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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후기-이진아도서관 상영회

할 일이 밀려 있어서 초간단 후기.

 

여성주간에 웬놈의 비가 너무나 많이 와서

상영에 차질이 생긴다.

나야 영화 만든 사람이니까, 차가 있으니까, 아이들이 컸으니까. 어디든 간다.

하지만 관객입장에서 주룩주룩 빗 속을 뚫고 어린 아이 업고서 영화보러 오기란

정말.....지극한 성의 아니라면, 정말 중요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면 쉽지 않다.

그래서 어제 왔던 관객들을 잊을 수가 없다.

어제의 만남을 잊기 전에 이렇게 메모하는 중.

 

은별이가 아팠다.

엄마와 아이 사이의 자장.

그 팽팽한 긴장은 너무나 섬세하고 예민하며 또한 강력하여

엄마가 조금이라도 다른 곳에 마음이 가면 아이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새벽까지 나를 기다렸다는 은별이는 결국 아프고야 말았다.

열로 뜨거운 은별이를 돌보다 아침 미사는 결국 포기.

아마도 엄마가 내 옆에 있었다면 상영회도 포기하라고 했을 것이다. 엄마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2시 상영에 맞추기 위해 12시에 집을 나섰다.

조수석에 앉은 하은이가 찍은 사진.

다정하다.... 애처롭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상영장 풍경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대문구가족지원센터에서 이번에도 돌보미 선생님 두 분을 보내주셨다.

첫번째 행복한 상영회 때 오셨던 분들이라 반갑게 인사했다.

아마도 담당자인 유영애선생님께서 배려해주신 듯.

계획하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이 쌓인다.

이 네트워크, 이 성과를 어떻게 남길 것인가는 따로 고민해야 한다.

이번에는 '행복한 상영회'는 하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꼭 한 번 해서 그 모델을 영상으로 남겨두고 싶었지만

연극놀이선생님과 상의한 끝에 다음 주 인천여성영화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수동적이었다.

몇 명이 오는지, 어떤 아이들이 오는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부담은 모두 연극놀이 선생님께 갔다.

일주일을 짠 놀이계획서가 우연에 의해 포기된다.

새로운 놀이계획을 당일의 상황에 근거해 짠다.

이런 걸 내가 몰랐다. 미안해요.

'행복한 상영회'에서의 연극놀이는 이름만 놀이이지 기본적으로 교육이다.

참여자에 근거해서 교육안을 짜고 교육시간동안 꽉 짜인 내러티브로 시간을 활용한다.

내가 미디어교육을 진행하면서 했던 것과 다르지 않은데

나는 연극놀이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고 내 환상 덕분에 그동안 연극놀이선생님들이 힘들었다.

 

이진아도서관 상영은, 개인적으로는 '도서관 모델 개발'이라는 차원에서 강렬히 바라던 케이스였으나

나의 무지와 오해를 반성하며,또다시 연극놀이 선생님들께 부담을 지울 수가 없어서

그리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결국 포기했다. 이번에는 그래서 돌보미 선생님들만 모셨다.

세 명의 아이가 왔으나 한 명만 함께 갔다.

두 명 아이를 데리고 온 한 엄마는 업고서 영화를 봤다.

빗속을 뚫고서 한 명은 걸리고 한명은 업고서 내 영화를 보러온 그 분을 내가 어떻게 잊을 수가...

잊을 수가 있을까.

칭얼거리는 아이를 업고서 상영장 뒤에 서서 영화를 보던 그 분을....절대 잊지 말 것.

 

상영이 끝난 후 대화.

신기하게도 따로 진행자가 없어서 내가 다 했다.

내가 발제 식으로 영화의 기획의도, 돌봄노동에 대한 현재 고민에 대해 먼저 말을 시작했다.

어제의 풍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말의 폭풍,이라고나 할까.

딸의 아이를 키워줄 수도 있었지만

'육아에 있어서는 너희 부부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나이 지긋하신 여성분.

아이가 셋 이라는 한 엄마의 공감.

세번째 아이를 지우고야 말았다는 한 엄마의 눈물.

그 엄마가 말을 했다.

"너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다들 그렇게 살았는데 왜 너만 그러냐?"라는 말만 들었다.

 

내 영화가 당신들 마음 저 밑바닥에 가라앉은 기억의 문을 여는 문고리가 되기를.

바랬던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건.... <엄마...> 때 끝났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마...>때의 나는 모성이데올로기에 짓눌려있었던 '불완전한 엄마'로서의 나를 드러냈고

거기에 나와 비슷한 무늬를 가진 엄마들이 호응을 해주었다.

그 시간을 거치면서 '몰려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선택해서 하는 이야기'로 현재의 영역을 정했다.

 

어제 그 자리에서 오고갔던 폭풍같은 대화들.

관객들은 나보다 훨씬 더 앞으로 나아가있었다.

육아 혹은 보육에 대한 경험이 이런 식으로 흩어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누는 것 말고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한 엄마는(그 분은 구의원이었다) 마더센터의 필요성을 제안했고

또 다른 엄마는 '멘토 엄마 제도'를 제안했고

다른 엄마는 인구성장률 마이너스 시점이 2015년이라는 것을 말하면서

저출산을 문제시하는 지금 이 상황이 모성과 돌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장할 호기임을 지적했다.

 

아이는 역시 엄마가 키워야한다는 주장과

사적 영역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주장이 공존했던 어제의 자리.

나는 그 자리에서 열로 뜨거운 은별이를 안고 앉아있었다.

물을 먹이고 틈틈히 이마에 입술을 대보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간간히 끼어 들었다.

출산파업으로 현재의 국면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어떤 엄마의 이야기에

며칠 전 횡성에 갔을 때 한 실무자분께 들은 이야기

- "이제 이 지방에서 애를 낳는 건 국제결혼가정밖에 없어요'-를 전해주자

다른 엄마가 프랑스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왜 우리는 앞선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가 한탄하였다. 

우리의 대화를 한 여성이 오해했다.

나이 지긋하신 여성분은 "국제결혼 가정 아이도 다 품어야되는 거 아닌가요?"라는 말로

그 오해를 드러내셨고(참 다행이었다)

우리들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견고한 순혈주의 체제에서

출산을 거부할 권리 자체가 없는 어떤 여성들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음을 설명했다.

더많은 통찰력이 필요하지않겠는가라는 스승의 말을 들은 지 24시간이 채 안된 상황에서

나는 내 빈곤한 언어, 가난한 지식에 허덕였다. 

공부를....정말 작업하듯이 해야할 것같다.

 

스승님 말씀하시길.

"공감에서 오는 위로. 순간의 위로만 주는 이런 영화가 더 나쁠 수도 있단다.

그렇게 이야기가 뱅뱅 도는 것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태일형은 내게 "배급은 배급사에 맡기고 감독인 너는 다음 영화를 준비해야지 뭐하는 거냐..."라고 말하고

스승 또한  '다음 영화를 더 잘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하지 않겠는지,

영화의 빈틈을 이야기로 채우는 건 '매니큐어를 칠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맞다. 스승님 말씀처럼 지금 나는 빈틈을 메우느라

영화에서 못한 이야기들을 나의 말로 채워넣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을....나는 지금 멈추지는 못하겠다. 그런데 언제 멈추지?

시작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마무리가 어려운 다큐멘터리 만드는 일처럼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도... 마무리 시점을 정하기 어렵다.

다만 한가지. 흩어지지 않게 할 것. 말들과 제안들과 사람들을. 흩어지지 않게 할 것.

 

우선 필요한 건 좀더 내용을 가지고, 통찰력을 가지고 대화에 임하는 것.

관객들은 나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이야기들은 복잡하고....때론 위험하다.

상처를 주지않으면서 오독을 바로잡을수 있는 부드러움과 지혜가 필요하고

과거의 한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에만 그치지 않을 방도가 필요하다.

 

잊지 않기 위해 간단메모하는 중.

밀린 일들을 빨리 끝내고 다시 이어갈 것임.

세번째 상영회도 편집해야하는데....일의 풍년이구나.

참, 부천은 어땠을지. 미친곰님~~부천, 부천 소식 좀 알려주세요....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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