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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이었던 날

어젠 좀 이상했다.

강화가 끝나고 서울, 김포로 빠지는 길로 접어들었는데

차선변경하다 사고가 날 뻔했다.

선생님께 잘 배워서 나는 차선변경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어쩐 일로 옆 차선 차를 보지 못해서 그 차 운전자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면했다.

수난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차가 나름 항의를 하기 위해서인지

내 옆으로, 또 내 앞으로 오려고 했다.

나는 너무나 미안했으나 내가 보낼 수 있는 신호가 별로 없어서 비상 깜박이만 몇 번 켰다.

얼굴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차들의 흐름에 밀려 그 차는 내게 더 큰 항의를 하는 것에 실패하고 갔는데

그 뒤로 영상원 도착할 때까지 모든 하얀 차가 그 차로 보여서 나는 너무 무서웠다.

차선 변경은 커녕 속도도 제대로 못 내면서 정말 엉금엉금 기어서 학교로 왔다.

 

열심히 숙제를 해오고 초롱초롱 눈망울을 빛내며 깔깔대는 아이들을 보니 기분이 풀렸지만

수업을 시작하려고 보니 필통을 안 가져왔다.

필통이 뭔 대수겠냐마는

필통 안 USB에는 전날부터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면서 작성한 문서며, 영상물들이 들어있었다.

가방 안을 아무리 뒤져도 없길래 주차장에 내려가서 다시 샅샅이 뒤져보는데...역시나 없었다.

착실하게 챙겨두고서 필통을 안 가져온 것이다!! ㅜ.ㅜ

어찌어찌 수업을 마치긴 했지만 미안함, 황당함, 한심함 이런 것들 때문에 기분이 안좋았다.

 

한예종 도서관에서 숙제를 다 마치고 새벽 2시에 봉천동으로 오는데..

낮의 여운이 아직까지 남아있어서 동부간선도로를 오는 내내 엉금엉금 기었고

차선 변경을 하는 동안 신중을 기하느라 머뭇거리다가

또 두 번 정도 빠~~앙~~하는 경고음을 들어야했다.

마지막이 가장 강력했다.

긴긴 하루를 끝내고 공부방 앞에 차를 세운 후 시동을 끄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옆에 차가 뒤로 막 가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 차가 아니라 내 차가 앞으로 밀리고 있었다.

나는 너무 안도한 나머지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은 채 시동을 끈 것이다.

정신을 차리는 동안 차는 구를 대로 굴러서 앞에 벽에다가 꽝~ 하고 부딪쳤다.

차도 차지만 건물주인한테 욕먹을까봐 걱정됐다.

차를 제대로 주차하고, 차 앞에다가 '맑은샘 공부방 방문차량입니다'를 쓰고

공부방에 들어와서 무너지듯 앉은 후에 충동적으로 드는 생각은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거였다.

......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수요일 밤마다 봉천동에 올 때면 기분이 울적해진다.

어쨌거나 10년을 살던 제2의 고향같은 그 곳에

하은이가 다니던 학교와, 한별 은별이 다니던 어린이집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공부방에는 하은이가 그린 그림이 아직도 붙어있는데

은별이를 업고 매일 올랐던 봉천동 언덕길은 아직도 그대로인데

나는 그냥 휙~하고 강화로 떠나온 것이다.

주말이면 매번 서울로 향했던 1년 전을 떠올리고는

더이상 길에서 떠돌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를 하곤 하지만

사실 내 마음은 여전히 서울에 있는 것이다.

아침마다 걸었던 길,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

푸른영상 동료들과 크게 웃으며 2차를 찾아 헤맸던 당곡사거리

그 모든 곳을 그대로 두고, 내 정다운 사람들로부터도 떠나와서

나는 낯선 곳, 낯선 사람들 틈에서

어정쩡하게 여전히 떠돌고 있는 것이다.

 

나를 위로해주는 존재들은 아이들이다.

나를 옭아매고 나를 구속하고 나를 힘들게하지만

그래도 그 아이들 때문에 그나마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수요일 아침, 서울로 향하는 먼 길 위에서

목요일 저녁, 강화로 돌아오는 조용한 길 위에서

나는 매번 생각한다.

계속 이렇게는 살 수 없잖아.

 

하지만 나는 푸른영상과 서울의 그 사람들을 정리하고

강화에 뿌리를 내릴 생각은 별로 없다.

서울과 강화는 단지 지역이 아니라

나의 세계인 것이다.

운전이 익숙해지면 더 나아질까?

.....

 

박민규의 '더블'을 읽다가

아내가 죽고 나서 한참을 울었다는 늙은 남자의 이야기를 보다가

문득,

나는 남편보다 더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주 남편에게

내가 먼저 죽게 해달라고 했었다.

남편이 없는 세상에 혼자 남겨지면 너무 힘들 것같아서.

그래도 당신한테는 당신의 신이 있으니까 혼자 남겨져도 나보단 덜 외롭지 않겠어?

그런 얘기를 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나보다 남편이 더 외로울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은과 한별과 은별이 꿋꿋하게 세상으로 나아가서

더이상 우리를 필요로하지 않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비슷한 시기에 같이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싶었다.

 

이런 저런 일과 이런 저런 우울함으로 내내 무거웠던 어제 밤의 끄트머리에

나는 생각했다.

빨리 자자. 내일 햇님이 떠오르면 이 마음의 우울도 다 걷혀질거야.

꿈도 없는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서

열심히 쳇바퀴를 돌리는 햄스터를 보고

너머서 선생님들이 챙겨준 김밥을 먹고

이렇게 글을 쏟아놓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

운전은 더 늘 것이고

강화의 한적한 길에서 편안하게 운전을 하고 나면

다시..자신감이 생길거야.

그럴거야. ^^

새로운 태양 아래서 새로운 날들을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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