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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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2010년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 수상작.

DVD자켓을 보던 아이들이 "아, 그 영화~" 했다.

그 때 폐막식 끝나고 함께 봤던 걸 하은, 한별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정말 애들은 뭐가 될까, 궁금해하며 DVD로 다시 보는데..

다시 봐도 여전히

연기 잘하고 촬영 잘하지만

정말..... "나 이렇게 연기 잘하구요 나 이렇게 촬영 잘해요"

그런 말 하려고 만든 영화 같아서 사실 불편했다.

뽐내는 영화는 불편해.

심사위원들의 말을 옮겨보자면

"그런 가운데서도 심사위원들의 동의를 얻어 기억하고 넘어갈 만한 아쉬운 작품들을 골랐으니 이른 바 ‘특별언급’이다. 먼저 조현철 감독의 <척추측만>은 병변으로 제시된 상징성이 기저에 깔린 기묘한 멜로드라마로, 연출과 여배우의 연기가 눈길을 끌기 충분한 작품이었다. 심봉건 감독의 <껍데기>도 못내 아쉬운 영화인데, 현장지배력과 탁월한 연기연출로 심사위원의 고른 찬사를 받은 작품이며, 류미례 감독은 <아이들>에서 다큐멘터리로는 드물게 귀여움과 따뜻한 온기를 드러내었고, 외에도 김지현 감독의 <경주여행>과 허정 감독의 <저주의 기간>이 심사위원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이었다. "

말하자면 '현장지배력과 탁월한 연기연출'이 진정 눈에 확 들어오는 영화였으나....

그래서, 그게 뭐? 

에너지의 과잉, 견디기 힘들 정도의.

지르는 연기에 익숙하다고 연기를 잘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척추측만>

연기에 관해서라면 <척추측만>의 여자주인공을 눈여겨보고싶다.

<척추측만>은 연기 뿐 아니라 사랑의 어긋남? 괴로움? 에 깊이 이입되어서 보았던 영화.

작년 영화제 기간 동안에는 보지 못했고 이번에 DVD로 봤는데...

그동안 난 수많은 멜로드라마들을 볼 때면 혼자 속을 끓이면서

'왜 말을 않는 거야?' '왜 숨기는 거야?' 와 같은 항변을 수없이 외쳐왔다.

멜로영화의 고전 <러브 어페어>에서도 왜 그녀는 자신의 교통사고 소식을 알리지 않고

단지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았다고만 믿게 만드는건지 답답해죽는 줄 알았다.

말을 하란 말이야, 제발~~~

그렇게 숨기고, 내막을 숨긴 채 사라지고,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혹은 

너는 나를 배신했구나와 같은 오해를 품게 만들고, 엇갈리게 하고, 아 그런 거 정말 싫은데...

이번엔 그냥 보았다.

왜 말을 하지 않아? 왜 너의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잠적하는 거야?

왜 관계를 그렇게 미끄러지도록 놔두는 거야?

그런 생각....물론 안한 건 아니었지만 이번엔 혼자 골똘히 생각해보기를

사랑, 이라는 감정? 혹은 상황은

마음의 근육 중에서도 가장 여리고도 약한 부분을 쓰는 일이라서

상처는 쉽게 받지만 아무는 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에

내가, 혹은 네가 그 진실을 대면했을 때의 반응이 너무나 무서워서

만의 하나, 가장 최악의 반응을 만나야할지도 몰라서

그렇게 된다면 내가 그걸 도저히 견뎌내질 못할 것같아서

그래서 그냥 혼자 안고 가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래서 가장 연약한 그 부분이 상할까봐

진실을 밝힌다든지 구구절절하게 이러저러한 상황설명을 해가며 이해를 구하는 것보다는

아프더라도 나중에 아름답게 돌아볼 관계를 위해 혼자서 감당하고 삭이는 건 아닐까.

너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싶어도 네가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서

너의 반응을 대면하느니 차라리 그냥 헤어지고 말자. 그럼 최소한 지금 상태는 유지되는 거잖아...

그런 생각하며 눈물을 머금고 베일 속에 자신을 가린 채 떠나는 건 아닐까 하고 잠깐 생각.

그래서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을 그렇게들 많이 쓰는 건가봐.

감정의 진피는 저 깊숙히 숨겨둔 채

말랑말랑한 젤리층으로 그 진피들을 두텁게 감싸안아서

화도 내지 않고 열렬히 타오르지도 않고 거리를 둔 채로 그윽히 응시하다가

스르르 멀어져가는

이른바 고요하고 절제된 사랑의 방식.

쪼잔한 일에 집착하는 스스로가 너무나 쪼잔해보이고

쪼잔한 일에 상처받고 화내는 자기의 모습이 너무나 실망스럽고

그렇게 쪼잔한 자기가 너무나 밉고 싫어서

차라리 관계를,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그런...

그런  거.

그렇게 어긋나는 사랑들.

너무나 연약한 사랑의 속성.

아니 사랑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인간의 속성.

<척추측만>에서 내가 본 것.