참혹한 것이 아니라 정말 아름다운 것이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

거리집회에 선 '가족의 힘' 엄마의 절규가 그들만의 것이어서는 안된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이 마을의 구성원이고 모든 아이들은 함께 키워져야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는 건, 그애들을 세상에 초대한 우리들의 몫이다. 그 책임을 함께 질 수 있기를. (문의 시네마달 02-337-213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